‘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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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62)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2.07.07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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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슈퍼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처제가 웬일이야?” 하고 인사를 하는 것을 보니 분명 언니 가게가 맞았다. 네가 오늘 무슨 일 로 왔니? 하는 여자가 언니인 듯싶었다. 나는 그녀의 형부와 언니에게 “사실은 이 아주머니 사정을 들어보니 너무나 딱한 마음이 들어 오늘 아파트 계약금 받은 돈을 좀 빌려주려고 하는데 처음 보는 분이라서 슈퍼가 언니 가게라고 하기에 확인차 들러보았어요. 언니가 맞으시네요.” 했더니 내 말을 들은 그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아니 오늘 처음 본 우리 동생한테 돈을 빌려준다고요? 그것도 집 계약금을?” 마치 내 이마 에 ‘세상모르는 철딱서니’라고 쓰여있기라도 한 것처럼 한심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만하면 확인했다는 생각에 다시 복덕방으로 와서 받은 계약 금 중 50만 원을 건네면서 “먼저 비싼 달러 빚 갚으시고 형편이 되면 갚으세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내가 이렇게 망하고 나니까 형제, 친척 모두 내가 나타나는 것조차 싫어해요. 혹시 자기네들한테 내가 돈이라도 달랄까 봐 미리부터 다들 꺼리는 표정이 역력해서 형제, 친척들한테 발을 아예 끊고 가지도 않고 돈 얘기도 않고 남처럼 지내는데, 하물며 오늘 처음 만난 분께서 이렇게 나를 살려주시니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고 울면서 고마움을 표시했다. 나는 그렇게 그녀와 헤어져 복덕방을 나왔다. 그 후 몇 달이 지났다. 그 아주머니 한테서는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 내가 그녀에게 연락할 방법은 아무 것도 없었다. 집도 경매로 넘어갔기에 집도 절도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어느 날 우리 아들 손을 잡고 H 슈퍼에 들러서 언니에게 혹시 동생하고 연락한 적 있느냐고 물었다. 언니는 서로 연락한 적도 없고, 잘해야 친정어머니 제사에서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게 전부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러자 형부라는 분은 내게 “보아하니 대학 졸업하고 직장에는 다닌 적이 없는 순진한 분 같은데, 형부인 나도 그런 돈 못 주는데 어떻게 처음 만나는 사람이 돈을 빌려주냐.”며 참았던 말을 하는 듯 했다. 아마 그 형부와 언니 눈에는 내가 세상 물정 모르는, 한심한 철딱서니 어느 부잣집 딸 정도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대학 졸업 후 하루도 쉬지 않고 직장을 다녔어요.” 했더니 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보았다. 나는 그 언니 부부에게 나의 출현은 분명 부담이 되는 것 같아 그 후 그 슈퍼 앞으로는 다니지 않고 삥 돌아다니곤 했다. 에둘러 일 년에 어머니 제사 때 한번 만날 뿐, 전혀 동생 소식을 모른다는데 무슨 할 말이 더 있겠는가? 그 후부터는 H 슈퍼에도 통 들른 적이 없고 마음을 비우기로 하고 살았다. 나는 그 일을 잊기로 하고 나 혼자 만 아는 비밀로 끝냈다. 

그로부터 아주 오랜 세월이 흘렀다. 거실에 아들과 앉아 놀고 있는데 전화기가 울렸다. 받아보니 어떤 여자가 복덕방 어쩌고 해서 잘못 걸린 전화라 생각하여 “전화 잘못 하셨어요.” 하고 수화기를 놓았다. 그런데 전화가 다시 울렸다. 또 같은 목소리길래 ‘전화 잘 못 하신 것 같아요’ 하고 끊으려니까 그쪽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전화 끊지 마세요. 5년 전 H 상가 복덕방에서 저한테 돈을 빌려주셨잖아요.” 하는 말이 들렸다. 나는 그제야 잊었던 그 사건 생각이 나서 깜짝 놀라 “아주머니세요? 세상에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아무튼 반갑네요.” 했더니 바로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그 아주머니는 나를 보자 미안하고 죄송하다면서 5년 동안 연락도 못한 이유는 돈을 만들지 못해서 전화도 할 수 없었다며, 큰 은혜를 입고도 약속한 대로 이자는 한 푼도 마련하지 못하고 본전 50만 원만이라도 돌려드리기 위해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50만 원을 내어놓았다.

그 아주머니 약속대로라면 월 5부씩 5년이면 이자만 150만 원이 되어 배보다 배꼽이 컸다. 나는 그녀에게 이제라도 갚아줘서 정말 고맙다, 그 동안 잊고 살았는데 공짜로 50만 원이 생긴 것 같아 내가 횡재한 기분으로 보너스를 받은 것 같다, 50만 원이라도 마련이 되어 돌려주시니 내 마음도 기쁘다고 했다. 

정말 갑자기 50만 원을 받으니 공짜로 생긴 돈이나 다름없었다. 마지막으로 그 아주머니는 “제가 어떻게 제 인생에서 제일 나락에 떨어졌을 때 생면부지의 사람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 수가 있겠습니까? 그 돈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갚으려고 했지요. 그 돈 떼어먹으면 제가 벌 받지 않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우리는 서로가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헤어졌다.

가정부를 대학에 입학시키다니요!

81년 내가 세 번째 NMC 간호대학에 다시 나가게 되었을 때, 시댁과 합가하는 조건으로 시어머님께 아이 둘을 맡기고야 남편의 동의를 얻어냈다. 시어머니와 다시 합가한 후 가정부 아주머니가 시어머님과 연세가 비슷해서 자주 마찰이 있었고 따로 살던 시댁 식구들도 대식구가 되어 살게 되니 불편하다고 해서 시댁과 다시 분가하게 되는 복잡한 일이 벌어졌다. 아이들을 봐주시던 시어머님과 따로 살게 되자 내 직장생활이 다시 위기를 맞았다. 남편이 가정부에게는 우리 아이들을 맡기고 직장을 다닐 수 없다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때 남편은 내 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뭐 하러 남보다 공부를 더 잘하려고 애쓰고 더 좋은 대학을 가려고 노력하고 산 거요? 우리 애들 잘 키우고 더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고 그런 노력을 하고 산 거 아니요? 그런데 배웠다는 우리는 둘 다 밖으로 뛰쳐나가고, 소중한 우리 아이들을 우리보다 훨씬 배움이 못한 가정부한테 맡기고 산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이요? 당신은 왜 가정에서 행복을 만들려고 하지 않고 밖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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