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의 여성] 마음도 부자, 재산도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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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의 여성] 마음도 부자, 재산도 부자
  • 김동진 기자
  • 승인 2022.09.08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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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서면 상중리 조금순 씨
“통일벼 덕분에 처음으로 쌀밥을 먹을 수 있었다”는 조금순 씨가 포도밭이 보이는 곳에 앉아 있다.
“통일벼 덕분에 처음으로 쌀밥을 먹을 수 있었다”는 조금순 씨가 포도밭이 보이는 곳에 앉아 있다.

“시집오기 전 밥하라고 친정아버지는 학교도 가지 말래. 19살에 시집와서 20살에 봉답(奉畓 빗물에 의하여서만 벼를 심어 재배할 수 있는 논) 두 마지기에 살림을 내줬다. 보리농사를 지었는데 굶고 아껴서 밭을 사고 그래도 아끼고 아껴서 포도밭을 일구었다. 보리농사에 산과 들에서 나물 뜯어 팔고 칡 뜯어 팔아먹고 살며 꿈도 없이 60년 동안 농사만 지었다.”

옥천군 군서면 상중리 분두골이 고향으로 10살 때부터 10여 년을 밥만 하다 시집가선 60년을 농사지으며 살아온 ‘분두골네’ ‘새터마을네’라는 별명을 얻은 억척 여성 조금순(여, 81) 씨. 

“봉답에서 보리싹이 났다고 눈물을 흘렸더니 굶어 죽을까 봐 그러냐”며 큰 동서에게 혼났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마음도 부자고 재산도 부자”라며 지난 고생을 추억하며 웃는 그녀야말로 진정한 부자다.

어떤 좋은 일을 하고 있는가

경로당에 노인 일자리로 오후 1시에서 오후 4시까지 3시간 일한다. 이 일도 열흘만 하면 끝난다. 나는 날마다 아침 8시 반이면 문을 열어두고 저녁 7시에 문을 닫는데 경로당은 마을 노인들이 쉬는 장소다. 동네 사람들이 손국수가 먹고 싶다면 국수를 해주고 찰밥이 좋다면 찰밥을 쪄준다. 옛날에 하던 습관이 있으니 음식을 해서 동네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먹고 나눈다. 

노인 일자리로 돈을 벌어서 고마워서 한턱 술과 음식을 냈다. 술에 떡에 도토리묵에 수세미도 쪄서 주고 했다. 내가 경로당에 안 나갔으면 그 할머니들 돌아가셨을지도 모른다. 경로당은 우리 마을 노인들이 모이는 곳이다. 동네 이장이 “내가 없으면 경로당이 안 돌아가겠다”며 고맙단다.

매일 경로당에 나가는 이유는

이제 늙었으니까 농사도 하지 말라고 하는데 경로당에 가야지 별수 있겠나. 그래서 더 건강해지는지 모르겠다. 어떤 때는 힘이 좀 빠져있는데 경로당 가니 힘이 생기더라. 옛날에는 집집을 다니면서 놀았지만 지금은 경로당에서 모인다. 여름에는 에어컨이 있어 시원하고 겨울은 난방이 잘되니까 따뜻해서 잘 모이게 된다. 나 없다고 가버리지 말고 열쇠 따고 들어가서 있어라, TV도 같이 봐야 재밌지 집에서 혼자 보면 재미없고 혼자 집에서 가만 있으면 스트레스만 쌓이고 화병과 우울증만 생기니 여기로 오라고 한다. 

농사 60년은 어떤 의미인가

농사지어서 아이들 먹이고 학교 보내고 공책이나 학용품 사주던 그때가 지금 돈 많을 때보다 더 재미있었다. 지금은 돈이 많아서 아니 돈이 흔해서 어디라도 못 가는 데가 없다. 그 시절에는 걸어서 대전까지 왕복 60리를 다녔다. 대전 가면 공책이 4원인데 여기는 5원이었다. 새벽에 첫닭 울면 출발했는데 논둑에 나물이라도 뜯어 팔아야 공책을 살 수 있었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돈 벌 때가 없었다. 산에서 들에서 나물이라도 팔아서 사는 거지. 화장실도 없어 집 대문 밖에다 화장실을 만들고 행랑채를 뜯어다가 마늘 심어서 팔고 마늘쫑 뜯어다 팔고 상추 심어 팔고 농사로 고생한 인생이지만 그래도 그때가 재밌었다. 

언젠가는 밥 한 숟가락이라도 얻어먹을 생각에 신랑보고 밥 좀 비벼 먹을래요 했는데 무심하게 그냥 잡숫더라. 그럼 난 못 얻어먹고. 어떤 땐 아침 먹은 게 시원찮으면 솥을 열어 말라붙어 있는 밥알을 뜯어 먹었다. 그렇게 배가 고프게 살았는데 요즘 누가 그렇게 살아.

앞으로 희망이 있다면

자식들에게는 남에게 민폐도 욕도 먹지 말고 욕심부리지 않는 마음으로 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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