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령산] 검은 토끼 해에 거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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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령산] 검은 토끼 해에 거는 희망
  • 김병학 편집국장, 언론학박사
  • 승인 2023.01.05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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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말, 서울에 사는 80대 기초생활수급자 할머니가 국제 어린이 양육기구인 ‘컴패션’을 찾았다. 이 할머니는 아픈 아이들을 위해 써 달라며 품속에서 5만 원짜리 지폐 30장이 들어 있는 남색 꽃무늬 편지 봉투를 꺼내 놓았다. 

또 다른 60대 할머니 한 분도 인천시 옹진군 영흥면사무소를 찾아 “한 달 급여와 함께 재활용으로 모은 것이니 좋은 곳에 써 달라”며 현금 65만 원을 놓고 갔다. 그 돈은 이 할머니가 평소 공병과 폐지를 주워 모은 돈이었다.  

청주에서도 90대 할아버지가 시청 복지정책과를 방문해 5만 원권으로 1억 원이 든 가방을 전달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해 주겠다고 했지만 그 할아버지에게 그러한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런가 하면 서울의 한 주민센터 앞에 쌀 500kg과 라면 50상자, 귤 50상자, 초코파이 등 생필품 300만 원어치를 두고 간 사람도 있었다. 

갈수록 삶이 팍팍해지고 있다. 특히 가진 것이 없는 서민들의 삶은 더 고통스럽고 절망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희망이라는 불빛이 사라진 지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선행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힘없고 나약한 서민들이다. 배고픈 사람이 배고픈 사람의 마음을 안다고 서민들이 서민을 더 챙기며 위로한다. 이에 반해 가진 자들은 베풀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모으며 쟁여 놓을까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재물을 가지기까지 누구의 도움으로 그러한 결과가 나타났는지는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특히 정치인들에게 ‘기부’라는 말은 남의 나라말이 된 지 오래다.

이제 대망의 2023년이 시작됐다. 정월 초하룻 날 우리는 올해만큼은 하는 일마다 잘 되기를 소원하며 저마다의 희망을 스케치해 보았다. 무엇보다도 가족 모두가 건강하길 바랬고 경제가 잘 풀려 더 이상 일자리가 없어 정처 없이 헤매는 가장들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그러한 기도나 바람은 여지없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정치권은 여전히 구태의연한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실망을 주었고 나라의 경제는 IMF 시절보다 더 혹독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설상가상 민주노총의 불합리한 파업과 태업은 가뜩이나 힘든 우리네 삶에 고통만 더해 주었다. 결국 민주노총의 의미 없는 투쟁은 국민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된 지 오래다. 그래도 그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거리에서 핏대를 세우고 있다.

왜 그럴까, 꼭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걸까. 국민이 없는 나라는 존재할 수 없고 나라 없는 국민도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사랑이나 용서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의 밥그릇만 챙기면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꿈꾼다. 이 세상이 좀 더 사랑으로 가득 차고 좀 더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해 주기를. 그래서 동물이 아닌 사람이 사는 세상이 실현되기를.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다. 어차피 삶이란 한번 왔다가 한번은 가게 되어 있다. 그게 인생이다. 아무리 막강한 힘과 재산을 가지고 있어도 죽음이라는 자연의 섭리 앞에는 속절없이 무너지는 게 사람이다. 

그렇다면 기왕 한번 사는 인생, 좀 더 베풀고 좀 나누고 좀 더 사랑하며 살 수는 없을까. 피땀 흘려 모은 돈이라고 꽉 움켜쥐고만 있을 게 아니라 나보다 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조금만 나눠 줄 수는 없는 걸까. 

잘 알지 않는가, 죽을 때는 빈손으로 간다라는 사실을.

원컨대 계묘년 한해는 순하기 그지없는 토끼처럼 좀 더 순해져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고 움켜 쥐기 보다는 배풀 줄 아는 그런 한 해가 되길 소망해 본다.   

‘기부천사’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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