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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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 배정옥 수필가
  • 승인 2023.02.0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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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 남은 달력이 지나간 시간들로 펄럭이고 있다. 열린 창문 너머로 봄 여름 가을, 가을을 건너 겨울이 깊어지고 있었다. 세상의 한 면을 새로 쓰고 고쳐 써야 하는 마지막 인사말들이 생각나질 않는다. 질문이 적힌 종이를 구겨 던진 구름 사이로 그 붉은 빛깔로 그렇게 한 해가 가고 있다. 지난 시간들을 뒤돌아보았다. 영원히 구해지지 않는 해답처럼 유난히 다사다난했었던 한 해이었던 것 같다. 

지난 10월부터 붉어졌던 염증이 결국 터져 나오고 말았다. TV, 라디오 등 세상 속을 뜨겁게 달구었던 사건들이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 연일 이어지는 공중파 뉴스들은 이구동성으로 핫 이슈로 기염을 토해냈다. 1천만 동참의 촛불 시위라는 보도로 몇 달로 채워 나갔다. 청문회다 증언이다 정치인들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덩달아 신이 났다. 과연 누구를 위한 시위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도가적인 표현으로 온 세상이 떠들썩한 이 광경을 보면서 국민들의 기분들은 어떠했을까, 앞서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혼란스러움이 먼저 밀려온다. 겨울 날씨만큼 우중충한 광경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엔 왠지 모를 믿음과 신뢰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에게서는 고뇌는 찾아볼 수도 없었고 해결책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몇 달을 어둠과 불안과 좌절 혼란으로 이어졌다. 정치인들이라 함은 한 나라의 국민의 대표이자 대변인들이 아니던가, 하물며 지식인으로서 보여서는 안 될 일을 서슴없이 해대고 있다. 그들은 본인들의 출세와 한 자리 쟁취에 열을 올리고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내 욕심만 챙기고 보자는 식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을 보며 작년에 본 영화 ‘명량’이 생각났다. 또한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정든 고향을 떠나 처자식을 버려야 했던 이 나라를 지켜냈던 그들. 만주로 이국땅으로 떠돌고 꽃다운 나이에 한 많은 삶을 살다 가신 애국지사 선현들이 떠올랐다.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그리고 여러 독립투사. 그 선현들은 당대의 난국을 어찌 극복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나라님과 간신들, 정치인들의 당파싸움은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끝없는 대화’라고 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역사를 통해 뒤돌아보고 극복해 보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했다. 

600여 년 전의 세종대왕을 떠올려 보았다. 백성에게는 최고의 성군이셨던 세종대왕은 글을 몰라 자기가 죽을지도 모르는 일을 자처하는 백성들을 위해 “나라 말씀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일반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할 자가 많은지라, 내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28자를 만드나니 사람마다 쉽게 학습하여 사용하는 데 편케 하고자 할 따름이다.”

세계에서도 이런 훈민정음의 우수성을 인정하여 1997년 유네스코에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는 말씀하시길 “백성이 세운 왕인데 어찌 백성의 억울함을 듣지 않겠는가, 임금이 할 일은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진 이들을 제어해 그들의 능력을 백성에게 이롭게 쓰는 것이다. 

내가 꿈꾸는 태평성대는 백성이 하려고 하는 일을 원만하게 하는 세상이다” 그리고 “밥이 곧 백성의 하늘이다”. 굶주린 백성들을 없게 하려고 직접 농사도 지으셨던 세종대왕, 그의 십계명 중 사회적 약자를 우선적으로 배려하라. 노비는 비록 천민이나 하늘이 낸 백성이다. 

그리고 그는 백성을 깊이 사랑한 만큼 자신과 관리들에게는 혹독했던 왕, 그의 나라 사랑과 백성들을 소중히 생각하는 인자함에 고개가 숙연해지고 경이로움마저 든다. 

그리고 조선시대 1592(선조 25)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7년 동안 우리나라에 침입한 일본과의 싸움을 임진왜란이라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인 선조는 백성을 버리고 제일 먼저 평양을 지나 의주로 도망을 갔다. 그 뒤를 따라 뒤뚱뒤뚱 오리걸음을 하고 양반들이 도망을 갔다. 4년 뒤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했다. 이때 사무라이 수장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살아있는 것은 모조리 베어라” 그리고 조선의 장수들, 병사들의 목을 베어오면 상을 내리겠다고 하였다. 그때 일본 병사들은 목은 무겁고 부피가 컸으므로 그들의 코와 귀를 마구 베어 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자라 상에 혈안이 된 그들은 힘없는 부녀자와 어린아이들의 코와 귀를 베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시체와 통곡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이때 전설로 남은 명량해전 조선의 명장 이순신이 있었다. 12척의 거북선과 배로 무려 30배가 넘는 333척의 적의 배를 물리친 위대한 전쟁이 있었다. 그 당시 이순신은 간신들의 모함과 어리석은 선조의 시기로 인해 하옥 중이던 상태였다. 원군이 대패하였으므로 선조는 이순신을 풀어주고 12척의 배로 싸우라 했다. “만일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그 용기는 백배 천배 큰 용기로 배가 되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백성들의 애국심과 유교 국가에서 탄압받았던 그들 승려들이 승병이 되었다. (의병이 되어 피지계층 농민과) 그렇게 나라가 어려울 때 나라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이순신 장군과 바로 진정성 있는 민초들이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우리나라가 수많은 외세 침략에도 나라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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