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령산] 백면서생에서 벗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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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령산] 백면서생에서 벗어나라
  • 김병학 편집국장, 언론학박사
  • 승인 2023.02.02 1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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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중국 남북조 시대, 송나라의 문제와 북위의 태무제는 스무 살도 안된 나이에 제위에 올랐다. 그래서인지 세상을 자신의 마음대로 호령하고 싶어 마음속에는 늘 피 끓는 젊음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 북위의 태무제가 서쪽의 유연을 공격하자 송나라 문제는 지금이야말로 자신의 실력을 보여 줄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다.

그리고 귀족들을 향해 “태무제가 유연을 공격하는 틈을 타 북위를 공격하자”고 주장했다. 태무제가 유연을 공격하면 그만큼 북위의 방위력이 약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폐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런 기회는 하늘이 주신 것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붙잡아야 합니다” “지금의 기회를 놓치면 두 번 다시는 이러한 기회가 오지 않을 겁니다”라는 등의 말로 문제의 마음을 충동질했다. 

그러자 이때 심경지라는 사람이 나섰다. 어느 한 사람도 전쟁에 대한 경험을 가진 적이 없는 그들이 그저 문제의 마음에 드는 말만 하는 상황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밭일은 종들에게 물어보고 베짜는 일은 하녀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입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적국을 치려하지만 백면서생(白面書生)들에게 군사를 일으키고자 한다면 어찌 성공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심경지는 이어 “아무리 태무제가 유연을 공격하러 갔다한들 도성 방비에도 그만큼 신경을 썼을 겁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비록 무식하기 그지없는 무인이었지만 그만한 판단쯤은 할 줄 아는 심경지였다.

그러나 무인 출신인 문제는 심경지의 말에는 신경 쓰지 않고 북위를 공격했다가 결국 크게 패하고 말았다.

‘백면서생’. 글자 그대로 하얀 얼굴에 글만 아는 사람. 즉, 골방에 틀어박혀 글만 읽을 줄 알았지 세상 물정에는 너무도 어두운 사람을 빗대어 하는 고사성어다.

바로 그러한 ‘백면서생’들이 지금의 공무원이 아닌가 한다. 공무원들의 사고방식을 보면 문제와 거의 닮아 있다. 세상 물정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면서 마치 자신들이 커다란 권력이라도 쥐고 있는 양 “그건 안된다” “그건 도와줄 수 없다”라며 주민들이 원하는 것을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일단은(아니 무조건) 안 된다고 잘라 버린다. 어떠한 문제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면 도무지 해결하려는 생각(의지)이 없다. 그저 자신들의 입장만 생각할 뿐 군민들의 심정은 안중에도 없다. 

그저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생각하고 법이라는 좁은 범위에서만 판단하고 행동하려 한다. 그래 놓고도 자기들은 일이 많아 죽을 맛이라고 한다. 바깥세상은 일분일초가 전쟁터이고 생과 사를 넘나드는 극한의 상황인데도 말이다.

도대체 공무원들의 존재가치가 뭔가, 그들은 국민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 가능한 도움을 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밑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 대가로 국민들이 피땀 흘려 낸 세금으로 월급을 주지 않는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고방식은 늘 경직돼 있다. 마치 ‘백면서생’들을 보는 듯하다. 

지역 주민이 얼마나 불편했으면 공무원을 찾아가 호소를 하겠는가, 국민들이 살아가는데 얼마나 힘들면 공무원을 찾아가 해결을 요구하겠는가. 하지만 바깥세상과는 담을 쌓고 허구한날 책상에 틀어박혀 서류만 정리할 줄 아는 그들에게 주민들의 요구는 오로지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작동하고 맴돌고 있다.

그렇다면, 그렇게나 법을 잘 지키고 원리원칙대로 살아서 탈법을 하고 문제를 일으키는가, 그렇게나 법을 잘 알아서 가정이나 사회에 피해를 주는가.

참으로 가소롭다. 공무원이란 국민들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러한 심부름꾼이 언제부턴가 상전 노릇을 하고 있다. 마치 공무원이라는 위치가 특권을 지닌 상류계급으로까지 자리를 잡아 버렸다. 그들도 분명 지역민이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보통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물론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정년까지는 무난히 갈 수 있는 이른바 ‘철밥통’이라는 것쯤은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가장 큰 존재가치로 삶는다면 지금과 같은 사고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허구헌날 과거에 집착하고 좁디 좁은 사고에만 천착(穿鑿)하다 보면 결국은 자신에게도 그다지 좋지만은 않은 결과가 돌아오게 되어 있다. 그게 세상이요 삶이다. (그건 퇴직을 해보면 너무도 잘 알게 되어 있다)

이제 또 다른 새해가 밝았다. 지금껏 살아온 세월 동안 굳혀진 사고방식이 해가 바뀌었다고 갑자기 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해가 바뀌고 나이가 한 살 더 먹었으면 그만큼 삶에도 지혜가 있어야 하고 판단의 범위도 좀 더 유연해야 하지 않겠는가.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도움을 줄까 하는 생각이 그토록 어렵고 불가능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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