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가 ‘가위손’ 10년째 재봉틀과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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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상가 ‘가위손’ 10년째 재봉틀과 동거
  • 이성재기자
  • 승인 2016.09.08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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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기술자로 옷과 처음 인연을 맺은지 50년
일 배운지 10년만에 구로동에서 양복점 개업
2006년 수선집 열어… 남자 수선사로는 유일

옥천 종합상가 1층을 돌다 보면 예닐곱 곳의 수선집을 볼 수 있다. 이 중 ‘서울수선’이라는 조그마한 간판이 붙어있는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채로운 색의 실이 벽면에 즐비하고 요즘은 보기 힘든 오래된 재봉틀이 손님을 맞는다. 패스트푸드, 패스트패션 등 뭐든 빠른 게 대세인 세상은 구두나 가구, 고가의 가전제품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리낌 없이 버려버린다. 옷 수선의 달인 이정수(64)씨는 그래서 더욱 돋보인다. 50여년을 옷과 함께한 평범하지만 값진 그의 삶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수선작업을 하고 있는 이정수 씨.

옥천군 옥천읍 시가지 한복판 옥천종합상가 내 서너 평 남짓한 공간에 들어서 있는 ‘서울수선’은 마치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 한가롭기만 하다. 예년에 비해 옷을 고치러 오는 손님들은 줄었지만 이정수(64) 씨에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아 보인다.

이 씨의 가게에는 오색실, 재봉틀, 다양한 바늘, 다리미, 재단용 자와 가위 등 지금껏 그가 일궈 온 삶의 흔적을 대변하듯 손때 묻은 살림살이로 가득하다. 보통재봉틀과 특수재봉틀 3대가 나란히 있고 벽면에는 형형색색의 바느질 실패들이 꽂혀 조형물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가게 한편에는 수선을 마친 옷들이 주인을 기다리 듯 줄지어 걸려있다.

옷 수선은 옷을 해체하는 일이 수선의절반 이상이다. 칼로 끊어내고 송곳으로 실밥을 일일이 타내는 일 등 잔손이 수월치 않게 들어가기 때문이다. 모든 사물에도 이치가 있듯이 옷을 수선하는데도 상의·하의·재킷·블라우스 등 옷감의 형태나 질감, 제조공정이 다른 만큼이나 수선방법도 각양각색이다.

옷 수선은 특정 부분만 고친다고 일반사람들은 생각하지만 어깨 부분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어깨뿐만 아니라 품 등을 다 같이 손봐야 한다. 의외로 간단한 작업으로 생각하기 쉬운 수선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수선용 재봉틀.

■ 옷만 봐도 어떻게 수선할지 머릿속에 그려져.

이 씨의 미소는 보기에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진심을 갖고 손님들을 맞이하다 보니 저절로 생긴 미소란다.

그는 옷의 브랜드, 가격에 상관없이 손님들이 맡긴 옷들을 명품처럼 소중하게 다룬다. 1000원을 내는 사람이나 1만원을 내는 사람이나 다 같은 손님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작업이 불가한 옷을 들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수선이 안 되는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해 손님을 돌려보내는 경우에도 그는 친절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수선집을 찾는 손님들은 10대에서 70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하다. 게다가 주문이 까다로운 옷도 척척 고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꼼꼼하게 수선을 잘한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아무리 간단한 작업이라도 허투루 덤비지 않고 손님의 주문에 최대한 근접하게 고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김 씨는 “오랜 시간을 옷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손님들이 들고 오는 옷만 봐도 어떻게 수선해야 할지 머릿속에 그려진다”며 “손님이 입었을 때 만족할 수 있는 편안한 옷으로 수선하기 위해 손님한테 더 잘 어울리는 디자인을 설명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오버로크용 재봉틀.

■ 초등학교 졸업하고 양복기술 배우기 시작해.

옷과 함께한 세월이 50여년이라는 이정수 씨는 원래 양복기술자로 옷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한 벌에 100여개 이상의 원단조각을 이어 제작하는 양복사라는 직업은 꼼꼼한 성격의 그에게 딱맞는 일이었다. 옥천군 옥천읍 성암리가 고향인 이 씨는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아 그 당시 기술만 있으면 먹고 살 수 있다는 어른들의 말에 따라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마을형님을 따라 양복 만드는 기술을배우려고 옥천 ‘문화양복점’에 견습공으로 들어가게 됐다.

견습공 시절 주로 허드렛일을 하면서 어깨 너머로 양복 만드는 일을 눈여겨보는 게 고작이던 시절 그는 한 달에 쌀 3말 값을 월급으로 받으며 2년 가까이 기초를 닦는 시간을 보냈다. 옥천에서 2년의 시간을 보낸 그는 조금 더 나은 기술을 배우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서울의 명동,종로, 을지로, 효창동 등 양복의 메카로 주목받는 지역의 양복점을 섭렵하며 양복 만드는 법을 두루 익혔다.

꼼꼼함과 타고난 솜씨로 그는 양복 일을 배우기 시작한지 10년만인 1976년 당시 구로공단이 있는 서울 구로동에 ‘모모양복점’이란 상호로 처음 양복점을 차릴 수 있었다. 양복 한 벌을 만드는데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는데 적어도 6년이 걸리는데다 옷 좀 만들 줄 안다고 인정을 받으려면 10년이 넘게 수련을 쌓아야 하는 과정을 쉽게 넘어선 것뿐만 아니라 손님의 취향부터 치수까지 정확히 짚어 까다로운 요구에도 오차 없이 옷을 만들어내 구로공단에서 옷 좀 입을줄 안다는 사람들이 그의 양복점을 자주 찾았다.

하지만 호황도 잠시 공단이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들면서 그는 개점 3년 만에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양복점을 우연한 기회로 이대 입구에 있는 양장점(숙녀복 매장)에 들어가면서 숙녀복을 제작하는 일에 뛰어들게 된다.

이 씨는 “기술만 있다고 장사가 잘 된다는 보장도 없고 설령 잘 된다 한들 언제 또 양복점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생각에 고심하던 시기에 양장점으로 들어가면서 새로운 일을 접하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수선용 가위와 자.
수선용 다리미.

 

 

 

 

 

 

■ 가죽·모피 상품 호황으로 가죽업계에 발 들여.

새롭게 접한 양장 일은 눈썰미와 솜씨가 좋은 그에게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10여년이 넘게 숙녀복을 제작하고 수선하면서 양복 일과 더불어 숙녀복 제작 기술을 습득하면서 옷을 만드는 일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넘치던 시기에 그는 다시 한 번 옷 인생에 전환점을 맞이하게된다.

1990년대 가죽과 모피제품이 호황을 누리면서 전국적으로 수요가 넘치는 것을 보고 그는 옷을 만드는 것은 기본만 갖추면 어떤 제품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죽·모피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의 솜씨가 입소문을 타면서 여러 브랜드의 가죽·모피 업자들이 그를 찾게 됐다.

이 씨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5~10명 정도의 팀을 꾸려 가죽, 모피, 무스탕 등을 제작해 가죽제품 매장이 밀집해 있던 강남, 서초 지역의 매장을 대상으로 가죽, 모피 제품을 생산·납품했다.

양복 일과 숙녀복 만들 때보다 수입이 배 이상 좋았던 시기로 IMF가 터지기 전까지 그는 많은 돈을 벌기도 했다. 하지만 IMF 이후 고가의 상품이던 가죽과 모피는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억지로 팀원을 줄이기도 하면서 팀을 유지하고 경영을 이어가다 어머니가 지병으로 쓰러지면서이를 계기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됐다.

이 씨는 “한때 납품을 맞추기 힘들어 밤새 작업하는 일도 많았지만 IMF와 유행의 변화로 가죽·모피 산업이 점차 쇠퇴하면서 경영이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던 시기였다”며 “마침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 편찮으신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옥천으로 귀향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수선의 전경.

■ 찾아주는 손님이 단 한 분만 있어도 가게 열어.

2005년에 고향으로 돌아온 이 씨는 그 동안 갈고 닦은 기술을 썩히는 게 아쉬워 대전에 있는 백화점 수선코너에서 잠시 일을 했다. 하지만 복잡하고 좁은 공간에서 작업하기도 어려웠고 출퇴근도 번거롭게 느껴져 일을 그만 두고 2006년 옥천종합상가에 수선집을 차리게 됐다. 지금까지 수선집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기술에 자부심을 가지고 손님들의 옷을 수선하고 있지만 언제나 자만하지 않고 손님들의 주문에 귀를 기울이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기술을 썩히지 말고 같이 일하자는 전화를 많이 받았지만 고향 손님들이 가져오는 옷을 고치는 일에 재미를 붙인 그는 다시 바쁘게 생활할 엄두가 나지 않아 고사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이 씨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시력이 조금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수선 때문에 찾아주는 손님이 단 한 분만 있어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가게를 열겠다”며 “내 나이에 전문적인 일을 가진다는 것이 어려운 만큼 앞으로 즐기면서 일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서울수선”은 옥천종합상가 1층에 위치해 있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영업하고 있으며 주말은 가게 문을 열지 않는다. 수선에 대한 문의는 ☎ 010-9493-7289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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