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하고 거친 원석이 예술 작품으로 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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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하고 거친 원석이 예술 작품으로 승화
  • 이성재기자
  • 승인 2016.09.22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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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에서 가장 오래된 대표 석재공장 ‘우뚝’
3대째 이어온 80년 전통손길로 외길만 고집
화강암·오석으로만 제작… 주로 묘관련 작품

돌을 조각하는 것은 이른바 구도자의 길을 걷는 과정과 흡사하다. 정형화된 형태가 드러나 있지 않은 커다란 원석을 깎아 가는 과정은 진리를 찾고자 하는 수행자의 그것과 비견될만하며 일반사람들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고단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잊혀져가는 것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전통을 지켜나가기 위해 돌에 혼을 불어넣는 옥천석재 강구성(67) 대표를 만나 35년 돌과 함께 살아온 그의 인생을 더듬어본다. <편집자 주>

옥천석재 강구성(67) 대표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가장 많이 사용한 재료는 아마도 돌일 것이다. 초기에 돌도끼나 창 등으로 도구를 만들어 사냥 했으며, 선사시대에는 고인돌, 선돌, 열석 등 무덤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또 문명이 발달하면서 미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예술적 가치의 건축, 조각, 장식 등에 사용되기도 했으며, 서양에서는 대리석을 많이 사용한 반면 동양에서는 화강암을 주로 사용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불교문화와 함께 불국사 다보탑, 불국사 삼층석탑, 석굴암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많은 예술품들이 돌로 만들어졌다. 이밖에도 생활용품으로 문방구류인 벼루, 필통, 재떨이, 식기류, 향로 등 다양한 용도로 석공예가 발전돼 왔다. 현재는 무거운 돌을 대신하는 여러 재료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반영구적인 돌의 장점은 대체할 수 없다.

■ 32세 늦은 나이에 가업 이어

옥천군 군서면 오동리에서 태어난 강구성(67) 대표는 조부와 선친의 뒤를 이어 3대째 가업인 ‘옥천석재’를 이어받아 35년 동안 석공의 길을 걷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돌과 가까이 지냈지만 가업을 물려받기보다는 평범한 직업을 원했던 그는 학업을 마치고 축협에서 10여년간 근무했다.

그러나 구조조정과 일신상의 이유로 일을 그만두게 된 그는 다른 직업을 찾는 것보다 선친의 권유로 가업을 잇게 됐다. 뒤늦게 석재 일을 배우는 것이 어려웠지만 투박하고 거친 돌이 그의 손길을 거쳐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하는데 매력을 느끼면서 더욱 석재 일에 빠져들게 됐다. 수년간 돌을 깨고 글을 새기는 작업을 하다 보니 석재 일의 오묘함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그는 가업을 이어 석공의 길을 걷는 것도 인생을 걸만한 일이란 확신이 들었다.

돌 자체가 무겁고 다루기 힘들다보니 배우기도 까다로웠고 위험한 작업의 연속이었지만 묘지석, 납골당, 표지석 등 각종 조형물에 글씨를새겨 넣는 작업은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됐다. 강 대표는 “오랜 기간 동안 기술을 배우고 습득하면서 내가 살아갈 길은 오직 석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좋은 제품이 고객들에게 인정받을 때 고단함과 어려움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묘지를 꾸미는 묘비석

 ■ 납골묘 주문제작 등 다양한 석재제품 생산

 투박하고 거친 돌은 그의 작업으로 예술작품이 되고 종교적 상징물, 조상을 기리는 묘지석 등으로 재탄생하면서 많은 고객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석재로 제작되다보니 외관이 장중하고 미려함을 물론 마모와 풍화로부터 강한 특징을 갖고 있다.

옥천석재는 납골묘의 주문제작 및 각종 석재 제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강 대표는 석재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없던 터라 오로지 열심히 하려는 의지를 불태우며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돌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는 인생관을 토대로 철저한 약속과 진심이 담긴 사업방식으로 고객들과 업계의 신뢰를 쌓아갔다. 그러나 석재를 찾는 수요가 감소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지만 끝까지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고 차츰 경기도 풀리고 고객이 늘면서 정상적인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전통의 맥과 현대의 기술을 접목해 돌에 글을 새기는 작업은 과거 정과 끌을 이용할 때보다 수월하지만 정성만큼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하는 그에게 돌은 아직도 다루기 까다롭다.

현대의 젊은이들이 조상을 모시는 것을 등한시하면서 점차 장례문화가 잊혀져가고 있어 묘지석이나상석, 향로석 등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옥천석재를 찾는 고객들은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강 대표는 “현재 장례는 납골방식이 유행하는 추세라 묘지 조경에 필요한 석재보다 납골묘를 찾는 고객들이 많다”며 “기존의 묘지도 집안 어르신들이 가족묘 등으로 전환하면서 수요가 예전 같지 않다”고 말했다.

■ 취급하는 돌의 종류는 화강암과 오석이 대부분

호돌이

강 대표는 3대째 80여년 동안 현재의 자리를 지키며 지금까지 묘지석, 간판석, 각종 동물상과 조형물 등 수많은 석재를 만들었다.

특히 2004년에 장령산 휴양림의 간판석과 입구 표지석을 제작하는 등 옥천 근교에 산재한 상당수의 석재들이 그의 손을 거친 작품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수요가 많이 줄어 대부분의 석재는 납골묘와 묘지조경용 동물상과 장군상 등을 주문에 맞춰 제작하고 있다. 과거에는 석재에 필요한 돌을 전라북도 함양과 익산에서만 들여왔지만 현재는 터키와 중국 등에서도 주문하고 있다.

취급하는 돌의 종류는 화강암과 오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화강암은 가장한국적인 돌이기도 하다. 전국토의 70%가 산이 차지하는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돌의 90%가 화강암이다. 게다가 채취하기도 쉽게 전부 외부로 나와 있다. 그만큼 흔하다보니 우리 민족이 가장 즐겨 이용한 소재가 바로 화강암이다. 풍화작용에 강한 화강암은 결이 치밀해 다루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섬세한 작업보다는 부드러운 선으로 특징을 잘 잡아 표현하는 원만한 작업을 주로 한다.

강 대표는 “같은 화강암이라도 입자가 작은 것으로는 섬세하게 표현하지만 보통 화강암으로는 원만한 표현이 어울린다”며 “색깔이 예쁘거나 문양이 화려한 돌은 시간이 지나면서 칙칙해지는데 우리 화강암은 처음에는 아무 색깔도 안 나다가 세월이 흐를수록 고상한 빛을 띤다”고 말했다

납골묘
사자상

 

 

 

 

■ 옥천석재를 이어온 조부와 선친에게 감사드려

강 대표는 사업적인 잔재주를 부릴 줄모르는 사람이다. 그러나 35년을 석공예 장인으로 잔뼈가 굵어온 사람이기에 석재를 통해 아름다운 조화를 창출해 낼 줄 아는 뛰어난 손재주를 가진 사람이다. 그는 ‘내가 갈 길을 바로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지금껏 석공의 외길을 걸어왔다. 석재라는 재료의 특성상 겨울에는 일이 잘들어오지 않아 매년 힘든 고비를 한 번씩은 넘겨야 하는 직업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동안 일을 해오면서 얻게 된 자부심과 뿌듯함이란 그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감을 안겨준다고 했다. 이럼 점이 그를 계속 한길로 가게한 원동력이 되었고 오랜 시간 인정받은 ‘옥천석재’ 품질은 여타 업체들이 따라갈 수 없는 결실이 아닌가 싶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많은 고객들이 ‘옥천석재’ 의 작품에 꾸준한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강 대표는 “늦은 나이에 석재 일을 시작했지만 찾아주는 고객들이 석재에 대해 칭찬을 할 때마다 옥천석재를 이어온 조부와 선친에게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자식들이 가업을 물려받지는 않겠지만 힘닿는데 까지는 옥천석재를 이끌겠다”고 말했다.  ☎옥천석재 (043-733-4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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