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다. 올해는 특히 연말이 더 썰렁하고 어수선하다. 곳곳의 전쟁 소식, 자고 일어나면 올라가는 물가 소식, 국민의 삶과는 멀어진 정치권의 망발,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등 마음 편하게 해주는 소식이 없다. 그나마 이웃을 돕자는 연말의 따스한 온정들이 얼어붙는 가슴을 녹여준다. 옛말에도 민심이 천심이라고 했다. ‘0컷‘이라는 말로 정치권이 어수선했었다. 이런 저런 망발(妄發)의 마무리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말이 있다.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의 ‘겸허히’라는 말이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정치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겸허(謙虛)히’라는 말 - 선거에 지거나, 생각지도 못할 일이 벌어지면 정형화 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 들인다‘라는 말로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진정으로 겸허한 자세를 갖출 때 국민은 정치인들을 존경하고 따르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겸허(謙虛)히: ‘부사’ 잘난 체 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태도로」라고 풀이하고 있다. 겸허히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과연 그 뜻을 알고 사용하는지 궁금한 경우가 많다. (필자만 그런지) 과연 잘난 체 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낮추었는지 고개가 갸우뚱 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말하는 자세도 그렇고, 말이 끝나자마자 여전히 당당한 태도이며 잘난 체 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노자(老子)는 삼덕(三德)으로 겸허(謙虛), 검소(儉素), 순후(淳厚)를 꼽고 있다. 덕있는 사람의 필수 요소이다. 아메리카의 인디언에게는 ‘겸허한 사람은 끝까지 살아남는다’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자세를 낮추어 살아가므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늘 낮추는 자세이기에 다른 사람들과의 시비에 얽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성경은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했다.
비슷하게 겸손(謙遜), 겸양(謙讓)이라는 말도 있다.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그러기에 우리나라의 국보제 1호인 숭례문(崇禮門)은 공경과 겸양지덕의 상징이다. 조상들은 숭례문을 바라보고 드나들며 겸양지덕(謙讓之德)을 몸과 마음에 새겼다. 그래서 우리는 동방예의지국이 됐다.
요즘은 그런 걸 생각하며 숭례문을 보는지 모르겠다. 그 문을 바라보며,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지? 그저 단순하게 국보1호인 옛 건물로만 생각하는지? 황희 정승, 맹사성 정승 등 조선시대의 청백리들의 공통점 중에 하나는 겸양이었다.
그분들처럼은 못되어도 그분들의 자세를 조금만이라도 받아들인다면 함부로 “겸허히 받아 들인다”라는 말은 하기가 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 본다. 그래서 국어 사전에 “정치인들이 불리했을 때 변명하기 위해 가끔 사용하는 말”이라는 풀이를 하나 더 추가했으면 좋겠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또 해가 바뀐다. 내년은 갑진(甲辰)년 청룡의 해란다. 용(龍 )이 도(道)를 깨우치면 비늘이 푸르게 변해 청룡이 된다고 한다. 잘난체 하지 않고 겸허한(도를 닦은) 청룡(靑龍)의 모습처럼 겸허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며 내년에는 웃음과 즐거움이 넘치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