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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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 옥천향수신문
  • 승인 2016.11.17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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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옥 시인·수필가

가을 햇살이 감처럼 익어 가던 날이다. 들판은 가을걷이로 하나 둘 비어 가고 푸른 하늘은 높아만 가고 있다.

여름 내내 불볕더위를 건너온 이파리들이 붉거나 노랗거나 빛이 변했다. 치적치적 내리는 가을비를 맞자 우우우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하늘이 휑하니 뚫린다. 철새가 줄을 지어 날아간다.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자 낙엽은 이리저리 뒹굴다 가는 곳이 어디인지 모른 채 떠밀려 날아가고 있다.

얼마 전, 아름다운 가을의 아쉬움을 온 몸으로 느끼며 장계관광지에서 근무를 했다. 도심에서 떨어진 한적한 그곳, 주변에 산과 금강이 잘 어우러져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이다. 산책로를 한 바퀴 돌았다. 앞산에는 벌써 울긋불긋 단풍들이 바람 따라 날아가고 있었다. 빨간 떡갈나무가 조근 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산책로 변 발그레한 감나무 잎들 사이로 노랗게 익어가던 감들이 며칠 사이 인 것 같다. 붉은 홍시로 변하더니 이내 ‘툭툭’ 떨어져 길바닥에 빈대떡을 부쳐놓았다.

문득, 달콤함이 입 안 가득 퍼졌다. 감나무 위를 올려 다 보았다. 빨간 홍시들이 군데군데 다 영근 햇살에 비치어 더욱더 빨갛다. 달콤함을 떨칠 수 없어 나뭇가지를 흔들어 보았다.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나무 밑을 빙빙 돌다 손을 뻗었다. 순간, 뻗었던 손을 재빨리 떼었다. 너무 놀라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앉을 뻔하였다. 그 달콤하고 보기만 해도 탐스런 홍시는 꼭지 주변이 하얗게 병이 옮아 있었다.

불과 3년 전만해도 깨끗했던 감들이 병균으로 뒤 덮여 있었던 것이다. 몇 년 동안 마른장마로 비가 제때 오지 않았던 가뭄으로 오염된 공기 탓도 있었으리라, 감나무가 마른 나뭇잎 병으로 수확을 포기 한다는 말을 뉴스에서 본적이 있다. 나름 청정지역이라 믿고 있었던 것이 큰 오산이었던 같다. 여기까지 오염 되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왠지 감이 빨리 익는구나 생각만 했지 병이 나서 떨어진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잎과 감은 채 익지도 않은 채 다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몇 년 전부터는 황사보다도 더 무서운 미세먼지가 온 세상을 뒤 흔드는 것 같다. 인간이 만든 재앙인 환경 호르몬, 오래전부터 염려하고 우려 해 오던 것이 현실로 다가 온 것이다. 인류가 발달되고 산업혁명이 개발되면서 삶과 생활은 윤택해졌다. 하지만 어렵던 그 시절 당장 코앞에 먹고 사는 문제에만 급급하였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 했던 것이 지금에서야 현실로 나타났다. 공장 굴뚝마다 시커먼 연기와 공장폐수를, 자동차 매연가스를 마구 뿜어냈다.

인간이 만든 재앙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 재앙이 생명을 위협하고 수위에 달한 것이다, 황사야 3월에서 5월에 중국 몽골의 사막지대에서 불어오는 흙먼지를 말한다. 문제는 미세먼지다. 우리나라도 문제이지만 중국의 산업화의 일부 영양도 있다. 성분 중에는 일부 광물성분이 있으나 주로 탄소 또는 이온성분이다. 코점막을 통해 걸러지지도 않고 흡입 시 폐포 까지 침투하여 천식이나 폐질환, 유병율, 조기사망률 등을 증가 시켜 인체의 면역 기능을 악화시킨다.

갑자기 달콤했던 입맛이 씁쓸해졌다. 도망치듯 그 나무 밑을 빠져 나왔다. 지금도 그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바람에 떠다니는 미세먼지와 매연을 어떻게 막고 피할 수 있으랴, 마스크로 완전무장을 해도 안심 할 수도 없고 마음 놓고 쉼 호흡 한번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봄에 한시적 황사는 옛 이야기가 된 것 같다. 요즘은 계절이 없는 것 같다. 잘 익은 밤과 감이 ‘툭’ 떨어지는 소리가 그립다.

어린 시절 계곡사이로 ‘졸졸졸’ 흘러내리던 시원한 약수로 목을 축이던 쌉쌀하고 달달했던 그 맛도 생각난다. 천재시인 이상은 여름철 녹음에서 죽고 싶을 정도로 권태를 느꼈다고 노래했다. 온 천지가 푸른 도료를 마구 발라놓은 유화처럼 짙푸른 녹음뿐이면 좋겠다. 가을 하늘에 흰뭉게구름이 그림을 그리던 청명한 쪽빛 하늘이 그립다. 나무에서 금방 딴 과일을 사각대는 옷깃에 닦아서 먹어도 괜찮을 날이 올수 있다면 오죽 좋으련만….

노릇노릇 떨어지는 가을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걷노라니 싸한 찬바람이 밀려왔다. 산책로 감 나뭇가지에 몇 개 남은 까치밥 홍시들이 전구 불처럼 걸려있다. 강가엔 하얗게 펼쳐 핀 억새꽃이 부드러운 살결로 반 쯤 남은 햇볕을 실어나르고 있다. 벌써 입동도 지나고 소설이 다가오자 살풋한 바람만 불어도 하루가 다르게 하늘도 나뭇가지도 텅텅 비어 간다. 계절은 가을을 지나 겨울 초입에 들어서고 있다.

조금만 있으면 첫서리도 하얗게 내리고 축복처럼 흰 눈이 온 세상을 덮으리라. 저무는 햇살을 등에 지고 잠잠했던 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친다. 몇 잎 남은 나뭇잎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약력
· 문학저널 시 신인문학상 등단
· 시집 『시간의 그늘』
· 옥천의 마을 시집 공저
· 옥천문협 회원, 문정 문학회 회원
· 옥천군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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