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지역의 역사·문화를 이끌어 온 산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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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지역의 역사·문화를 이끌어 온 산증인
  • 천성남국장
  • 승인 2016.12.08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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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군 약국1호 정진철(78·前도의원·10대 JC회장·예총초대회장)옹
정징철 옹.

“약사가 되려고 한 것은 어려웠던 집안탓이었어요. 그래서 법조계를 희망했던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지 못했어요. 솔직히 돈 벌어 부자가 되고 싶었지요.”

가난한 집안의 3남 3녀 중 둘째였던 정진철(78)옹은 청년시절의 회고담을 이렇게 피력했다. 지난 1964년, 군내 약국1호로 역사에 올린 ‘동화약국’을 개업한 정옹은 옥천군의 역사·문화를 새롭게 쓴 인물이기도 하다.

“약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당시 신설과였던 충북대학교 약학과(4회)에 진학했어요. 합격됐던 의대의 꿈을 접고, 처음으로 약사면허증(약사번호6355)을 얻었어요. 옥천에서 공고를 다닌 탓에 처음 접해본 교양과목이 어려워 1년 동안 헤매다가 2학년 때 오기 발동으로 열심히 공부한 끝에 3,4학년 때는 장학금을 받을 만큼 일취월장하는 결과를 받았어요. 인생의 의미를 많이 깨닫게 된 때였어요. 옥천에는 약사1년 후배인 안철호씨가 있지요.”

공무원(읍장10년)을 지냈던 부친 영향으로 충북도의회의원(옥천읍·1991년)이된 정옹은 “당시 옥천엔 육봉호(이원동이군북군서), 안철호(청산청성안내안남)씨 등과 도의원이 3명이었어요. 당시 옥천에는 의사나 한의사, 약사 등 학부출신들이 많지 않아 새마을사업과 관련해 3대 기관에서 요청이 쇄도했지요. 그런 연유로 맡은 것이 ‘문고사업운동’이었는데 가장 오지였던 청마리 부락과 청마초교가 자매결연하면서 학생들에게 3년간의 장학금은 물론 마을의 운송수단인 배 지원 등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정옹은 “당시나이 30세 때 청년회의소 10대 회장을 맡았어요. 청마리 부락은 당시 마을을 오가는 배가 없어 장마가 지면 청마초교에 결석자들이 속출해 학교문제화 되었었다”며 “군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지원을 받아 당시 국제농기계의 공장장이었던 김종완씨에게 부탁해 배를 만든 후 우여곡절 끝에 동이면 나루터에서 배를 띄워 청마리 지역으로 전달해 도움을 주었던 일화들이 기억에 생생하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정옹은 “당시 학생수가 190명에 역사가 죽향초보다 1년 앞선 청마초교에 봉사직으로 3년간 청마초 졸업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며 “지난 1980년 초 지역 문화와의 접근은 청년회의소 회장이면 당연직이었던 문화원부원장을 맡게 되면서 시작됐다. 지역에는 없던 사진동호회를 창립해 죽향초 5년 후배이며 사진 전문가였던 조영상(작고)씨를 고문으로 위촉해 첫 전시회를 갖고, 이것이 사진작가협회가 태동하는 계기가 됐으며 전국사진작가협회에서 주목하는 단체로 성장해 군단위에서는 부여다음으로 옥천이 꼽힐 정도의 역사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도의원 시절엔 부친의 영향을 받았어요. 당시 수석운영위원장(4대)을 맡았는데 역사적 영향을 받아 한번만 하고 낙선했어요. 옥천서는 이용희 전국회의원이 3대운영위원장을 맡았었다”며 “그래서인지 유동찬, 김재종씨가, 현 박한범 의원이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며 웃음지었다.

이어 정옹은 “1999년에는 지역에 문화예술의 필요성을 촉구하는 시대적 요청과 맞물려 문학·예술분야에서 4개 분과를 갖추고 옥천예총이 태동되자 초대회장을 맡았다”며 “유봉렬 군수시절에는 군·도비 2억을 요청해 정지용시인의 생가 복원을 맡아 지역 문화발전의 토대를 이루는 기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고 언급했다.

현재는 낙향하여 조용히 지역발전의 흐름을 지켜보며 후학양성에도 뜻을 둔 정옹은 “‘꽃의 계곡’이란 발음이 변해 ‘꾀꼬리 정가’가 된 의미를 아느냐”며 “순리대로 65세에 일선에서 물러났고 70세에 이선으로 물러나 서예에 심취한 아내(정화자·75)와 함께 작품 활동을 하면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고 미소 짓는다.

가족으로는 10여년을 모셔온 노모 이창임(101·현 노인병원거주)할머니와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장성한 3남을 두고있다.

한편 집안에는 지난 1980년 동화약국 시절부터 가게 앞에서 꽃장사하는 상인이 선물한 화초인 ‘덕구리탄(대전식물원)’이 30년 세월을 함께 지켜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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