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담그는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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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담그는 겨울
  • 옥천향수신문
  • 승인 2016.12.08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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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희
옥천지역인권센터 복지국장
큰사랑요양병원 간호사

“김장김치 15kg 드릴 분들 다섯 명만 추천해주세요.” 옥천군 지역인권센터 센터장님이 전화를 했습니다.

‘아~ 김장철이구나’ 주부인 나는 그제야 머릿속에 잠자던 생각들이 깨어났습니다. ‘누구를 추천할까?’ 잠시 생각 속에 빠지다가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 집에는 올망졸망 다섯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중에 중증 장애아가 있고 연년생 아이들이 이제 막 젖을 떼고 걸음마를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저들끼리 즐겁고 신나게 놀며 행복했지만 가난한 살림에 아이들과의 삶은 곳곳에서 막힘이 있었습니다.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는 김치를 담그는 일이었습니다. 어떤 날은 김치 거리를 사다가 소금에 절여 놓고 씻을 시간을 놓쳐 짜다 못해 소태가 된 김치 거리를 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누가 김치라도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이라면 이웃에게 사정을 말하고 도움을 요청했을 수 있었는데 그때는 차마 입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할 때 그 도움을 찾아 도울 수 있다면 그보다 귀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자연스럽게 장애인 부모연대 회원들을 떠올렸습니다. 대부분 발달장애아의 부모들인 우리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지쳐 보통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일도 크게 다가옵니다.

김장하는 일도 그럴 겁니다. 그래서 장애아가정을 추천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인권센터를 통해 쌀도 이불도 20여 가정 추천해 도움을 받았습니다. 오래전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중증 장애아를 키우느라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대전에 어떤 분이 직장동료들과 우리집을 찾아왔습니다.

세제와 과자 등을 가지고 우리 집에 와서 위로와 격려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분들이 간 후 많이 울었습니다. 내가 어쩌다 이런 처지가 되었는가 하며 자괴감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남을 돕는 일은 즐거웠지만 도움을 받는 일은 낯설고 힘들었습니다.

그때 남편이 옆에서 우는 나를 안고 말했습니다. “감사하게 잘 받을 줄 알아야 다음에 잘 주게 되는 거야… ”잘 주게 된다는 말이 가슴을 울렸습니다. 나도 예전에 양로원이나 고아원 등을 찾아 조금이나마 돕는다고 했는데 도울 때 혹시나 나보다 낮게 보거나 우쭐한 마음이 들었지 않았나하며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잘 주고 잘 받는 것도 학습되고 훈련이 필요함을 알았습니다. 크고 작은 도움을 받으며 우리 아이들은 가난하지만 건강하고 밝게 자랐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기꺼이 헌혈에도 참여하고 월드비전이나 기아대책을 통해 나눔을 합니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쉬운 일 같으면서도 쉽지않은 일입니다. 내 물질과 내 시간, 내 마음이 함께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함께하면 쉬운 일이기도 합니다.

물질로 섬기는 사람, 시간을 내어 꼭 필요한 사람을 찾아주는 사람 그리고 겸손히 그것을 전달해주는 사람들이 한 팀이 된다면 쉽고 기쁨이 배가 되는 일입니다. 겨울은 춥고 배고픈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계절은 아닙니다. 그러나 추운 겨울을 따뜻하고 반갑게 만들 수 있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얗게 눈이 쌓이는 날, 집집마다 보글보글 김치찌개를 끓여 놓고 옹기종기 가족들이 밥상에 둘러앉아 웃음꽃이 피어난다면 이보다 더 따뜻한 곳이 어디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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