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보다 여우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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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보다 여우가 낫다
  • 이홍주 옥천문인협회원
  • 승인 2016.12.15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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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보다 여우가 낫다. 곰은 미련하다는 말의 대명사요, 여우는 교활함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어느 동물이 더 나을까. 이 질문은 곰보다 더 미련한 물음이다. 미련한 줄을 알면서도 굳이 질문을 던지면 여러 대답이 나올 것이다. 곰이 낫다는 사람, 여우가 낫다는 사람으로 여러 가지일 것이다. 물음을 던진 나도 딱히 어느 것이 낫다고 대답할 수가 없다.

내가 어릴 때 우리 어머니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곰보단 여우가 낫다.” 난 이 말의 뜻을 잘 모르고 ‘그냥 과묵하고 뚝뚝한 사람보다는 연하고 상냥한 사람이 더 낫다는 얘기일 것이다’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맞게 생각하긴 했다.

‘침묵은 금 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 많은 것보단 적게 하는 것이 실수도 적고 손해도 덜 본다. 한데 같이 소통을 하다보면 역시 곰보단 여우가 낫다는 말이 옳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된다. 과묵하고 자기 생각을 잘 말하지 않는 사람은 그 속이 떫은 건지 단 건지 통 알 수가 없다.

너무 말이 많고 가벼워도 안 좋지만 그래도 곰보단 낫다. 말이 많은 사람은 말로 인한 실수도 잦다. 그래도 그 속을 훤히 알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사람 상대하기가 훨씬 낫다. 어찌 보면 사람이 투명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을 푼수라고도 하는데 되지도 않은 말을 지껄이니 푼수가 되는 것이지 상황에 맞는 말이야 많이 해도 나쁠 게 없다. 오히려 딱딱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푸는 역할도 하고 잘만하면 여러 사람에게 청량제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게 이 다변이다. 다변이 조심할 일이 예의다. 예의를 지키며 하는 말, 입은 말을 하라고 있는 것이니 가진 입으로 금도를 지키며 많이 하는 말은 참 좋은 것이다.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TV 아침 프로에 나오는 사람들의 수다는 얼핏 인상을 찌푸리게 하지만 빠져들면 역시 말의 맛에 흠뻑 젖게 마련이다. 같이 앉아 수다를 떨고 싶은 맘이 생길 때도 있다. 고기는 씹어야 제 맛이고 말은 역시 혀와 입술을 통해서 세상에 나올 때 그 맛을 실감하게 된다. 말의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은 같은 말이라도 맛있게, 감칠맛 나게 조미료도 잘 치고 양념도 잘 해서 세상으로 내놓는 데 가히 말의 예술이라고 할만하다.

사기꾼들도 말을 잘해야 사기를 잘 칠 수 있다. 말 못하는 사기꾼은 없다. 잘 하는 말솜씨로 남을 등치는 데 적절하고 교묘하게 잘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 사기꾼이다. 사기를 당하는 데는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잘 치는 사기꾼의 말은 누구라도 속아 넘어간다.

정치꾼이 말을 잘하면 어떨까. 바른 소신을 갖고 사욕이 적으며 옳은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면 잘하는 말이 정치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 잘하는 말을 국민을 현혹하는데 쓸 것이다. 잘하는 말을 국민을 속이는 데 쓴다면 차라리 언치(言癡)가 낫다.

옛날,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몽땅 사기꾼에게 걸려든 일이 있었다. 나도 그 사기꾼하고 우리 집에서 대화를 했는데 조금도 의심 없이 그 사기꾼의 말 재주에 아주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갔었다. 어쨌거나 이 사기의 달인은 온 동네를 상대로 멋진 사기를 성공리에 마치고 그 수확물인 돈 덩이를 품에 넣고 유유히 사라졌다. 동네가 홀랑 뒤집어진 것은 그가 사라진 후 한참 시간이 지나서였다. 한데 동네로선 금전적인 손해는 없이 그 피해를 어떤 사업자가 고스란히 떠 안게 된 그런 사기였다.

우리나라의 산에 곰을 방사해서 살게 되었지만 여우는 아직 없는 걸로 안다. 산에 여우가 있다 해도 다른 맹수류같이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이 여우는 교활한 짐승으로 묘사되는 데 실제로 보지를 못했으니 여우가 어떤 동물인지는 모르겠다. 여우의 어떤 면을 보고 교활하다고 하는 지도 모른다.

곰보단 여우가 낫다고 하는 말엔 사람이 살아가는데 말의 중요성,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말하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 서로 대화를 하다보면 오해도 쉽게 풀리는 것을 다들 경험했을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이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데 대화나 소통이 중요하지만 내 말로 해서 상대방 기분을 상하게 할 권리까지는 없다. 그냥 생각 없이 지껄이는 말로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예의 없는 행위를 조심해야한다.

요즘은 세치 혀로 남의 감정을 상하게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정치물이잔뜩 들고 할 일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남의 심사를 긁는 저질표현을 잘 해서 국민을 갈래갈래 갈라놓는다. 젊은 사람들은 노인네를, 나이든 사람은 젊은 사람들을, 이편은 저편을 하여간 박박 긁는다. 남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한명이라도 있을까.

표현의 자유니 말할 권리니 하면서 악취를 풍기는 말을 자랑하듯 내뱉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약력
·『2015지필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옥천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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