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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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
  • 배정옥 시인·수필가
  • 승인 2016.12.2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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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화둥둥 이쁜 내 새끼! “울 이쁜 손녀 누가 낳았지?” “엄마” “그럼 엄마는 누가 낳았을까요?” “함머니” 하며 꽃처럼 활짝 활짝 웃으며 맞장구치는 외손녀, 그 어떤 꽃이 이처럼 사랑스럽고 아름답다 한들 인간 꽃만 하랴.

어린 시절 어머니가 ‘금쪽같은 내 새끼’ 볼을 부비며 꼭꼭 품에 안아 주었다. 나 역시 어머니 젖가슴에 안기었을 때 그 달달하고 따스했던 행복감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달달하고 따스했던 행복감을 내 손녀도 느낄 수 있다면 이 또한 얼마나 값진 선물 일까.

퇴근길에 어린이집에 들러 외손녀를 데려왔다. 이제 네 살 된 외손녀는 차에 태우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출발” “렛츠고” 외치고는 활짝 웃으며 나와 눈을 마주친다. 그리고는 ‘우물가에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 뒷다리가 쑤욱 앞다리가 쑤욱’ 동요를 부르다 또 다른 노래를 어린이집에서 배웠다며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딸 내외가 맞벌이 부부라서 태어난지 8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보내야 했다. 처음에는 두 시간, 네 시간 차츰 엄마와 떨어지는 연습을 했다. 어린것을 떼어놓는 것이 안쓰러웠다. 가끔은 시간에 쫓기고 힘들었지만 내 할머니가 내 어머니가 그러 했듯이 나 또한 내리사랑을 실천 하고 싶었다.

부쩍 부쩍 자란 아이는 어른들의 말을 곧잘 흉내를 냈다. 아마도 세 살때 겨울이었던 것 같다. 외할아버지가 칭찬을 해주자 “아이구 뭘요. 아니에요 괜찮아요”하는 말을 해서 온 집안을 웃음꽃으로 행복을 주었다.

요즘 들어서는 상황의 의사표현도 확실히 하고 어른들의 분위기도 맞출 줄 안다. 동요 ‘나뭇잎 배’도 따라 부른다. 동시 ‘할아버지, 호수’ 시를 곧잘 낭송을 한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하루에 세 번 거짓말쟁이가 된다고 한다.

아마 나도 손녀 바보인가 보다. 활짝 웃는 그 얼굴은 마치 밤하늘 은하수처럼 황홀하게도 마약처럼 빠져들게 한다. 이 삼 일만 못 봐도 보석 같은 미소가 아른아른 거리고 눈에 밟혀 목소리라도 들어야한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누구 중 하나가 기쁘면 모두가 따라 기쁘고 누구 하나가 슬프면 따라 슬픈 것, 그것이 가족이 아닐는지, 그만치 가족이란 공동운명체가 아닐까? 고통도 기쁨도 나누어 가지며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서로에게 헌신함을 미덕으로 여겨야 한다. 그것은 질긴 가족주의에서 오는 사랑 때문일 것이다.

한동안 TV 뉴스에 방송되었던 아동학대의 사건 사고가 연일 끊이지 않았던가. 전국이 떠들썩했던 부모가 자기친 자식을 신체 정신 학대를 넘어 감금, 중·상해 등 가해자가 친부모라는 점에서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신을 섬기고 목회를 하는 목사부부도 있었다. 그것도 목사의 신분으로 최고의 학벌과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층의 말이다. 사회윤리에 앞장을 서고 모범이 되어야 옳은 일이 아닐지. 자식을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다 내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했다. 하물며 사람으로서 도저히 이해가 되지도 믿기지 않은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예전에 콩 한쪽도 나누어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작은 오두막집에서 칠남매 팔남매들이 삼대가 우글 우굴 모여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처럼 자식을 학대하고 죽이는 일은 없었을 성 싶다.

한때는 부모를 멀리 여행가서 버리는 일, 자식들이 서로 부모를 모시지 않으려 했다. 부모는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도 ‘배부르다, 배부르다’ 입버릇처럼하며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 했다. 입 안에 든 음식까지 꺼내 자식 입에 넣어주던 그 부모가 이제는 짐이되고 근심거리가 되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의료보험 제도 및 마을 경로당, 요양원 등 노인 복지제도가 잘 되어 젊은 사람들의 짐을 덜어 주는 것 같다. 경제가 발전하고 생활이 윤택해질수록 사회적 인정은 점점 더 메말라가고 각박해지고 있는 듯하다.

어린 시절 집집마다 “근면, 성실, 신뢰, 사랑” 등 가훈들은 옛말이 되고 무색해 지기까지 한다. 햇가족 시대가 되고 지식층이 늘어날수록 밝고 따뜻한 사회가 되어야 할 터, 하루 밤만 자고나면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들이 텔레비전 화면을 채운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 애틋한 가족도 때로는 죽도록 미워질 때가 있다. 모름지기 미운 정 고운 정이 치받치고 이해부족과 그리고 가족이기 때문에 당연하고 바라는 것이 많아서 그럴 것이다. 그래도 가족은 칼로 물을 베듯 미운 정은 금방 잊혀지는 것이다. 화목한 가족은 세 평 방에서도 열사람이 누워 잘 수 있지만 서로 반목하면 열 평방도 비좁다하지 않았는가.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가족관계도 인간관계도 모래성이 되지 않았는지 아쉬움이 더 한다. 그래도 내가 가진 것을 조금씩 불행을 당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면 어떨까.

이제 연말연시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주어진 시간을 조금씩만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나누어 주자. ‘내 가족으로 인해 남에게 불이익을 가지 않도록 할 것이며’ ‘내 핏줄에 대한 사랑 때문에 남의 가족을 미워하지 않게 하소서’ 이해와 배려로 사랑하며 위하며 보듬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기를….

▲ 약력
· 문학저널 시 신인문학상 등단
· 시집 『시간의 그늘』
· 옥천의 마을 시집 공저
· 옥천문협 회원, 문정 문학회 회원
· 옥천군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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