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기다리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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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기다리는 마음
  • 이흥주 수필가
  • 승인 2017.01.1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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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춥지 않다. 그리고 눈이 없다. 어찌 보면 아주 좋은 현상이다. 겨울이 크게 춥지 않고 눈도 안 오니 서민들 살기에 좋지 않은가.

난방비가 없어 보일러도 제대로 돌리지 못하는 고령자들과 생계보호대상자들에겐 춥지 않은 겨울이 고마울 수밖에 없다. 눈도 그렇다. 우스갯소리에 눈이 오면 강아지만 좋아한다고 하지 않던가. 운전을 업으로 하는 분들과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에겐 하얗게 쌓인 눈이 걱정거리밖엔 아무것도 아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으면 마음이 설레기 전에 걱정부터 앞선다. 눈 속의 낭만보다는 생활이 먼저다. 오늘아침 일찍 배달된 신문을 여니 강원도 화천군 산천어축제가 춥지 않은 날씨 탓에 일주일 연기됐다고 나온다. 난 산천어축제장에 가보진 못했지만 하얀 눈 속 얼음판에서 산천어를 낚아 올리고 가족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따라서 마음이 설레었었다. 산천어축제가 일주일 후에도 제대로 열릴지 모르겠다.

겨울의 맛은 그래도 추울 땐 추워주고 눈이 올 땐 눈도 와 주어야 한다. 겨울이 따뜻하기만 하면 그해 병충해가 심해서 농사에 지장을 준다는 말도 있다. 가끔 눈도 내려줘야 겨울 가뭄도 해소되고 토양에 수분도 보충이 돼서 월동하는 수목들에게도 좋다. 올겨울은 아직 가뭄은 없지만.

나이가 이렇게 많아도 눈이 기다려진다. 아침에 일어나 하얀 눈이 세상을 덮고 있으면 이 나이에도 괜히 설렌다. 아침 일찍 빗자루와 가래를 들고 눈 치우는 맛도 겨울에 느끼는 즐거움이다. 얼마 안 됐지만 몇 해 전 매일 오다시피 하는 눈을 치우느라 아주 혼이 났던기억이 난다. 마당이 넓은데도 눈을 쳐 부칠 곳이 없어서 아주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해서도 곤란하지만 적당히 오는 눈은 꼭 필요한 것이다. 적당히 춥고 적당히 눈이 오고, 이 적당히란 말은 기후에도 필요하다.

올겨울은 아직 눈다운 눈이 오지 않아서 그렇지 가물진 않다. 자주 산책을 나가는 지용문학공원에 있는 구읍저수지가 조금씩 내린 비에 시나브로 물이 차서 수문으로 조금씩 넘는다. 금년 농사용 물은 이미 확보가 됐다. 이 큰 저수지가 조금씩 내리는 비에 만수가 된 것을 보면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아파트에 사는 분들은 문만 닫고 방에 들어가면 눈이 오건 비가오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최소한 자기 집 앞에 눈은 치워야 한다. 한때 자기 집 앞의 눈은 자기가 치우게 하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게 잘 안 된다. 내 집 앞에 차 세웠다고 세우지 못하게 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다.

어찌 보면 의무적인건 아니지만 눈이 오면 치우고 풀 한포기라도 그 집 주인이 뽑으니 그 집 주인에게 차를 세우는 데도 우선권이 있다고 봐야겠다. 법은 어떤지 모르지만. 자기 집 앞의 눈을 집주인에게 의무적으로 치우라는 법령을 만들려면 집 앞의 사용권도 집주인에게 주어야 한다.

그러자면 차를 세우려는 사람들과의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다. 주차장 내에서도 주차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이런 세상에 집앞 도로에 그 집 주인에게 권리가 있다고 한들 막무가내로 세우려는 사람들을 당할 재주는 없을 것이다. 차라리 눈 안 치우고 권리도 안 갖는 게 마음 편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자기 집 앞의 눈은 누가 말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치우면 좋겠다. 그런데 저녁엔 텔레비전 보느라고 늦잠을 자는지 눈이 하얗게 쌓여 있어도 밖을 한번 내다보지도 않는다. 자기 집 앞에 눈이 수북이 쌓여 있는데 잠이 오나. 늦게나마 일어나서도 눈은 손도 대지 않는다. 그래도 권리주장엔 철저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그 사람이 들인 습성이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는 것이었다. 자원봉사 같은 건 못 할 지라도 최소한 내 집 앞의 눈은 내가 치우는마음, 이게 시민정신일 것이다.

나이를 먹어도 거꾸로 마음은 젊어 간다는 말이 맞는다. 몸이 늙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마음까지 따라서 늙는다면 그거야 말로 문제다. 사람은 직접 자기가 당해봐야 그 말이 맞는 것임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 않은데도 말뜻을 이해한다면 선견지명이 있는 똑똑한 사람이다.

지구가 점점 온난화해 간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렇게 좀 겨울이 따뜻하다 싶으면 이것도 온난화 때문에 이런 건 아닌가하는 걱정이 앞선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 기후가 아열대 기후로 변화해서 겨울이 항상 따뜻해지면 좋은 면도 있을 것 같다. 우선 겨울에 난방비가 덜 들거나 안 들 테니 한겨울 난방비가 걱정인 사람들에겐 좋은 현상일 수 있다. 그러나 날이 더우면 또 여름에 냉방비가 더 들 것이다. 지난여름 경험하지 않았는가. 에어컨 틀지 않고 버티다가 나도 더위를 먹어 큰 고생 했다.

기후가 급격하게 변하면 그 후유증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세상이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으면 마음이 설레는 건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똑 같다. 누구든 다 그럴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눈이 와서 좋아하는 건 강아지만은 아닌 것이다. 때론 하얀 눈을 불편하다고만 생각지 말고 한겨울의 낭만으로 즐기는 여유도 가져보자. 누구나 설레는 눈 속의 세상, 이로 비춰보면 시인이 될 소질은 다 타고 났다. 이 겨울엔 모두 시인이 되자.

 

▲약력
· 『2015지필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 옥천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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