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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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 김정자 수필가
  • 승인 2017.01.2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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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라고 어수선 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중반인 20일이 넘었다.

올해에는 설 명절이 1월 달에 있어 몸과 마음도 바빠진다. 민족 최대의 설 명절이니만큼 명절이 지나면 많은 사람들이 명절 증후군과 후유증을 앓게 마련이다.

나 역시 조상도 모시고 고마웠던 분들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드리고자 고민이 깊어지는 때이기도 하다. 설날을 앞두고 점점 치솟는 기름 값과 생필품 등의 모든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른다. 설상가상으로 전국은 지금 AI로 계란 파동까지 겹쳐 축산 농가들과 온 국민의 시름과 한숨이 터져 나오고 있다.

또한 나라 안은 한 곳에는 촛불이, 또 한 곳에는 태극기가 서민들의 마음을 혼란하게 만든다.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아이들은 세뱃돈 받을 생각에 기쁘고 즐거워야할 설날인데 예기치 않은 일들로 마음이 차갑고 무거워진다. 그러나 이런 때 일수록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격려를 해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랑이 필요하다. 가정과 학교, 직장에서 관심을 갖고 따뜻한 말 한마디 부드러운 미소가 담긴 인사라도 해준다면 아무리 차가운 한파가 몰아쳐도 당당히 견딜 수 있다.

이때쯤이면 차츰 잊어져 가는 어릴 적 설날 풍경들도 간절하고 그립다.

설 즈음 아버지는 땔감 속에서 튼실한 나무를 골라 썰매를 만들고 팽이도 만들어 주셨다.

먼 동네서 우리 동네로 천렵 온 아이들과 논배미 얼음위에 팽이를 돌리고 썰매를 타다보면 해가 저물고, 갈라진 물웅덩이에 빠져 얼어버린 나일론 양말을 매운 모닥불 위에 말리다 태워 먹기도 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옷은 흠뻑 젖었고, 손발은 꽁꽁 얼었어도 고드름을 보고서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때 먹었던 고드름 맛은 지금 아이스크림 맛하고 비할 수 없다. 대목장이 서는 날이면 엄마는 아무리 돈이 없어도 설빔으로 양말 한 켤레씩이라도 사갖고 오면 새 양말을 신고 싶어 설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설날을 며칠 앞두고 작은 마을 방앗간 앞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을 먹기 위해 몇 시간을 추운 줄도 모르고 기다렸다. 집집마다 가래떡 찍어 먹을 조청을 달이고 떡국에 넣을 두부를 만드는 집도 있었다.

지금은 사골 국물에 소고기를 넣어 떡국을 끓이는데 어릴 적에는. 소고기가 귀한 때라 대신 두부를 넣어 끓였다.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부모님께 세배를 올리고 나면 아버지는 우리들의 손을 잡고 동네 한 바퀴 돌면서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러 다녔다. 세배를 하고 나면 설 때 장만한 음식을 한상씩 차려 왔고 덕담과 세뱃돈을 건네 주셨다.

설 풍습과 음식이 이제는 예전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달라졌고 부모가 자식 집을 찾아가는 역 귀성풍속도 생겨났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부모 세대는 가난 속에서도 부모를 봉양했고 아이들을 서넛 이상 낳아 키웠다. 그런데 지금은 부모를 건사하기는커녕 비싼 교육비 때문에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없다고 하소연 한다.

그런 와중에도 승용차는 굴리고 싶고 해외여행도 포기할 수 없는 과소비상태에서 헤어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께 드릴 용돈은 없고 늘 부족하니까 바쁘다는 이유로 차례를 지내고 자식들은 돌아가고 아버지 어머니만 남은 깊은 겨울밤은 길기만 하다. 그 언제였든가, 아득하게 흘러간 지워 질수 없는 그때의 고향 풍경들이 그립다.

거칠게 불어 대던 설한풍에 묻혀 버린 듯 앙상하게 야윈 나뭇가지들만 고향을 지키고 있다. 의지 할 곳을 잃어버린 예뻤던 추억은 뿌리에 묻고 스산한 텅 빈 산마루에 잿빛 하늘이 외롭다. 차츰 기억 속에서 지워진 유년의 설날, 어느덧 내 마음속엔 여백이 줄어들고 순수가 오염되고 온갖 잡념만 들끓고 있으니 그래서 더욱 그리워지는 설날이다.

설 연휴가 끝나면 2월이다. 긴 겨울동안 눈보라를 맞으며 잘 견뎌온 나무는 잎을 벌려 꽃잎을 피우기도 하고 고단한 농부의 그늘이 되기도 하고 열매를 키워 고향의 소식을 전해 준다. 작은 웅덩이도 쩡쩡 움트는 소리를 내고 땅속에 묻힌 김장독은 배 부풀리며 익는 소리를 낸다. 그 모든 것들이 세월 가듯 무심히 가는 것 없고 의미 없는 날은 없듯이 고향의 손에서 다듬어지고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준 부모님들의 땀이다.

가족의 해체가 진행되는 쓸쓸한 시대지만 올 한해 잘못된 마음과 잘못된 행동으로 얼룩진 온갖 사연들 모두 지우고 새로 시작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새해 주고받은 덕담을 그냥 흘러버리지 말고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온전한 마음만 갖고 살다보면 어려운 불황에도 아름다운 삶의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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