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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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소원
  • 김정자 수필가
  • 승인 2017.02.23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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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실만큼 연둣빛의 싱그러운 나무들이 따스한 햇볕을 받아 초록 물결을 일렁이는 들판의 풍경들이 사랑을 전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때가 있을까?

늦은 설거지를 끝내고 책상 앞에 앉아 낡은 사진첩을 꺼내 보았다.
엄마가 돌아 가신지도 벌써 15 년이 훌쩍 지났건만 활짝 웃는 사진을 볼 때면 엄마와의 추억에 가슴 뭉클하다. 초등학교 소풍전날 장에 가신 엄마를 마중 갔다 오는 길에 꽃들이 만개한 것을 보고 저 꽃들이 다 돈이라면 내일 우리 딸 소풍 갈 때 맛있는 거 많이 해 줄 건데 하며 거친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다음날 아침, 소풍 가는 딸을 위해 정성껏 도시락을 싸주고 참빗으로 머리를 곱게 빗어 양 갈래로 땋아 주고 싸리문 까지 나와 “잘 갔다 오라고” 했지만. 나는 김밥이 아닌 도시락이어서 입을 내밀고 토라져서 집을 나왔다.
뭐가 그리 창피 했던지 소풍지에 도착해서도 김밥 먹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몰래 숨어서 도시락을 먹었다. 그때 내 소원은 다른 아이들처럼 소풍 때 김밥을 싸 가는 거였다. 오후가 되자 보물찾기에 정신이 없어 아침 일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주변에 피어 있는 꽃망울들도 마치 팝콘을 튀기듯 펑펑 터지는 것처럼 신기하기도 했다.
즐거운 소풍이 끝나고 집에 올 시간이 돼서야 엄마께 투덜거리며 짜증냈던 미안한 마음에 얼른 집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삽살개 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그날 저녁 엄마한테 용서를 구하고 싶어 공책을 뜯어 편지를 썼다.
“아침에 투정 부려 죄송해요. 앞으로 엄마 소원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엄마 마음 아프지 않게 하고 돈 많이 벌어 호강 시켜드릴게요” 라고 써놓고 엄마를 기다리다 지쳐 방에서 옹송거린 채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부엌 바닥에 내가 쓴 편지가 구겨진 채로 버려져 있었다. 순간 아차

일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모르는 엄마는 아마도 휴지조각인줄 알았고
내가 편지 쓸 때 엄마가 글을 모른다는 것을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었다.
얼른 편지를 주워서 주머니 속에 넣었다가 사진첩 엄마 사진 옆에 끼워 두었다.

몇 번을 읽어 드리고 싶었지만 결국 읽어 드리지 못했고 열심히 공부해서 엄마랑 글을 모르시는 분들께 글을 가르쳐 드리는 선생님이 되겠다고 속으로 다짐만 했다. 언제든 장래 희망이 뭐고 소원이 뭐냐고 누가 물어보면 난 어김없이 내 소원은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그런 꿈을 갖고 열심히 공부 했지만 엄마는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라 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엄마 말을 듣고 동네 뒷동산에 올라갔다. 산 밑에는 자그마한 텃밭이 내려다 보였다. 그곳에서 엄마는 하루 종일 허리 굽혀 일하고 지친 몸에도 불구하고 갓 뜯어온 푸성귀로 겉절이를 하고 된장을 맛있게 끓여 밥상을 차려 주었다. 우리 남매들은 엄마의 손끝에 배를 불렸지만 엄마는 부엌에서 우리가 남긴 잔반으로 끼니를 때웠다. 그런 가난이 싫어 서인지 엄마는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대전으로 이사를 왔다. 나는 도시의 생활에 적응 하지 못했지만 자식이 쓴 편지도 읽지 못한 엄마를 생각해서 꼭 선생님이 되기 위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간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항상 아쉬움을 갖고 살면서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지리라 생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신문사에서 수기 공모가 있었다. 제목을 ‘소원’으로 응모 했는데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때부터 용기가 생겨서 가끔 글을 쓰다 보니 주위에서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불러 준다. 이제 나도 지인들과 메일이나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으려면 돋보기를 써야하는 중년의 나이가 넘었다.
글을 몰랐던 엄마의 답답함을 헤아릴 수 있고 그 아픔과 사랑이 새삼 뜨겁게 느껴진다.
선생님이 되어서 글을 가르쳐 드리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 간간이 불러주는 선생님이란 호칭을 들을 때면 엄마 생각이 간절하다. 지금 누가 내 소원이 뭐냐고 묻는다면 하늘나라에 계시는 엄마가 다시 오셔서 엄마의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자식이 쓴 편지조차 읽지 못하는 서러움도 감춰 가면서 오직 자식을 위해 한 평생을 바친 엄마 사진을 보니 눈앞이 흐려진다. 효도 하지 못한 딸을 용서하고 천국의 밝은 나라에서 지켜보고 있을 엄마가 하루만이라도 다시 왔으면 좋겠다. 투정 부렸던 딸이 쓴 편지를 읽지도 못하고 구겨서 버려야 했던 그 아픔을 곱게 펴 보았다.

그리고 나지막이 전하는 “엄마 고마워요 사랑해요” 저 햇살을 담은 아름다운 봄날의 추억이 가득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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