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은 건망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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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넘은 건망증
  • 이흥주 수필가
  • 승인 2017.02.2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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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건망증은 내 글 소재로도 자주 우려내는 단골메뉴다. 이 도를 넘는 건망증은 때론 나는 물론 내 주변 분들에게까지도 황당함과 웃음거리를 제공한다. 오늘 이 웃지 못 할 건망증 얘기를 또 해보려한다.

오전에 휴대폰에 받지 못한 전화번호가 찍혀 있어서 전화를 거니 농협이란다. 그러면서 내 이름을 묻더니 “지난 일요일(2월12일) 구읍 현금인출기에서 거래를 했지요?” 하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그 직원 얘기가 내가 현금을 인출해놓고 그냥 가서 그 돈을 어느 분이 지구대에 갖다 주어 연락이 왔단다. 그래서 그 돈을 다시 통장에 넣어주겠단다.

창피하지만 이 사연이 만들어진 과정을 얘기해야겠다. 2월 10일(금요일) 종중회의를 마치고 그날 나온 점심 식대 81,000원을 총무인 내가 우선 내 돈으로 대체하고 일요일 우리 동네에 있는 현금인출기로 종중통장에서 8만원을 인출했다. 시디기 에선 1.000원단위는 인출이 안돼서 8만원만 인출을 했다. 그러고 집에 와서 보니 아차 기계에 돈 8만원을 그냥 두고 온 게 생각난다. 정신없이 그곳으로 가 보았지만 돈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곳에 뭐 하러 갔는데 나온 돈은 기계에 그냥 두고 통장만 손에 든 채 몸뚱이만 끌고 집으로 왔나. 잠깐 사이에 돈 8만원을 공중에 날린 생각을 하니 80만원보다도 더 아깝다. 놓친 고기가 커 보인다고 정말 그 순간엔 8백만 원 쯤은 잃어버린 듯 속이 상했다.

회의 때 종중 원들에게서 회비로 받은 현금 35만원을 가지고 가서 먼저 입금하고 난 후에 식대를 인출했다. 내 지갑에도 가진 돈이 있었기 때문에 자꾸 생각을 하다 보니 이것저것 뒤죽박죽이 돼서 감이 안 잡힌다. 내가 정말 8만원을 거기에 두고 왔는지 안 그랬는지 그것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원래 내 지갑에 있던 액수를 알면 모든 게 드러날 텐데 그게 긴가민가하니 머릿속이 오리무중이 된 것이다. 8만원이 정말 날라 갔나, 아니면 내가 잘못 생각하는 건가.

어제 월요일엔 대전에 있는 병원을 쫓아다닐 일이 생겨서 바쁘게 보내 돈 생각은 할 틈이 없었다. 오늘 조용하게 계산을 하고 정리를 한 다음 농협에 얘기를 하려 했는데 거기에서 먼저 연락이 온 것이다. 그날 내가 일을 볼 때 인출기 두 대에 대기자가 한 사람씩 있었던 것 같다. 나온 돈을 인출기에 그대로 두면 다시 통장으로 들어간다고 들은 것 같은데 내 뒤에서 대기했던 분이 인출기를 사용하고 내 돈을 지구대에 갖다 준 모양이다.

내가 고맙다는 전화라도 하려고 지구대에 전화를 걸어 돈 가져온 분의 연락처를 물어보니 전화번호를 남기지 않고 갔단다. 이글을 통해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이렇게 내 돈은 중앙지구대를 거치고 옥천농협의 수고로 내게 다시 돌아왔다. 쓰디쓴 웃음을 혼자 웃어야 했지만 세상이 고맙다. 오늘은 모처럼 춥지 않은 날씨에 햇빛마저도 화사한 하루였다. 봄이 바로 올 모양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슬픈 일이다. 몸의 기능이 저하되고 정신까지도 흐려지는 건 더욱 슬픈 일이다. 나만 그런 것 같아서 또래들이 모인 곳에서 이런 얘기를 해보면 “나도 그래, 나도 그래” 한다. 보편적으로 같은 현상인 것 같은데 자꾸 나만 그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작년인가 혹시 치매의 전조증상은 아닌 가해서 옥천 보건소에 가서 치매검사를 해보았었다. 그러나 치매증상이나 전조증상은 아니라고 해서 안심한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거기선 간단한 검사만 하기 때문에 더 자세하게 하려면 병원을 가보라고 하는 걸 안 갔다. 이런 중에도 신기한 것이 글을 쓸 때면 머리가 맑아지는 것이다. 정신집중을 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글을 써야 할 것 같다.

내가 덤벙거리는 기질은 없나 곰곰 생각해본다. 앞으론 좀 침착해지자고 다짐을 하지만 이게 나이 탓이라면 그냥 순응할 수밖엔 뾰족한 도리가 없다. 그래도 건강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긴 한데 정신이 먼저 노화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백세시대가 왔다고 요란하지만 우리 세대가 그것을 구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욕심을 부리자면90세 시대엔 끼고 싶지만 그런 복도 기대할 수가 있을까. 이 나이에 글을 쓸 수 있다는 것만도 감사하면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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