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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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의 비애
  • 향수칼럼
    이흥주 수필가
  • 승인 2017.05.04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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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이 바쁜 때가 됐다. 요즘엔 틈만 나면 밭에 가서 산다. 봄에 일찍 심은 감자는 싹이 시퍼렇다. 강냉이 조금 심은 건 까치와 비둘기란 녀석이 제 놈들이 심은 것인 냥 나오는 족족 파먹는다. 오늘은 어디로 들어왔는지 몇 년간 안 오던 멧돼지도 들어와서 비닐 씌운 이랑 두둑을 짓밟아 놓았다. 평소 높은 편은 아니지만 이런 걸 보면 정말 혈압이 올라간다. 동네 바로 근처인데도 이것들로부터 안전할 수가 없다. 삥 둘러 망으로 울타리를 쳤는데도 어디로 들어오는지 고라니도 들어오고 하늘이 열려있으니 까치나 비둘기 꿩은 자유자재로 내 밭을 날아든다, 요놈들을 대체 어찌해야 하나.

지금은 고추 심을 준비에 분주하다. 이랑 두둑을 만들고 비닐 씌우는 작업을 한다. 이렇게 해놓고 5월 초면 고추모를 심는다. 밭에서 일을 하다 보면 본의 아닌 살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개구리가 아직 곤한 겨울잠을 자다가 난데없는 벼락을 맞는다. 어떨 땐 참혹한 모습으로 관리기 날에 몸이 뭉개진 개구리가 나오면 밭을 갈지 않을 수 없는 나로선 속이 상한다. 왜 하필 밭에서 잠을 자다가 참변을 당하며 맘을 상하게 하나. 어제도 삽으로 이랑두둑 만드는 작업을 하다가 내 삽날에 여러 마리의 개구리가 변을 당했다. 다행히 다치지 않은 개구리가 삽날에 따라 나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대개는 죽을 정도로 다쳐서 나온다. 깜짝 놀라며 신경이 쓰이지만 그렇다고 작업을 멈출 순 없다. 난 버둥거리는 개구리를 향해 말한다. 이놈들아 제발 내 밭에서 잠자다가 너희도 혼나고 나도 놀라는 일이 없도록 해라 하고. 어제 작업에 너 댓 마리나 나왔다. 초봄부터 관리기로 몇 번이나 흙을 잘게 부술 때 죽거나 없어졌을 텐데 어디서 다시 또 들어왔는지 이렇게 많이 나오는 데는 정말 의아하다.

우리지방에서 ‘경칩이’라고 부르며 이른 봄에 하천에서 잡아다가 먹기도 하는 개구리가 나온 지는 한참 됐다. 요즘 내 삽날에 잠을 깨는 개구리는 참개구리라는 녀석이다. 개구리 중에 내가 알기로 가장 잘 생긴 놈이다. 맹꽁 맹꽁 우는 맹꽁이와는 비슷하다. 맹꽁이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그래서 요즘엔 여름에 맹꽁이 울음소리를 못 듣는다. 맹꽁이는 배가 아주 크고 동작이 둔하며 모양도 잘 생기질 않았다. 그런데 이 참개구리는 맹꽁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몸매가 훨씬 잘 빠지고 모습도 조금 작고 예쁘다. 등이 좀 푸른색을 띠며 검은색과 혼합이 돼 얼룩 줄이 났다. 요 녀석들이 나에게 그렇게 많이 변을 당한다.

개구리의 천적은 뱀이다. 우리가 어릴 때 뱀이 잡아먹는 모습을 보면 왜 그리 불쌍했던지. 그래서 먹고 살려고 개구리를 입에 물고 있는 뱀을 보면 돌을 던져서 꼭 살려 줬다. 뱀 입에 물려 다리를 버둥대며 비명을 지르는 개구리를 보면 굉장히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개구리나 뱀이 다 같이 귀해졌다.

뱀에 먹히는 개구리를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우리는 또 개구리 사냥을 엄청 많이 했다. 맹꽁이나 참개구리의 뒷다리는 살이 많다. 먹을 게 귀하던 시절 우리는 몰려서 칼이나 낫을 가지고 다니며 개구리를 잡아서 한사람은 몸통을 잡고 한사람은 뒷다리를 잡고 잔인하게 잘랐다. 이렇게 자른 다리를 한 움큼씩이나 들고 다녔다. 그것을 불을 피워서 구워 먹으면 맛이 참 좋았다. 살겠다고 개구리를 먹는 뱀이나 고기 맛을 보려고 개구리 뒷다리를 잘라 불에 구워먹는 우리나 다를 게 없다.

개구리는 사람에게 전혀 해를 입히지 않는다. 곡식을 먹거나 다른 피해도 주지 않으며 해로운 곤충이나 벌레를 잡아먹어 이로움을 주는 동물이다. 사람과 친하던 까치가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새로 바뀌고 고라니나 멧돼지도 백해무익한 짐승인데도 보호를 받고 있는 현실이지만 개구리를 특별히 보호하는 건 없다. 비둘기도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조류로 전락한 지가 한참 됐다. 하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개구리가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는 말은 없다.

이른 봄 얼음이 채 녹기도 전에 들리는 개구리 울음소리와 여름밤 모심어 놓은 논에서 들리는 울음소리는 얼마나 정겨웠는가. 여름밤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을 때쯤엔 왜 그리 밤이 짧고 고단했던지. 마음은 왜 또 이유 없이 그렇게 서글펐는지. 세상은 자꾸 변한다. 이로웠던 동물이 해를 끼치는 유해조수가 되고 사람들이 별 신경을 안 쓰고 관심도 없는 개구리가 이렇게 새삼스럽게 이로움을 주는 동물이라는 걸 이봄에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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