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용제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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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제 감상
  • 정우용 지용회 이사
  • 승인 2017.05.25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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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제는 올해로 30번 째 열렸다. 지용제가 처음으로 시작된 것은 1988년 서울에서였다. 월북으로 오인되어 수십 년간 빛을 보지 못하던 정지용 시인의 작품이 해금되면서 지용회가 결성되고 지용회가 지용제를 마련하여 해금된 정지용의 시를 환영했다. 그 무렵 정지용 시인의 고향인 옥천의 문화원이 간청하여 같은 해 옥천에서 지용제를 다시 열었고, 그 후 매년 정지용 시인의 생일인 5월 15일을 전후하여 옥천에서 계속되어 왔다.

지용제는 매년 서울에서 원로 시인을 비롯한 많은 시인과 문학열차 또는 문학버스를 통해 지용회 회원이 참석하고 있다. 또한 전국의 문학도들이 몰려들어 옥천시내가 교통이 원활하지 않을 때도 있다. 지용제에서 시인들은 정지용의 명시를 낭송하고 참석자들은 정지용의 시를 노래한다.

지용제는 한 시인을 기념하기 위하여 매년 열리는 문화행사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것이며, 정지용 문학상은 시인들이 가장 받고 싶어 하는 권위 있는 문학상이 되었다.

오늘의 지용제가 있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정지용 시인의 작품이 해금 되던 해 한국일보 김성우 주필, 색동회 회장이던 한국일보 김수남 이사, 정지용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 정지용 시인의 이화여대 제자인 김지수, 황경운 그리고 깊은샘 출판사 박현숙 사장 등 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오늘의 지용제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해금되던 때만 해도 옥천의 정서가 “정지용이 다리를 놓아 주었느냐? 공장을 지어주었느냐?” 할 정도의 분위기였다. 초창기의 지용제는 읍 단위 치고는 꽤 큰 1천석 가까운 관성회관에 반도 차지 않았으며, 그나마도 백일장에 참가한 학생들이었다. 그것도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떼로 모여 재잘거려댔다. 군수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옥천은 옥천이 낳은 위대한 대시인의 생일 잔칫날 그의 흉상 앞에 꽃 한 송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현상을 슬퍼하며 그 당시 사회자였던 한국일보 김수남 이사는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는 사람들이 안타깝다”고 통탄했다.

큰 시인을 낳은 고장이 시인이 얼마나 귀한 줄을 몰랐다. 시에 무관심하고 시인을 박대하는 땅이 시인 정지용의 고향이라는 것이 참으로 억울했다. 올해도 행사장에는 정지용 시인의 종친회의 화환만이 쓸쓸하게 서있음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 12일 서울 세종홀에서는 스물아홉 번째 지용문학상 시상식이 있었으며, 19,20,21일은 옥천에서 제30회 지용제가 열렸다. 20일에는 금년 지용문학상 수상자인 김남조 시인을 비롯하여 지용회 회장인 유자효 시인, 전 지용회 회장 이근배 시인, 신달자, 나태주, 정희성, 도종환, 강은교, 김후란, 한국의 기라성 같은 시인이 다 모였다. 정지용이 아니면 평생에 옥천을 한 번쯤 발을 디딜까 말까 하는 시인들이다. 김남조 수상자를 비롯한 역대 수상자들이 무대 위에서 벌이는 <정지용 시의 만남> 토크쇼는 수준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흔히 21세기를 문화의 시대라고 한다. 또는 이야기(story)의 시대라고 한다. 매년 1월 1일 해맞이를 위해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정동진은 원래 석탄을 쌓아 놓았던 칙칙한 간이 역이었다. <모래시계>라는 드라마의 이야기가 접목되어 정동진은 새롭게 태어났다. 평창은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이효석의 단편소설을 접목하여 수십만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춘천시는 아예 역 이름을 <김유정 역>이라고 바꾸고 김유정 문학관으로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황순원의 <소나기>와 양평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황순원은 평안남도 출신으로 양평에 살아 본 적이 없다.

단지 <소나기>라는 단편 소설 후반에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의 양평을 끄집어내어 <소나기 마을>이라는 문학마을을 만들어 관광 수입을 올리고 있다.

옥천의 포도, 옥천의 묘목도 중요하지만 정지용이야말로 옥천의 명산물이다. 집집마다 정지용의 시가 걸려있고, 학교마다 정지용 시 낭송회가 열리고, 가게에는 정지용 기념품을 진열하고 정지용을 팔고 있어야 한다. 옥천역엔 <향수>의 시가 대형 입간판으로 서 있어야 하며,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오면 <향수>노래가 울려퍼져야 한다. 옥천 군민은 정지용의 시 한편은 암송할 줄 아는 대한민국 문화의 중심, 시의 중심지를 만들어야 한다. 5월에 3일 간의 축제가 아니라 옥천은 365일 시로 날이 밝고 시로 해가 지는 시공화국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옥천이야말로 이효석, 김유정, 황순원보다도 훨씬 큰 재산인 정지용을 가지고 있다.

정지용으로 옥천이 한국 시의 고향이 되었으며, 옥천이 더욱 아름다워졌고, 우리의 언어가 더욱 아름다워졌다. 정지용의 시로 인하여 노곤한 식곤증에 빠져 나른하게 잠들려하는 우리를 일깨우며, 일상적인 삶의 속박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준다. <향수>를 낭송하고 있으면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봄비와 같이 삶을 새롭게 만들어 준다.

정지용 시인으로 5월이 더욱 아름답다. 옥천이 더욱 빛난다.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그립고 간절하게 물들이는 지용의 시집을 구해 읽자. 옥천 시 공화국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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