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소리 들으며 자라는 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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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소리 들으며 자라는 작물
  • 이흥주
    수필가
  • 승인 2017.06.01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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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밭뙈기 조그만 걸 부치다 보니 난 밭에서 가끔 글을 캐낸다.

  밭농사로 지은 글은 흙냄새가 물씬물씬 난다. 내가 캐낸 고구마처럼 볼품은 없지만 그래도 읽어보면 소박한 맛은 날거란 생각을 한다. 오늘도 농사이야기로 하얀 종이를 메우고 있다.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농사꾼은 부지런해야 한다. 신발바닥이 닳도록 밭으로 쫓아다녀야 한다. 부지런하게 나가 하는 아침 식전 일이 한나절 일을 당한다. 요즘처럼 더운 날 아침 먹고 어정거리다 밭에 가면 일할시간이 별로 없고 더워서 능률도 오르지 않는다. 새벽에 될 수 있는 대로 일찍 일어나서 밭으로 가면 크게 덥지도 않고 그때 두어 시간 하는 일이 한 나절 일을 한다.

 할 일이 없어 그냥 빈 발걸음으로 밭을 한 바퀴 돌아보고 오더라도 농부는 매일 새벽 밭으로 나간다. 거기 가면 온갖 정성을 다해 심어놓은 곡식들이 함박웃음을 웃으며 반긴다. 전부 내가 낳은 자식들이다. 야들야들 예쁘게 자라는 자식들을 보고 느끼는 흐뭇함은 농부만이 맛보는 즐거움이다.]

  한쪽에선 감자가 자라고 있고 한쪽에선 강냉이가 키 재기를 하면서 도열하고 있다.  손자들 오면 따주려고 심은 방울토마토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쑥쑥 키가 늘어나고 옆에서 강낭콩이꽃을 피우고 있다. 저쪽에선 땅콩이 반듯하게 줄을 서 연노랑 색으로 아침이슬에 싱싱하고, 시금치가 이제 저 좀 수확해가세요 하고 잎을 벌리고 있

다. 고춧잎에 앉은 영롱한 아침이슬이 너무도 안타깝다. 내 자식들이 한창 자라고 있는데 날은 혹독하게 가물고 있다. 아침이슬 한 방울이 아깝다. 자식이 목이타서 괴로워하고 뜨거운 한낮 땡볕에 서리 맞은 호박잎처럼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보는 농심은 정말로 괴롭다. 열심히 일만 한다고, 매일 새벽 밭에가 다독거린다고 작물이 그냥 자라주진 않는다. 농부의 정성어린 마음과 손길에 더해서 하늘이 도와야 한다. 예부터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 했다. 농부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늘이 돕지 않으면 농사가 힘들다.

  어제는 할 수없이 밭 밑에 흐르는 저수지 수로에서 양수작업을 했다. 그나마 밭 가까이 수로가 있어서 다행이다. 조그만 양수기로 물을 퍼 올려 보지만 단솥에 뿌리는 물처럼 바싹 마른 땅속으로 다 스며들고 좀처럼 고이지 않는다.

 한 시간여를 퍼야 길지 않은 밭고랑 하나에 물이 좀 고인다. 감자밭 몇 골에 한나절 양수작업을 하니 겨우 밭고랑에 물이 고인다. 오후에도 강낭콩 등에 물을 퍼 먹였다. 뜨거운 땡볕에 삶아놓은 것처럼 타들어가던 잎이 물을 푸고 한 시간쯤 지나면 거짓말처럼 싱싱해진다.

 사람이 아프다가도 약을 먹으면 요렇게 금방 병이 나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요놈들은 수확을 하면 다 손주들 입으로 들어간다. 감자, 고구마. 강냉이를 손주들이 오물거리고 먹는 걸 보면 일을 하면서도 힘이 드는 게 아니라 마냥 즐겁기만 하다. 농심은 천심이다. 땅을 파는 사람들은 크게 욕심이 없다. 그냥 소박하게 내가심은 대로만 수확하게 해주세요!'하고 바라는 게 다다. 그래서 농부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순박하고 곱기만 하다. 계산적이고 일확천금을 노린다면 절대 농사는 못 짓는다. 땅과 한 마음이 되어 자연과 벗 삼아 살고 싶은 사람들이 하는 게 농사다. 또한 천직을 버리지 않고 그냥 하는 게 농사다. 요즘은 귀농, 귀촌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나는 그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땅 파서 큰 부자 되겠다는 마음은 버리고 농촌으로 들어오라고.
소박하게 자연과 벗 삼아 살고 싶으면 시골로 오라고.

  옛날부터 농사로 벼락부자가 난 일은 없다.  천석 군, 만석 군이 있기도 했지만 워낙 많은 토지를 갖고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지, 공장에서 물건 뽑듯이 땅에서 곡식을 뽑아내는 기술이 있어서 만석 군이 된 것은 아니었다. 한데 요즘은 기계화된 선진 영농기술로 머리만 잘 쓴다면 농촌 부자가 가능할 것이다. 농촌에도 돈을 많이 벌었다는 사람들이 줄줄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공동화 되어가는 농촌에도 새 바람이 불고 활력을 되찾아 사람발길이 북적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도 나는 새벽부터 밭으로 간다.

  어제 물을 푼 감자밭과 강낭콩 밭이 싱싱함으로 넘쳐난다. 자두나무 몇 그루에도 물을 흠씬 주었더니 싱그러운 자태로 건강함이 넘쳐난다. 고추는 물맛을 보지 못해 생기가 떨어진다. 오늘은 월요일, 수요일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우리 자식들에게 빗물 좀 흠뻑 내려주소서! 하고 기원한다.

 나는 내 밭에서 자라는 작물들에게 가을 찬바람이 부는 날까지 새벽 발소리를 들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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