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시작한 장사에 일평생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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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시작한 장사에 일평생을 보냈습니다”
  • 유정아기자
  • 승인 2017.07.2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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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있던 ‘호시절’ 그립지만 지금 단골손님 고마워
“46년간 ‘동원상회’ 운영하며 7남매 길러내 뿌듯”
젊은 시절 추억과 뗄 수 없어… 힘 닿는 데까지 운영

젊은 시절 대전에서 양복점을 하던 이택우(76)씨와 그의 남편은 고향인 옥천군으로 돌아와 ‘동원상회’ 슈퍼마켓을 열었다. 당시에는 이렇게 오랫동안 운영할 줄은 몰랐다는 이씨는 46년간 이곳을 지키며 7남매를 키워냈다. 반세기 가까이 운영하면서 젊은 시절의 추억과 ‘동원상회’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고단한 몸에 이젠 그만 쉬라는 자녀들의 성화에도 일평생을 함께한 이곳을 떠날 수 없는 이유다. 그의 46년 슈퍼마켓 이야기를 들어본다.<편집자주>

 

동원상회 이택우(76)씨

옥천읍 옥천동이로 655, 이곳은 46년째 변함없이 운영하는 ‘동원상회’ 슈퍼마켓이 있는 곳이다. 언제나 그렇듯 슈퍼를 지키고 있는 이택우(76)씨는 지난해까지 남편과 함께 운영했지만 지금은 건강상의 이유로 이 씨만 운영하고 있다. 옥천군 세산리가 고향이라는 이 씨는 젊은 시절 대전에서 양복점을 차리기도 했었지만 1971년, 이곳 옥천동리로에 터를 잡았다.

이씨는 ‘동원상회’를 운영할 초기에는 대전에 있던 집을 처분하지 않았다. 당시엔 잠깐 머물다 다시 대전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며 웃으며 회상했다.

이씨는 “잘 되던 양복점을 그만두고 옥천군으로 온 이유는 고향에 잠시 있고 싶었던 향수였다”며 “마침 지인에게 추천받은 업종이 슈퍼마켓이었고, 우연의 연속으로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왔다. 그렇게 시작한 ‘동원상회’에 46년을 몸담으며 일평생 이곳에서 보내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동원상회 건물

▲학생손님 많던 ‘호시절’

처음 동원상회를 운영했던 시기엔 인근 동이중학교가 있어 학생 손님이 많았다. 준비물을 사는 학생들과 군것질 거리를 사가던 학생들 덕분에 초기 정착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씨는 “슈퍼마켓 주인으로 학생들을 대하기보다 본인 또한 7남매를 키웠던 사람으로서 학생들을 대하게 됐다. 어린 아이들의 방문은 언제나 반가웠다”라며 “자식 같은 학생들 덕분에 동원상회 어느 정도 운영이 가능했고, 학생들도 이곳을 동네 사랑방처럼 편하게 드나들었다. 학교뿐만 아니라 이곳에도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던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계속될 줄 알았던 학생들의 발걸음도 뚝 끊겼다. 1994년, 작은 시골학교였던 동이중학교가 폐교되면서 학생손님 구경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이씨는 “학교가 폐교되면서 학생 손님이 줄어 허전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학교가 있던 자리에는 양로원이 생겼다고 들었다. 슈퍼마켓 운영도 어려워지면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야 하나, 업종을 바꿔야 하나’ 이런 고민들도 많았다”라고 말했다.

 

▲잊지 않고 들르는 단골손님 고마워

이제 동원상회에는 학생 손님들 보단 나이 지긋한 동네 주민들이 주요 고객층으로 변했다. 승용차가 없는 주민들과 담배를 사러 오는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이 씨는 예전에 비하면 매출이 많이 줄었지만 일상처럼 들르는 단골손님덕분에 큰 걱정은 덜었다고 언급했다.

이씨는 “단골손님들도 이젠 드문 상황이다. 요즘엔 차가 있는 집이 많아서 옥천읍내 큰 마트나, 대전으로 많이 나가기 때문에 손님이 많이 줄었다”며 “당연히 매출이 줄 수밖에 없다. 이제는 담배를 사러 오는 분들이나 차가 없는 동네 주민들이 들르는데 일부러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다. 몇 명 안 되는 손님이더라도 잊지 않고 들러주는 단골손님이 고마울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부업하면서도 ‘동원상회’ 이어가

이 씨와 남편은 인근 동이중학교가 폐교되면서 타 업종을 고민하던 중 포도농사를 부업으로 시작했다. 이 씨의 슬하에 있던 7남매의 자녀들이 조금씩 보텐 돈으로 800평(2644.6㎡)규모의 토지를 매입할 수 있었다. 가게일과 농사일도 병행하면서 이들 부부의 분업생활이 시작됐다.

이씨는 “남편은 포도농사에 매진하고, 본인은 가게를 돌봤다. 포도 농사는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인건비를 절약하려 혼자 농사를 지어야 했다”며 “나 또한 장날엔 직접 캔 나물을 가지고 장에 나갔다. 많은 고민을 했지만 가게를 유지하는 선에서 7남매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이것저것 많은 일을 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포도 농사일과 가게 운영을 해왔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지금은 도지를 준 상태다.

동원상회 출입문

▲“동원상회로 7남매 다 키웠다”

이 씨와 남편은 딸 6명, 아들 1명까지 7남매를 두고 있다. 이 씨는 첫째 자녀와 막내 자녀의 나이 터울이 20년 가까이 되기 때문에 계속해서 학비 부담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씨는 “동원상회로 아들·딸들을 키웠다. 부자처럼 벌진 못해도 이곳 덕분에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면서 대학교까지 보냈다”라며 “7명 모두를 보내진 못했고, 4명만 대학교에 보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씨는 “남들은 하나, 둘만 자녀를 키워도 대학교 등록금이 부담된다고 하는데 우리는 4명을 대학교에 보내려니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결국 대학교에 보내지 못한 자녀들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래도 걱정 안 시키고 잘 자라줘서 고맙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뒷바라지 했던 자녀들 대부분이 이제는 이 씨와 같은 부모가 됐다. 이씨는 “동원상회로 기른 아이들이 모두 사회인으로 생활하고 있다”며 “첫째 딸이 네 살 때 이곳에 왔는데 벌서 쉰이다. 첫째와 18살 차이나는 막내아들까지 이제 서른을 넘었으니 큰 걱정은 없다”라고 말했다.

과자진열대

▲이젠 뗄 수 없어… 평생의 동반자

이 씨는 동원상회를 운영했던 46년간의 시간 중 어려웠던 순간을 꼽을 수가 없을 정도로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 시시때때로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씨는 “1970낸대 경제 호황기는 짧았고 인근 동이중학교의 폐교로 학생 손님이 줄었다. 지금까지 계속되는 경기불황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순간이 없었다”며 “동네 작은 슈퍼마켓이 버티기엔 현실은 녹록치 않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 씨는 이곳을 포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자식들은 그만 하라고 하는데, 아직까지는 더 하고 싶다. 손주, 손녀들 용돈이라도 쥐어주려면 그래도 평생 해오던 일이 낫지 않나 싶다”라며 “동원상회는 46년간 일터로서의 의미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해 한해동원상회를 운영할수록 이곳에도 정이들이 바꾸지 못했다. 이곳은 본인의 추억이자 7남매 아이들의 어릴 적 추억이 되었다.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이 씨는 앞으로의 계획은 ‘남편과 함께 동원상회를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남편이 지난해 8월부터 건강이 좋지 않다. 본인도 나이 들어 생기는 자잘한 증세는 갖고 있다. 남편이 건강해져서 돌아오고, 본인도 힘 닿는 데까지 하다가 천천히 마무리하고 싶다”라고 소망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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