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효숙 시인 ‘거기서 누가 우느냐’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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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숙 시인 ‘거기서 누가 우느냐’ 출간
  • 천성남기자
  • 승인 2016.03.0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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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돌뱅이 시인, 안효숙 시인이 고객에게 화장품을 팔고 있는 모습.

만고풍상 속 꽃피워낸 生의 찬가

‘누가 세상살이 묻거든 고추보다 더 맵다고 할래요’

영동, 보은, 금산, 논산 등 시골 5일장을 떠돌면서 화장품 파는 18년차 장돌뱅이 아낙네 안효숙(55)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거기서 누가 우느냐’(산마을출판사·1만2천원)를 출간했다.

청주출신 안효숙 시인은 “이 책은 슬픈자화상의 넋두리가 아닌, 주변인을 함께 껴안는 이야기를 담고자 한 것”이라며 “어쩌면 슬픔 속에 갇혀 우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통해 고달픈 인생을 넘어선 1집 ‘나는 자꾸만 살고 싶다‘의 절제된 감정의 강한 의지이고 싶었다”고 말하고 있다.

안 시인은 “네 번째 책을 펴낸 이후 6, 7년간 절필한 것은 진정한 꽃을 피우기 위해 강인한 생명력을 저장해야 했던 것”이라며 “아이들이 크니까 하루에만도 수만원 씩의 돈이 필요했고 그 돈을 벌기 위해 앞만 보면서 걸어가야 했던 혹독한 기간이었다”고 털어놨다.

또한 그는 “내 눈앞에 나타난 인생의 스프 같았던 그 친구는 10년 독자로 내게는 ‘선물 같은 친구’였다”며 “365일 일만 하느냐, 죽는 마지막까지 나를 위해 진정한 독자로 남고 싶다고 말한 그 친구는 깊은 병으로 이 세상을 떠났다”고 술회했다.

그리고 “그 친구로 인해 난 글을 다시 쓸수 있었고 행복함과 다소 여유 있는 삶 속에 졸업을 앞둔 1남 1녀의 아이들 뒷바라지에 강한 삶을 느끼며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16년 전, 당시 IMF가 오던 해 청주에서 의류 대리점업을 했던 그는 무던히도 혹독했던 삶 속에 내동댕이쳐졌다. 가족이 흩어지고 고향을 떠나 야반도주 하다시피 했던 인생에 오직 위안이라고는 글 쓰는 것 밖에 없었다.

당시 도종환 시인의 문하생이었던 그는 여백회 회원으로 활발한 시작(詩作)활동을 했던 문인이었다.

안효숙씨가 4집 이후 발간한 ‘거기서 누가 우느냐’ 책표지.

그러나 삶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대전에서 그는 리어카에 붕어빵을 구워 팔았다. 그리고 삶속에서 쌓여가는 생채기를 글로 풀어냈다.

그 글을 라디오를 통해 KBS, MBC로 보냈다. 그리고 ‘최고의 편지상’을 받았다.

1999년 경 지금은 제2의 고향이 된 옥천읍 옥각리에 둥지를 틀었다.

책을 낸 계기에 대해 그는 “혼자 말을 잇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때 운명의 여신이 손을 흔들었다. 한 지인이 부도난 회사의 화장품을 한 차 정도 팔아보라고 했다. 그래서 서슴없이 장으로 나왔다. 그때부터 난 화장품 파는 장돌뱅이가 되었다” 라고 답했다.

“친정어머니는 부도가 나 거의 날아가 버린 우리 재산 중 컴퓨터를 고이 간직하고 계시다가 내게 전해주셨어요. 슬픔을 쏟아냈어요. 삶에서 오는 고통은 글을 쓰며 날아갔고, 엷어져 갔고, 그래서 힘을 얻었어요”

장날이 서는 시골 장을 따라 활동하였던 그는 “화장품을 팔고자 소주 반병을 들이켰어요. 잘 팔렸어요. 소주 반병이 남은 화장품을 잘 팔아주더군요. 그런 시절이었어요. 2남 4녀의 막내였던 나를 어머니는 고이 보듬어 주셨지요, 친정어머니만 생각하면 지금도 불효자라 느껴집니다.

현실에서 위로받을 수 없었던 나는 미친 듯이 글을 쓰며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올렸어요. 새벽2시에 사이트에 들어가니 30, 40개의 댓글이 올라와 있었어요. 힘과 용기를 주는 글들이 내겐 희망이고 생명이었어요. 그게 바로 ‘그 여자이야기’입니다.” 라고 말했다.

절망과 좌절 속에서도 결코 놓을 수 없었던 그 희망의 끈이 이제 행복의 싹을 틔우고 있다.

충북작가회의 회원이기도 한 그는 오는 2월 28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성수카페에서 유명 시인들이 함께 축하해주는 ’출판기념회‘를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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