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못 벌어도…오늘도 ‘옥천스럽게’ 문을 연다”
상태바
“돈 못 벌어도…오늘도 ‘옥천스럽게’ 문을 연다”
  • 박금자기자
  • 승인 2017.09.14 13: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사였던 부친이 창업…딸과 함께 3대째 운영
“슬램덩크 나올 땐 손님 장사진...호시절 누려”
책 통해 꿈 찾은 사람 보며 긍지와 보람 느껴

편집자주: 읽고 싶은 책이 있어도 책값이 없어 못 읽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학교나 도서관, 각 가정에서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데도 책은 우리 일상에서 멀어져만 간다. 옥천에서 삼대에 걸쳐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동아서적’의 천세현 사장은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이라는 작은 세상만 들여다본다며 서운한 속내를 비쳤다. 천 사장네 서점 속으로 들어가 본다.

오영숙여사의 서각 작품

▲ 책 읽는 아이들 줄었지만, 자부심과 긍지로 이어간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구요?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 아닙니다. 날씨 선선하고 단풍도 고운데 누가 집에서 책 보려고 하나요? 가을엔 다들 놀러 다닙니다. 오히려 장마 때나 추운 겨울에 책을 더 많이 읽어요. 그 시기에 책이 잘 나가니까요”

 

동아서적 천세헌 사장(63)은 요즘 아이들은 예전에 비해 독서하지 않는다며 쓸쓸하게 웃었다. “스마트 폰만 열면 원하는 정보며 재밋거리가 쏟아지고 리모컨만 누르면 질 좋은 다큐멘터리나 인문학 강의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보니 책은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어요.”

동아서적 천세헌사장

천사장은 옥천군 삼양리에서 부친 천범영(84)과 오영숙 사이의 3남2녀중 장남으로 태어나 중학교 2학년 무렵 읍으로 이사를 왔다. 교직에 몸담고 계셨던 부친은 월급만으론 다섯 아이를 제대로 교육시킬 수 없다며 지금의 동아서적(옥천읍 중앙로)을 창업했다. 이후 천사장이 군대를 제대하고 부친을 대신해 지금껏 동아서적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주로 청소년들이 참고서나 만화책을 사 가는 게 고작이지만 천사장이 경영을 시작했을 때는 서점 문이 닳도록 드나드는 손님이 많았다.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서가의 책도 많았다. 당시 월간지인 ‘신동아’ ‘월간조선’의 판매 부수만으로도 생활비 정도는 거뜬했고,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만화 ‘슬램덩크’ 와 ‘드레곤볼’은 없어서 팔 수 없을 만큼 호시절이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사람들이 책과 멀어졌고 서점도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2000년대 이후엔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천사장은 부친의 뜻으로 업종변경이나 폐업은 꿈도 꾸지 않는다며 “돈은 못 벌어도 자부심과 긍지로 서점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부터는 딸(천경희·35)이 운영을 거들고 있어 3대째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 책 읽는 행위는 중독이다

 

“e-book등 전자책, 도서관 등이 서점 매출에 악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천 사장은 “활자를 읽는 것도 중독입니다. 읽는 사람은 꾸준히 읽어요. 도서관에 가거나 전자책을 보는 사람도 소장을 위해 책을 구매 합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컴퓨터 보급으로 매출이 급격히 줄었을 때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책 읽는 습관을 만들어 줄까’ 고민 끝에 서점 밖에 책과 의자를 놓아두기도 했다고 한다. 눈치 보지 않고 얼마든지 책을 읽고 갈 수 있도록 한 것이지만 의자는 언제나 텅텅 비어 있었다고. 또 정확하게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알고 찾아오는 경우가 드물고 “뭐라도 한번 읽어 볼까?”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서점을 찾는 경우가 허다하단다. 그런 사람은 다시 오지 않는다고 했다.

 

아주머니 한 분이 서점을 찾아와서 천사장의 두 손을 꼭 잡고 감사인사를 한 적이 있었다. 오래전 그 녀의 아이가 책을 사러 왔을 때 천 사장이 “아무 책이나 팔 수 없다. 오지 않아도 좋으니 읽고 싶은 책을 알아 오라”며 돌려보냈고, 몇일 후 정확하게 읽어야 할 책을 알아온 학생은 그 책이 계기가 되어 좋은 대학에 합격했으며, 멋진 사회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천사장은 “그 친구는 제대로 된 꿈을 책 속에서 찾았을 것이다. 몇 번의 그런 일들이 서점을 운영하는 긍지가 되어 오래도록 이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했다.

 

▲ 옥천에서 서점을 한다는 것

 

천사장은 서점을 운영하다보니 “예전 초등학교 3~4학년 아이들 수준의 책을 요즘은 중학생도 읽지 않는다”고 말한다. 책을 좋아하는 소수는 더 나은 교육을 위해 도시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란다. 그나마 책을 읽는 인구도 옥천 사람이 아닌 유입인구가 더 많다고 한다. 옥천인구의 절반이상은 농업에 종사하거나 개인 사업자들이다. 사실 그들은 책 읽을 시간이 없다. 대도시로 치자면 중형 아파트 1개 단지의 인구 정도만 책을 이해하고 접근하려고 한다고 그는 말한다. 한때는 북카페로 바꾸면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옥천스럽게 서점을 운영하면 된다”며 부친이 반대해 무산됐다. “지금 단골들은 철 바뀔 때 서점을 찾는 이가 대부분이예요. 나물이나 버섯채취 시기가 되면 식용 가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책을 사는 분들이죠. 옥천스러운 서점 맞죠?”

동아서적 외경

▲ 돈을 벌 욕심은 애초부터 없었다.

 

“가족이 먹고 살만큼은 팔리나요?” 기자의 질문에 천사장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장사의 근본은 대동소이 합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책 도매상들도 힘이 듭니다. 아니, 모든 장사가 힘이 들어요. 나는 돈을 벌기위해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가족이 책을 읽고 반납하는 것만으로도 남는 장사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즐겁게 서점 문을 열지요.“

천사장은 부족한 생활비는 연금으로 충당하고, 가끔은 장성한 자녀의 도움도 받는다고 했다.

 

▲ 즐거움은 만들어야 찾아오더군요.

 

천 사장의 모친(오영숙)은 서예와 서각, 그림에 남다른 소질이 있어 오래전부터 작품활동을 했다고 한다. 서점에 들어서면 맞은편에 ‘당신이 맑은 새벽나무 그늘 사이에서 산보할 때 나의 꿈은 작은 별이 되리라’(한용운· ‘나의꿈’ 일부)라는 글이 서각되어 있는데 모친의 작품이라고 했다. 서점은 꿈을 파는 곳이라는 것을 스스로 일깨우기 위해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었다고 한다. 부인(박수화·62)도 자원봉사센터장으로 남을 위해 봉사하며 즐겁게 산다.

 

가끔은 지인들이 찾아와 “나도 서점이나 해 볼까?” 라고 툭 던진다고 한다. 천 사장의 대답은 한결같다. “서점을 한다는 것, 결코 쉽게 보지 마라. 창업을 위해 1~2년은 배워야 한다. 엄청난 노동을 감내해야 한다. 매출에 대해 조바심을 내지 말고 그냥 즐기는 기분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스로 지식의 창고가 되어야 한다” 라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