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의 수식어와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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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의 수식어와 위상
  • 김묘순 시인
  • 승인 2017.09.2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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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수필가/(사)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정지용을 이야기할 때면 많은 수식어를 붙여 말한다.

그 수식어들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또는 누가 최초로 그러한 호칭을 붙여 사용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냥 이야기한다. 모르고 이야기하여도 이해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모르고 있으면 아니 될 중요한 인물들도 있다. 왜냐하면, 정지용은 옥천이 낳은 대표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르고 있으면 아니 될 사람들도 개념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위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현실이 답답하여 필자가 아는 정도만 기록하고자 한다.

일별하여 참고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바람으로 평자들의 정지용에 대한 수식어를 살펴보고자 한다.

양주동은 「1933년도 시단년평」에서 “정지용은 비상한 예술적 기법과 감각을 지닌 시인”이며 “현대시단의 한 경이적 존재”라고 말하였다.

김환태는 「정지용론」(󰡔삼천리문학󰡕 2호, 1938)에서“아무도 그의 천재를 감히 의심하고 부정하는 사람이 없다”라고 적고 있다.

김기림은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인문평론󰡕, 1939)에서 “한국 최초의 모더니스트”로 정지용의 구체적인 호칭을 만들고 “조선시사상 선구자”(󰡔시론󰡕, 1947)로 이야기한다.

동시대인이었던 박용철은 ‘1930년대의 릴케’로 극찬하며 「병자시단일년성과」(󰡔박용철전집 1󰡕, 1940)에서 “정지용의 출현이 조선시사에 분명히 새로운 한 금을 그었다”는 평을 내놓았다.

유종호는 「현대시의 50년」(󰡔사상계󰡕, 1962)에서 “현대시에 최초로 시적 완벽성을 부여한 시인”이라고 설명한다.

조지훈은 「한국현대시사의 반성「(󰡔사상계󰡕, 1962)에서 “현대시의 전환자”라고 못을 박았다.

김학동은 그의 연구서인 󰡔정지용연구󰡕(민음사, 1987)에서 “천재 시인 정지용은 한국근대시사에서 한 큰 거봉이 아닐 수 없다”라고 일침을 놓는다.

시인으로서 정지용은 당대 문인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청마 유치환은 정지용의 시에 반해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고백하였다. 이양하는 1920년대 동경제국대학 시절에 정지용의 시 「카페 프란스」를 읊고 그가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한다. 일본 동경대학 문학부장이었던 이마미찌 도모노부는 정지용의 시에 대해 ‘한국 현대시의 절창’이라 평하였다. 또 이양하는‘한국의 발레리’로 보았다.

이렇듯 무수한 호칭으로 불린 정지용은 다시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즉 정지용이 우리시대를 일으킬 문학의 희망으로 소생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정지용에 대한 막연한 호칭들과 수식어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아야만 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정지용은 옥천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만큼 옥천 사람의 자존심이고 옥천인의 정체성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인물임에 분명하다. 그것이 곧 정지용이 지니는 위상이다.

정지용의 어린 시절, 옥천의 기억을 더듬어보는 작품 「장난감 없이 자란 어른」을 감상해보자.

 

소나무로 만든 팽이는 오래 힘차게 돌지 못하기에 박달 방망이를 깎아 만든 팽이를 갖기가 원이었다. 박달 방망이 하나 별러내려면 어머니께 며칠 졸라야 됐다. 박달 방맹이를 들고 다시 목수집에로 아쉰 소리 하러 가야 한다.

“예라! 연장 상한다.”

아버지께 교섭을 얻을려면 그 골 군수한테 청하기만치 무서웠다.

어찌 어찌하여 가까스로 박달 팽이가 만들어져 미나리논 얼음 위에 바르르 돌아갈 때처럼 좋던 시절이 다시 오지 않았다.

연을 날리기에는 돈이 많이 들어 못 날리고 말았다.

팽이는 그것이 장난감이라고 하기 보담은 하나의 운동기구인 것이다.

예전 어른들은 운동이라는 것을 못된 것처럼 여기시었다.

지금 어린이들도 장난감 없이 어른이 되어 간다.

그러나 전에 장난감 없이 자란 어른들이 어린이 잡지에 만들어 슬픈 원을 푸는 것이다.

여러분, 어린이들은 그래도 우리 보다는 행복하십니다.

우리 함께 어른, 어린이 할 것 없이 󰡔어린이 나라󰡕를 즐겁게 즐겁게 읽읍시다.

「장난감 없이 자란 어른」 전문

 

그토록 정지용이 갖고 싶었다는 박달 팽이. 그것을 들고 구읍 어디쯤 있었던 미나리 논에서 힘차게 팽이를 돌리며 시인으로 자라고 있었던 정지용. 그는 꿈처럼 자라서 한국의 시단에 우뚝 솟았다.

돈이 없어 연을 날리지 못하였다는 정지용을 생각하니 애잔해진다. 그리고 슬퍼진다. 이 슬픔은 빨랫줄에 널린 빨래 같아서 햇빛과 바람에 날아가 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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