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이도종(掩耳盜鐘) 교훈을 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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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이도종(掩耳盜鐘) 교훈을 새기자
  • 임요준 편집국장
  • 승인 2018.02.01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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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요준 편집국장

1960년대 도시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도시와 농촌 간의 격차는 점차 심화돼 갔다. 1970년 박정희 정부는 산업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낙후한 농업과 농촌을 개발하기 위한 정책을 적극 추진하게 됐다. 그것이 바로 새마을운동이다. 
'근면(勤勉), 자조(自助), 협동(協同)'의 3대 정신을 기본으로 범국민적 운동으로 발전, 소득증대 분야, 생산기반조성 분야, 복지후생 분야, 정신개발 분야로 영역을 확대해 갔다.
그 결과 도시근로자 소득의 79%에 불과했던 농민 소득이 1982년에는 103%로 오히려 도시근로자 소득을 조금 웃돌았다.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게 되고 마을길이 넓혀졌다. 식량 증산과 주곡자급을 위한 노력으로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세계 최고수준을 기록한 통일벼가 개발되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새마을운동이 반세기를 바라보면서 국내를 넘어 해외에 수출되는 정신운동이 되었다. 가까이로 중국과 베트남에 이어 세네갈 등 아프리카 국가에 수출되는 우리의 자랑스런 정신문화다. 새마을운동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새마을 정신은 새마을운동중앙회를 중심으로 각 지역에 새마을회가 조직되고 읍면에는 새마을지도자 및 부녀회가 조직돼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옥천군도 예외가 아니다. 옥천군 새마을회는 지역의 발전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순수봉사단체로 그 맥을 잇고 있다. 특히 부녀회는 김장담그기 등을 통해 저소득주민들의 생활 속속들을 돌보고 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원면새마을부녀회의 일연의 사건들을 보면서 순수봉사단체인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부녀회는 전전 회장이 임기를 다하지 못한 상황에 지난해 3월 새로운 회장을 선출했다. 하지만 그나마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회장 불신임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물러났다. 이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들은 차차 제처두고라도 부녀회는 새로운 회장을 선출해야 하는 격동의 시기를 겪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불신임을 당한 측이나 당연한 논리라고 말하는 측이나 주장내용을 들어보면 부녀회야 어찌되든 양측 모두 자신들 입장만 내새우는 듯하다.
어릴 적 ‘새마을의 노래’에 맞춰 온 동네 주민들이 다함께 나서 마을길을 청소하며 마음을 나눴던 그때가 그리워지는 건 왜일까? 부디 이곳 부녀회가 엄이도종(掩耳盜鐘)의 교훈을 새겨 새마을운동의 본래 취지로 돌아가 지역을 이끌고 지역민과 호흡하는 순수봉사단체로 거듭나길 간절히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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