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가곡 ‘향수’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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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가곡 ‘향수’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 유자효 지용회장
  • 승인 2018.05.03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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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효 지용회장

88 서울 올림픽은 우리 현대문학사적 측면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올림픽을 앞두고 월북 또는 납북돼 한국문학사에서 사라진 문인들을 해금해야 한다는 요구가 각계에서 일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심 대상 인물은 정지용 시인이었다.
1988년 1월, ‘깊은 샘’에서 출판해 당국에 납본한 <정지용 시와 산문>에 납본 필증이 교부되었다. 해금의 묵시적 시그널이었다.

3월에 지용회가 창립되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개인의 이름으로 하는 첫 단체가 된다. 지용의 이화여대 동료 교수였던 방용구 선생이 회장에, 이대 제자인 김지수 씨와 휘문고 제자인 이광우 씨가 부회장에 추대되었다.

3월 31일, 정지용과 김기림의 해금이 정부에서 1차로 발표되었다. 5월 15일,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열린 제1회 지용제에는 제자 김연옥, 황경운, 시인 박두진, 구상, 김광균, 정진규, 이근배, 김성우 일간스포츠 사장과 김수남 색동회장, 배우 손숙, 김성옥, 출판인 박현숙 씨 등과 지용의 장남 구관 씨가 참석했다. 이 역시 개인의 이름으로 하는 국내 첫 축제이다. 지용회와 지용제는 이런 문화사적 의미를 갖는다.

박효근 옥천문화원장의 요청으로 6월 25일에는 지용의 고향에서도 지용제가 열려 제1회 지용 백일장과 지용 문예상이 시상되었다. 12월에는 계몽 아트홀에서 테너 임정근 씨가 ‘정지용 시 가곡의 밤’을 열어 일제시대 채동선 선생이 작곡한 지용 시 일곱 곡이 발표되었다.
1989년 3월 10일에 지용시비 건립을 위한 임정근 독창회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려 변훈 선생이 작곡한 ‘향수’가 초연되었다. 5월 15일, 옥천에서 열린 제2회 지용제에서 지용시비가 제막되고 박두진의 시 ‘서한체’에 제1회 정지용문학상이 시상되었다.

지용회의 고민은 오래 잊혀져 있던 정지용 시인을 어떻게 대중에게 알리느냐였다. 노래로 불려지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채동선이 작곡한 지용 시는 노래 ‘고향’ 외에는 대중적인 인기가 없었고, 그 ‘고향’마저도 다른 가사들로 불려지고 있었다. 채동선과 변훈 작곡 ‘향수’는 대중화되기에는 곡이 어렵다는 평이었다.
이때 나선 분이 KBS 음악 PD 신광철 씨와 가수 이동원 씨다. 이 씨는 해금 이후 지용시집을 읽고 노래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꼈다 한다. 두 분이 주목한 시는 ‘향수’였다. 그래서 인기 작곡가 김희갑 선생을 찾아가 작곡을 부탁했다. 김 선생은 시가 너무 길어 듀엣으로 부르는 게 좋겠다는 구상을 했다. 그때 떠올린 성악가가 박인수 테너였다. ‘당시 미국에서 귀국한 박인수 서울대 교수와 이동원 씨가 절정의 컨디션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씨로부터 시를 받은 박 교수는 “해 보겠다”고 했다. 가수까지 정해졌는데 문제는 작곡이었다. 시의 한 글자도 고치면 안된다는 의뢰자의 까다로운 요청에 곡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고심을 거듭하던 김 선생에게 신광철 PD가 조언했다. 1981년에 발표돼 당시 한국에서도 히트한 플라시도 도밍고와 존 덴버의 클래식과 팝의 크로스오버인 ‘Perhaps Love’처럼 만들어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영감의 불이 켜졌고, 김희갑 선생은 박인수 테너와 이동원 가수에 어울리는 곡을 만들었다. 드디어 명곡 ‘향수’가 탄생되었다. 작곡 의뢰 10개월 만이었다. ‘Perhaps Love’는 세계 최초의 크로스오버이며 ‘향수’는 한국 최초의 크로스오버가 된다. 그리고 ‘향수’는 세 개의 곡을 가진 시가 되었다.

1989년, 이곡이 음반으로 제작되고 KBS 열린음악회에서 박인수 교수와 이동원 씨가 함께 노래하자 클래식 계에서 난리가 났다. ‘서울대학 교수가 어디 대중가요 가수와 함께 노래하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국립 오페라단에서는 차기 단장으로 내정돼 있던 박 교수를 제명하기에 이르렀다. 박 교수는 이때 받은 충격으로 지병을 얻게 되었다.

박인수와 이동원이 함께 부른 ‘향수’가 우리 음악계에 미친 영향은 실로 크다. ‘향수’는 국민 가곡이 되었으며, 이후 클래식과 대중음악이 협연되기 시작했다. 정지용 선생의 ‘향수’는 이런 우여곡절 끝에 우리 음악계의 변화도 이끈 명시(名詩)인 것이다.

올 가을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다. 그때 ‘향수’가 북한 무대에서 공연되었으면 한다. ‘향수’ 탄생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이동원 씨와 북한 테너가 함께 부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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