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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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 싶어요”
  • 박현진기자
  • 승인 2018.05.1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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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원, 무연고·단절 생활인들의 간절한 소망
연고가 없거나 단절된 부활원 생활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소원을 얘기하고 있다.

가족이 멍에가 되고 회피 대상이 됐다. 9년간 재활치료를 받다 많이 나아졌다는 진단을 받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던 A씨는 우울증이 더 심해져 다시 돌아왔다. 그리곤 말했다. “집에는 가고 싶지 않아요”

올해 예순의 B씨는 벌써 30년째 이곳에 있다. 그녀는 이미 오래 전부터 다른 여자와 살고 있으면서도 이혼을 해주지 않는 남편 덕분(?)에, 직장생활을 하며 한 번도 엄마를 찾지 않는 장성한 아들 덕분(?)에 국가지원불가대상이 돼 유료로 시설 생활을 하고 있다. 동생이 시설생활비를 지원해주고 있다는 그녀 역시 집에는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옥천읍 모 중국식당에서 배달일을 한 경력이 있는 C씨는 가족에게로 돌아갔다 다시 돌아온 A씨를 보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고 했다. 아무 때고 가기만 하면 반겨주는 일하던 식당에는 가고 싶단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D씨는 자신이 아프다는 걸 수긍하지 못하는, 인정하지 않는 환자다. 따라서 자신을 이곳에 데려다 놓은 부모 형제를 ‘원수’이고 ‘나쁜 사람’이라고 여기기에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여동생 둘도 함께 들어와 있는 유전성 정신질환자 E씨에게는 바리바리 먹을거릴 싸 들고 멀리 대구에서 ‘우리 아들’만을 보고 싶어 찾아오는 팔순 노모가 있다. 그러나 한걸음 제대로 걷는 것조차 힘든 상태여서 E씨가 마당으로 나가 모셔오곤 한다. 그 ‘엄마’가 떠나면 집도 떠난다.

시설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는지를 헤아리지 못하는 F씨를 포함해 여섯 명 정도는 아예 연고가 없어 ‘집’에 대한 개념도, 기억도 사라진 지 오래다.
정신건강증진시설 부활원(원장 김훈경·군북면 이백리)의 생활인 154명 중 연고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단절된 15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의 소원은 단 두 가지다. ‘죽을 때까지 이곳(부활원)에 살게 해달라는 것’과 ‘기억 속 어딘가에 남아있는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는 것’. 반겨줄 가족이 없기에, 가고 싶지 않은 집이기에, 이제 많이 나아졌으니 시설에서 나가도 되겠다는 말이 가장 무섭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시설에서 평생 살 수만 있다면 실제 기억 속의 장소인지, 꿈에 본 TV 화면인진 모르겠으나 ‘그곳’으로 ‘꼭’ 여행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

부산 자갈치시장의 비릿한 냄새가 그립다고 했고 밥 많이 먹고 건강해져 제주도 한라산을 오르고 싶다고도 했다. 전남 장성의 편백나무 치유의 숲을 걸어보고 싶다고도 했고 어느 날 TV에서 본 순천의 정원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이들이 말한 ‘이곳’들은 모두 부활원에 들어와서 가본 곳이 대부분이고 그나마 정확한 장소를 지명한 사람들은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몇몇뿐. 남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간절한 눈빛으로 ‘가고 싶어요’, ‘여행이요’라는 대답만 반복할 뿐이었다. 아는 곳, 가본 곳, 기억나는 곳이 없기에 답답함에 가슴을 치기도 했다.

그날 그 자리에 모인 15명 전원은 ‘그곳으로의 여행’을 간절히 소망했다.
이들을 위해 부활원 오명숙 사회사업부장이 옥천향수신문이 연중 운영하고 있는 ‘네 소원을 말해봐’코너의 문을 두드렸다.

옥천향수신문은 부활원 가족들의 여행 소망을 지원해 줄 아름다운 후원자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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