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농심
상태바
타는 농심
  • 이흥주 문정문학회 사무국장
  • 승인 2018.06.21 09: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가 농부인지 나도 모르겠다. 한평생 농사만 지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농사와 떨어져 산 것도 아니고 참 어정쩡하다. 직장과 농사를 같이 놓고 살았으니 ‘반 농사꾼’이라고 하면 맞을 듯하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어정잡이로 산 것 같다.
요즘도 글쟁이라고 해야 할지 농사꾼이라고 해야 할지 헷갈리기는 마찬가지다. 퇴직하면 완전 농사꾼으로 살줄 알았다. 한데 글을 쓰고 있으니 글쟁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그러면서도 거의 매일 밭에 나가 땀을 빼니 농사꾼이라고 해야 맞을 것도 같은데 오늘은 더 따지지도 묻지도 말고 농사꾼 입장에서 얘기를 해야겠다.


주로 자가소비용으로 이것저것 심고 친지들 김장고추를 대기도 하며 작물을 가꾸다 보면 참 힘이 들 때가 많다. 기계화가 됐다곤 하지만 그래도 농사는 노동으로 해야 한다. 힘든 거야 농사가 이런 거다 하면 되겠지만 그 외에도 농심을 힘들게 하는 게 많다. 농사라는 건 하늘이 돕지 않으면 농부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소기의 성과를 내기가 힘들다.
작물에 흡족할 정도의 비가 온지가 너무 오래 됐다. 찔레꽃 가뭄은 꾸어서라도 한다더니 지금이 찔레꽃 철이다. 가뭄이라는 건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은 피부에 잘 와 닿지를 않는다. 요즘은 근무시간도 줄여주고 토요일, 일요일을 마음껏 쉴 수 있는 세상이다. 주말마다 야외로 나가거나 집을 나와 바람을 쐬려면 날씨가 좋아야 한다. 비를 바랄 이유가 없다.


가뭄에 대비하는 것도 요즘은 옛날보다는 쉽다. 양수기, 스프링클러, 관정 같은 것이 있어 어느 정도는 가뭄도 극복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것들도 하늘에서 적당하게 내려주는 빗물의 효과에는 비교도 할 수가 없다. 또 그런 걸 사용하려면 돈이 들어서 힘들고, 돈 들여서 사용을 해봐도 하늘에서 내려주는 비보단 효과가 적으니 이래저래 힘들다. 역시 농사는 하늘이 도와야 제대로 할 수가 있다.
텔레비전 뉴스를 볼 때마다 예쁜 기상 캐스터가 일기예보를 한다. 날씨가 좋아서 이번 주말에 야외활동하기에 좋겠습니다 하고 말할 때면 그 예쁜 입이 너무 밉게 보인다. 일기예보 하는 사람이야 무슨 죄가 있을까만 속 타는 농심엔 그 말이 싫다. 그렇다. 가족과 들뜬 기분으로 나들이 가는데 비가 와서야, 구름이 잔뜩 끼어서야 되겠는가.

그러나 곡식이 배배 돌아가는 판에 날씨가 좋아서 좋겠다는 말은 심술? 많은 내 맘엔 곱게 들리질 않는다. 세상이 가뭄에 대해 법석을 떨 때쯤이면 이미 가뭄의 피해가 최고에 달해 대비하기에 시기가 한참 지났을 때다.
칠년대한(七年大旱)에도 비 올 날은 없었단다. 항상 오늘만, 내일만 참아다오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또 칠년대한에 하루도 비 안온 날 없었다는 말도 있다. 가물 때도 먼지도 적시지 못할 정도로 질금거리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고장만 보아도 그간 몇 번 비가 왔다. 매미 오줌만도 못하게 와서 그렇지.
시설이 잘된 비닐하우스 안에서 농사를 지으면 물 걱정 안하고 지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농지에 그런 시설을 할 수도 없다. 하늘을 바라보는 농사,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하겠다.


농산물 값이 오르면 세상이 들썩이고 수입을 해서 금방 가격을 안정시키는데 비료, 농약, 비닐 등의 농자재 값은 왜 그리 비싼지. 농업은 모든 것의 기본이 될 정도로 중요하다는(農者天下之大本)말이 있지만 지금은 이 말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요즘 아침저녁 날씨가 가을날씨처럼 서늘하다. 지금 하늘을 쳐다보니 정말 푸르다. 영락없는 가을 하늘이다. 타 들어가는 농심은 이 밝고 뜨거운 태양과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비 좀 주소서 하고 기원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