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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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팀목"
  • 옥천향수신문
  • 승인 2016.03.11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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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문인협회 감사 지옥임

좋을 때나 그를 때나 크게 내색하지 않고 한결같은 친구내외가 있다.

내가 새댁시절에 객지 생활로 외로울 때 교회에서 고향이 같다는 이유로 친해지게 된 친구다. 남에게 선행하기를 좋아하고, 행동이나 언어, 외모, 옷매무새 하나에도 타인에게 본이 되는 친구다.

여러모로 둘러보아도 내놓을 것이 없는 나를 친구대우 해주는 것이 고마워서 조심스러우면서도 많이 좋아했다.

어느 날 친구네를 알고 처음으로 그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시내에서 약간 벗어난 변두리에 위치한, 그 시절에 보기 드문 옥상이 넓은 집이었다.

그 집은 삼양국수라는 상호를 걸고 국수공장을 하고 있었다. 일층에는 살림집과 국수공장이 크게 자리를 하고 국수를 포장하는 아주머니들도 몇몇이 앉아 재빠른 손놀림으로 수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층으로 나있는 층층계단이 한눈에 들어오면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람이 눈사람처럼 밀가루를 하얗게 뒤집어쓰고 국수를 한 아름 안고 내려오고 있었다. 그 사람은 교회에서 볼때 그렇게 멋있고 점잖던 친구 남편이었다.

나는 그분을 볼 때마다 먼지 같은 것 하고는 상관이 없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깜짝 놀랐다. 더욱 놀란 것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나를 이층으로 안내를 하더니 여기저기 공장을 소개해주는 것이었다.

이층에는 국수를 말리는 기구들이 꽉 들어차 있고 날이 좋은날을 골라 국수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며, 어쩌다 갑자기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덜 마른 국수를 처리하느라 혼비백산한다는설명도 곁들여 주었다.

그 뒤로 나는 한가한 날이면 그 집에 가서 가끔씩 일손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것도 잠시 우리는 남편의 사업실패로 대전으로 이사를 했고, 얼마 후 그 친구네는 대기업의 국수 출시로 인하여 업종을 바꾸어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멀리 떨어져 살면서도 내가 삶에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힘들어 주저앉고 싶을 땐, 언제나 달려와 손을 잡아 바른길로 인도해주고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인 지주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 친구네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지금에 이 자리를 지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씩 해보곤 한다.

어느 날이었다. 저녁준비가 걱정이던 나는 쌀독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다. 독에는 쌀이 가득 차 있었고 광에는 연탄이 들여져 있었다. 누가 갖다 놓았을까? 의아해 하고 있는데 내가 없는 사이에 그 친구네가 다녀간것이었다.

친구네가 나에게 베푼 것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신들이 먹고 남아서 베푸는 것은 아니고 자기네 먹고 마실 것 쪼개어 선을 행하는 것이었다.

친구네와 달리 나는 그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남에게 베풀기보다는 누구에게나 받는 데 익숙해져 있고 감사에 인색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잘못 살아온 삶을 후회 할때는 이미 때가 늦었음을 깨달았다.

나에게도 다시 한 번 삶이 주어진다면 그 친구 부부의 흉내라도 내어보고 싶은 마음이지만 모두가 부질없는 생각이겠지!

사람에게는 누구나 고향에 대한 향수가 있게 마련이다. 젊어서는 이름없이 빛도 없이 숨어서 크게는 아니더라도 남에게 드러나지 않는 봉사를하며 살다가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와 노후를 보내고 싶다면서 내가 사는 대전으로 이사를 왔다.

반가운 마음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사노라니 매일 같이 만날 수는 없고 어쩌다 만나는 날은 옛날 얘기 해가면서 젊은 날을 회상하곤 한다.

오늘은 오랜만에 만나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가끔씩 매스컴에서 좋다고 선전을 하는 장태산 휴양림,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가볼 기회가 없었던 나는 들뜬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대전에서 삼십분 쯤 걸려 도착한 장태산 휴양림은 깨끗하고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어 전국적으로 이름이 날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키가 하늘 닿은 듯한 메타세콰이어가 흡사 하늘이 무너질까봐 버팀목을 세워놓은 듯 하고, 근사한 궁궐에 기둥을 세워놓은 것처럼 정말 정교하고 멋스러웠다.

누가 먼저 가려고도 아니하고 더 크려고 경쟁도 하지 않는 나무들을 보며 이곳에 같이 온 친구내외가 이 나무들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 서있는 듬직한 나무들처럼 큰 욕심 없이 때로는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등받이가 되어주기도 하고, 넘어지지 않도록 버팀목이 되어 살아온 친구내외에게 여태까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욱 값진 삶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지만 숲속의 그늘이 정말 시원하다. 나무숲 사이 곳곳에 놓여 있는 평상에 누워 하늘을 보니 곧게 뻗어 올라간 나무 끝이 잎으로 하늘을 뒤덮다시피 꽉 들어차있다.

미세한 바람에 나무꼭대기가 살살 흔들린다. 마치 지구가 나를 아기그네에 오려 놓고 조심스럽게 밀어주는 듯하다. 나뭇잎 공간사이로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흘러간다.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흰 옷을 입은 천사들이 율동을 하듯 스쳐지나간다. 좋은 사람과 함께여서 그런지 온 세상이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약력
수필시대 신인상 등단
옥천 문인협회 감사
향토문학 수필집 (지매)
공저 옥천의 마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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