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교토 로맨스
상태바
정지용, 교토 로맨스
  • 김묘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18.07.26 13: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묘순 문학평론가

그날, 교토의 비예산 하늘은 높았다. 그 높은 하늘에서는 사람의 체온보다 높은 38.5도의 기온을 만들어냈다. 기상청이 발표한 교토의 공식기온이 38.5도라는 말이다. 더위보다 더 숨 막히는 것은 케이블카를 타면서 시작되었다.

2018년 7월 중순, 정지용의 흔적을 찾아 교토 비예산에 올랐다. 비예산 정상에 오르니 “산이 서고 들이 열리고 하늘이 훨쩍 개이”었다는 정지용의 말이 실감났다. 그리고 정지용의 교토에서의 로맨틱한 감성을 떠올려 본다.

교토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1시간 넘게 달려 정상에 도착하니 교토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정상에서 옥수수 튀밥을 먹고 내려와 Enryaku-ji(延曆寺) 입구에서 비예산 고사리가 들어간 우동을 먹었다. 그리고 장보고 비(碑)에 들러 묵념을 하였다.

다시 비예산 정상에 올라 로프웨이를 타고 산중턱에서 케이블카로 옮겨 탔다. 70-80도 정도는 되어 보이는 경사에 철로를 깔은 1.3km의 케이블카 레일로드. 케이블카 안에 있는 나는 급한 경사 때문인지 자꾸만 앞으로 쏟아질 것만 같다.

케이블카 안에는 1925년 당시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있다. 이때는 정지용이 동지사대학에 다닐 때이다. 정지용은 여자 친구와 함께 이곳을 왔었다고 그의 산문((「압천 상류」 상하)에 적고 있다. 그의 여자 친구가 누구였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누구였음직한 인물은 유추해낼 수 있을 뿐이다.

정지용이 압천 상류라고 찾아든 비예산 케이블카 공사 현장에는 조선노동자들이 많았다. 석공 일을 하는 중국노동자들의 보수에 비해 흙 짊 나르고 목도질하는 조선노동자들의 보수는 매우 헐하였다.

조선의 왁살스런 사투리와 육자배기 산타령 아리랑을 그대로 가지고 온 순한 일군들은 그곳 물을 몇 달 마시고 나면 사나워졌다. 일군들은 십장에게 뭇매를 앵기고, 순사를 때리고 세루양복이나 기모노를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욕을 막 퍼붓고 회학질을 해댔다.

정지용은 말했다. 그러한 그들은 “우리”가 “조선학생”임을 알고 반가워하는 십여명의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아랫목에 앉혀졌다. 정지용은 “우리” 사이를 “사촌오누이”라 하였다. 그는 산문에 “꼼짝 없이 억울해도 할 수 없이 뒤집어 쓰고 마는 것”을 모면하였다고 적고 있다.

“우리”는 콩과 조가 섞인 이밥에 달래, 씀바귀, 쑥 등의 조선 것만 고른 반찬에 점심상을 받았다. 진기하기 짝이 없는 욕을 해대며 조선인 노동자의 삶을 견뎌내던 케이블카 공사현장 노동자들.

그들이 정지용과 그의 여자 친구를 대하는 것은 조선학생이기 이전에 노동자들의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귀한 손님 대접을 하였던 것이었을 게다.
이러한 생각들은 정지용과 그의 여자 친구 그리고 케이블카와 조선인 노동자라는 복잡한 함수로 설정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엾어지기 시작하였다.

케이블카 공사를 하며 희생되었을 목숨과 잔인하게 짓밟혔을 그들의 삶 그리고 그들 앞에서 태연한 척 조선학생 대접을 받았을 정지용. 이 상황에서 정지용이 가졌을 고뇌를 생각하였다. 이때 그는 애써 찡그린 표정 없이 돌멩이 두 개로 형성되는 측간 이야기로 돌아서고 말았다. 그렇지만 조선인 노동자들을 대할 때 그의 심정은 궁핍에 대한 분노도 피지배인으로 남아있는 울분도 아니었다. 그는 조용히 민족을 생각하였다. 이러한 것들은, 나에겐 없던 것처럼 생각되었던 애국심이 가슴 언저리까지 치밀어 오르게 하였다.

정지용의 유학시절 만났다는 그녀. 유학시절 혹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서울의 모 출판사에 나란히 들어섰다는 구술 증언, 옥천에 기차를 타고 정지용과 나란히 들렸었다는 이야기.
만나지 말아야할 사람과 만나지 못하는 사람 그리고 만날 수 없는 사람. 그들의 로맨스는 그들 삶의 언저리에서 머물다 사라졌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비예산 케이블카에서 조선노동자들과 정지용 그리고 그녀를 생각한다. 어쩐지 그들의 로맨스는 오늘처럼 38.5도를 가리켰을 것이다. 내내 가슴이 아리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