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피서(讀書避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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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피서(讀書避署)
  • 정우용 한국독서문화교육원
  • 승인 2018.08.09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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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용 한국독서문화교육원

인류의 역사는 어찌 보면 쉽게 살기 위한 노력으로 앞을 향해 달려 왔다고 할 수 있다. 더 적은 노동력으로 더 많은 결실을 얻으려는 노력은 의식주의 모든 분야에서 눈이 부실 정도의 성과를 얻었다. 기계가 농사를 짓고 기계가 옷감을 짜내고 기계가 집을 짓는다.

최첨단 기술의 발달로 전화선이 닿아 있는 곳까지 가는 수고로움을 무선 전화기가 대신해 주고 텔레비전의 채널을 돌리는 수고로움을 리모컨이 대신해 준다. 입으로 물을 뿜어가며 다림질하던 것을 스팀 다리미가 대신해 주고 세탁조에서 탈수조로 옮기는 수고로움을 전자동 세탁기가 대신해 준다. 요리를 만드는 전자레인지, 설거지를 해주는 자동기계, 청소도 기계가 대신 해주는 세상이 된 것은 이미 오래다.
이제 출근하지 않고 자기 집에서 멀티미디어로 일을 하고,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진료를 받는 새로운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세상은 유토피아다. 우리는 유토피아에 살고 있으면서 또 새로운 유토피아를 추구하고 있다. <유토피아> 작품을 통하여 새로운 낙원에 대한 상像을 구체적으로 그린 토머스 무어나, 복숭아꽃이 피는 마을에서 천일주를 마시는 무릉도원을 쓴 도연명이 다시 살아온다면 이 기가 막힌 문명의 발전에 기절할 지도 모른다.

과학의 발전으로 우리의 생활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지만 인간은 물신주의에 유혹되어 그 생활의 편리 속에 빠져 들어가 부품으로 전락하고 그 노예가 되어간다. 또한 현대인은 풍요와 최첨단의 번영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불안하고 소외되고 불확실의 늪에 빠져가고 있다.

이렇게 불안하고 불확실한 우리에게 위안을 주고 새로운 세계로 안내해 주는 구원자가 바로 책이다. 책은 인간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다. 책 속에는 인류의 모든 문화가 있고 온 우주가 차 있다. 정보사회이던 4차 산업사회이던 책이 없으면 그 문화를 온전히 보존하고 후대에 전달할 수가 없다. 일찍이 괴테는 ‘책은 지식의 보고寶庫다’라고 했으며, 동양에서는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성현들은 ‘자손에게 한 광주리 금을 주는 것보다 경서 한 권을 읽히는 것이 낫다.’ 라고 했으며, 우리의 조상들은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밭을 가는 일과 책을 읽는 일이라고 했다.

논밭을 가는 일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밭을 가는 일은 더 중요하다. 독서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과 의미를 갖는다. 독서는 삶의 청량제요 등불이다. 마음의 밭을 갈지 않으면 우리의 정신이 황폐하고 정서가 고갈되고 생활이 윤기를 상실한다. 우리의 삶에 책이 없고 독서가 없다면 꽃이 없는 정원과 같고, 별이 없는 밤하늘과 같을 것이다. 영상매체의 발달로 책이 소멸된다는 위기설도 있지만 책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책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한 벗이 될 것이다.

영국의 알랭이라는 철학자는 더 빨리 달리는 철도를 건설하려는 정부의 계획에 대해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다섯 시간 걸려서 갈 수 있는 거리를 두 세 시간에 갔다고 하여 그 남는 시간을 우리는 과연 어디에 쓰고 있을까”. 수학적으로 정확히 남아돌아야 할 시간은 어디에도 간 곳을 찾을 길이 없다. 모두가 하나같이 더 빨리, 더 편리하게 살려는 경주를 멈출 줄을 모른다. 의식주의 생활 대부분을 기계가 해 주는 시대에 살면서도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는 것은 자기기만이며 삶의 포기이다. 독서를 포기하는 것은 정신적 자살이며, 인격의 파산이다,

마음이 외롭거나 괴로울 때  읽으면 힘이 되고 빛이 되고 위안이 되고 기쁨이 되는 책이 한두 권 책상머리에 있다면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우리 인생에 좌우명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좌우서座右書다.

로미오가 줄리엣에게 사로잡혀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이렇게 혼잣말을 한다.
“아, 사랑이 있는 시간은 얼마나 짧았던가. 그녀가 곁에 없는 시간은 왜 이리 긴가.”
무엇에 사로잡히게 되면 시간 개념이 사라진다. 유난히 더운 여름이다. 좌우서座右書 한 권에 사로잡혀 보자. 책이라는 보다 값진 영혼의 학교에 입학원서를 내자. 그 학교에서는 더 깊고 더 풍부한 인생의 참맛의 아름다운 여름을 선사해줄 것이다. 유난히 더운 여름이지만 책에 사로잡힌 시간은 유토피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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