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梧桐,Paulownia 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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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나무(梧桐,Paulownia tree)
  • 정홍용 안남면 화인산림욕장 대표
  • 승인 2018.11.29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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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용 안남면 화인산림욕장 대표

오동나무의 학명은 Paulownia Coreana Uyeki로 Coreana가 들어가 있는 것만 보아도 얼른 원산지가 한국임을 알 수 있다. 끝에 우에키(Uyeki=植木)가 붙은 것은 일본 식물학자의 이름으로 일제 강점기에 한국에서 활동 하면서 처음으로 오동을 학계에 보고한 인물 이다. 

과거에는 딸을 낳으면 뜰에 오동나무를 심으라고 했다. 이것은 딸이 결혼 적령기가 되면 성장이 빠른 오동도 성목이 되므로, 그것을 베어 장농을 만들어 시집 보내라는 선조들의 깊은 뜻도 있지만, 세상만사 미래에 대하여 미리 계획을 세워 후일에 대비 하라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봉황새는 오동나무가 아니면 둥지를 틀지 않는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데, 이에 걸맞게 오동나무는 복을 주는 상서(祥瑞)로운 나무라 하여 귀한 딸의 혼수로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나무이자 행운목이다. 오동나무는 세계적으로 10여종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오동, 참오동 2종이 분포되어 있다.

참오동은 울릉도가 원산지로 현재는 우리나라 전역에 식재되는 수목이며, 높이는 15m까지 자라는 낙엽활엽교목(落葉活葉僑木)이다.

오동나무와 다른 점은 오동나무꽃은 원뿔모양 꽃차례에 달리고 꽃받침은 5개로 갈라지며 흰색 또는 자주색이지만 참오동나무와 달리 세로로 된 자주색 줄이 없다. 우리가 흔히 보는 것은 참오동이다.

오동나무 목재는 재질이 가볍고 무늬가 좋으며 내습성이 높다.  
심재(心材)와 변재(邊材)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으며 나이테는 뚜렷하고 엷은 홍백색이다. 국산재에서 가장 가볍고 가장 빨리 자라 토질에 따라 1년에 1~1.5m까지 자라며, 절삭가공성과 도장성은 보통이고 접착성은 양호하다.
오동나무는 비중이 0.27 정도로 가벼운 나무이며, 현미경으로 살펴보면 세포벽이 매우 얇고 공간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특징으로 울림이 풍부하고 음향을 교환하는 능력이 다른 나무에 비해 월등이 높아 악기재로서 좋은 조건을 갖추어 가야금, 거문고, 장구에 많이 사용한다. 그래서 동천년노항장곡(桐千年老恒藏曲=오동은 천년이 되어도 항상 곡조를 간직한다)라는 말까지 생겨났으며, 계전오엽기추성(階前梧葉己秋聲=뜰앞 오동잎은 벌써 가을을 알린다.)은 가을에 생을 다한 오동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유년기에서 노년기로 덧없이 유수와 같이 흐르는 세월을 한탄한 것이다.

그러므로 홍콩영화 ‘스잔나’에서 배우 리칭은 만추(晩秋)에 오동나무 밑을 거닐면서 석양에 하염없이 떨어지는 오동잎처럼 인생은 허무한 나그네에 지나지 않는다는 애절한 노래를 불러 1960년대 말에 동양권에서 공전의 히트를 쳤으며 또한 깜찍한 미모와 청순미로 유명세가 대단했다.

제습성이 뛰어나 여름에는 습기를 빨아 드리고 겨울에는 습기를 내뿜어 항시 설합내 습도를 조절하여 의복이 포송포송하고 좀도 먹지 않아 장롱, 한약방의 약장 설합재와 귀중한 고급품의 상자 재료도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오동은 수요에 절대적으로 부족해 처음에는 일본에서 수입하여 설합재로 활용했다.

일본 아끼다껭(秋田縣)은 오동으로도 명성이 높을 뿐 만아니라 충견 ‘하찌(八)’, 삼나무(스기=杉),쌀(아끼바리 지금은 ‘고시히까리’), 미인, 온천으로 유명하여 아끼다 하면 일본인들 뇌리에는  ‘아끼다 기리’(桐=오동),아끼다  스기(杉=삼나무), 아끼다 겐((犬=개), 아끼다 코메(米=쌀),아끼다 비진(美人), ‘아끼다 온셍(溫泉)’이 연상되는 곳이다.

필자도 가구용 설합재 수입 관계로 아끼다를 뻔질나게 드나들었으나 일본 역시 수요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중국에서 수입하게 되어 덩달아 그곳으로 다니게 되었다. 풀질도 좋지 않고 가공기술이 너무나 형편없어 일본인들도 고전에 고전을 하며 기술을 연수시켜 가면서 자기들 구미에 맞는 품질로 끌어올리기까지 많은 시간을 요했다. 처음에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산동성에서 수요를 충족시키려고 烟台(Entai), 靑島(Qingdao), 濟南(Jinan)까지 다니며 오동산지가 있는 곳이면 내륙까지 마다않고 찾아 다녔다.

엔다이에서 주문한 물량이 다 되었다 하여 가보니까 공장안은 썰렁하고 완성품은 한개도 보이지 않아 이유를 물으니 장비처럼 생긴 사장은 오늘밤 안으로 전량 완성 하겠다고 큰소리를 치면서 그런 걱정 접어두고 식사나 하면서 한잔 하잔다. 이 공장에는 50명도 채 안되어 은근히 걱정을 했는데, 저녁이 되자 어디서들 오는지 개미떼처럼 무려 700여명이 몰려와 후딱 해치워 인해전술의 막강한 괴력을 과시해 주었다.
6.25 때 중공군의 그 유명한 인해전술이 상기되어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찡다오에서는 기술을 연수시켜 몇 번은 거의 이상 없이 잘 해 와서 안심하고 오라는 날짜에 맞추어 가보니 과연 말끔히 아주 깨끗이 잘 되어 있었다.

수입하여 납품 후 안심하고 있었는데 납품 받은 공장장으로부터 거두절미하고 흥분된 육두문자로 기관총처럼 불평을 쏟아 내어 만사제처 놓고 가보니 내 눈을 의심할 정도로 개판이었다.
합판크기(4x8) 판넬을 잡고 조금만 힘을 가해도 떨어지고, 바닥에 살짝 내려놓기만 해도 마치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버렸다. 접착제를 분석해 보니 우리가 제공한 일산(日産)이 아니고 값싼 중국산으로 판명 되었다.

다음날 청도 공항에 마중 나온 사장은 죽을죄를 지었다고 사죄하기 바빴다.
사장도 모르고 있었는데 공장장과 몇 명이 중국산 접착제를 쓰기로 모의 하고 일산 접착제를 통째로 갖고 일행과 함께 야반도주 했다고 분개했다.
중국과의 거래는 하면 할수록 어렵고 예기치 않은 변수가 많아 필자에게는 맞질 않아 이번 기회에 접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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