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의 일본 교토 하숙집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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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의 일본 교토 하숙집Ⅰ
  • 김묘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18.12.0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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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묘순 문학평론가

2018년 11월 28일-12월 1일.

일본 교토 동지사대학에서 ‘정지용 추모’를 열고, 오사카에서 ‘문학 강연’과 ‘한글 콘테스트’가 열렸다. 정지용 문학을 구심점으로 진행된 다수의 행사는 여러 언론에서 거론하였기에 생략하기로 한다. 단, 다수의 언론에서 보도(11월 30일-12월 3일)한 정지용 동지사대학 학부 관련 보도가 사실과 달라 우선 바로 잡고자한다.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도시샤대학은 옥천에서 태어난 정시인이 서울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1923년 이 대학 영문과에 입학해 1929년 졸업할 때까지 왕성한 문학 활동”을 펼쳤던 곳으로 소개하고 있다.(굵은 글씨는 필자 처리)

그러나 정지용은 “1923년 4월 16일 일본 교토의 동지사 전문학교 신학부에 입학하였고 며칠 지나지 않은 4월 27일 신학부를 퇴학(홍종욱, 「교토 유학생 박제환의 삶과 실천」, 『한국학연구』 40집,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2016. 2, 407면.)한 후 그해 5월 3일 동지사대학 예과에 진학한다. 1926년 3월 예과를 수료하고 4월 영문학과에 입학해 1929년 6월 30일에 졸업(김동희, 「정지용의 이중언어 의식과 개작 양상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17, 37면.)하였다.

이번에 열린 일본 정지용 문학행사는 그를 공부하는 필자에게 큰 소득이 있었다. 동지사대학의 Osamu OTA(太田 修) 교수와 2006년 정지용 자료를 찾으러 동지사대학을 방문하였을 때 안내를 하여준 우송대학교의 박세용(동지사대학 출신) 교수를 다시 만난 일이었다.

옥천문화원 김승룡 원장의 소개로 만난 OTA. 다리를 놓아준 김 원장, 그에게 지면을 빌어 고마움을 전한다.

OTA 교수는 정지용의 일본 유학시절 ‘하숙집’에 대하여 조용조용 일러 주었다.

OTA 교수는 정지용의 하숙집이 “도시샤여자대학교 북쪽에 있”었다며 이 대학의 “정문을 기준으로 어느 정도 거리가 되는지”에 대한 필자의 질문에 “정문으로부터 약 50m 정도”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리고 “정지용의 하숙집은 한 군데였느냐?”는 질문에 “아마 몇 군데, 이사를 하였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또 “현재 그 건물이 보존 되어 있”느냐는 질문에 “옛집은 남아있지 않고 그 자리에 신축 건물이 들어섰다.”고 답변하였다. 빠른 시일에 정지용의 하숙집 터를 찾아가고 싶다.

“하숙집이 몇 군데, 이사를 하였을 것”이라는 OTA 교수의 구술은 박세용 교수의 구술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박 교수는 “현재 교토 슈가꾸엔 교토조형예술대학이 들어선 곳이 윤동주 하숙집이었다. 윤동주 하숙집에서 3-4km 거리에 정지용 하숙집이 있었다. 정지용 「카페프란스」의 모델이었던 ‘카페프란스’와의 거리도 3-4km 정도의 거리이다. 아마 이때 하숙집에서는 잠만 잤을 것”이라고 설명을 한다. 당시 “일본 하숙집은 빨래나 밥 등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일단 정지용은 일본 유학 시절 하숙을 하였고 하숙집은 몇 군데 옮겨 다녔다. 그리고 하숙집의 위치 윤곽이 대략 드러났다. 필자는 이와 같은 사실을 새롭게 알아냈다. 기쁘다.

이 고증을 토대로 한국에 돌아온 필자는 정지용의 일본 하숙집에 관련된 자료와 논문들을 찾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정지용의 교토 하숙집에 대한 윤곽이 드러나는 자료들을 찾아냈다.

그 즈음 정지용과 나는 상당히 친했다. 하숙이 가까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두 사람 모두 식물원의 다리에서 강 아래쪽에, 가모가와를 사이에 두고, 그는 동측, 나는 서측에 있었다. 저녁 식사후 산책을 겸하여 서로 자주 방문하였다. 그 즈음의 加茂川는, 그 주변에는 갈대가 온통 나있어서, 여름에는 개구리가 울었다. 鄭은 찾아오면 近作의 시를 읽어주었다. 일본어가 완벽한 것은 아니어서, 내가 부분부분 수정했다. (코다마 사네치카, 「文藝雜誌」 「街」のころ」, 『RAVINE社, 1970. 9, 22면. 김동희, 앞의 논문, 2017, 44면 재인용)

정지용이 동지사대학 동인지인 『街』, 『동지사대학예과학생회지』, 『자유시인』, 『동지사문학』 등에 작품을 발표한 것은 코다마 사네치카(필명은 코다마 후에야로)와의 만남에 영향이 있었다. 1905년 생인 코다마는 1924년 동지사대학 예과에 입학한 후 영문과에 진학해 1930년 졸업, 동지사대학 영문과의 교수를 지낸 인물이다. 정지용은 1923-1929년에 동지사대학 신학대, 예과 그리고 영문과에 재학 중이었으며 이 시기에 코다마는 정지용이 최초로 작품을 발표한 잡지 󰡔街』의 동인으로 이름이 올라있다. 이들의 인연은 『自由詩人』 창간호에 실린 정지용의 산문 「詩·犬·同人」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지용의 「詩·犬·同人」과 하숙집 이야기는 다음 호에 계속 거론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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