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과 전형에 대한 부연(敷衍)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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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과 전형에 대한 부연(敷衍)Ⅱ
  • 김묘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18.12.2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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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묘순 문학평론가

정지용 산문 「수수어 2-1」(정지용, 『지용문학독본』, 박문출판사, 1948, 75-77면은 「수수어2」로 표기)과 「수수어 2-2」(정지용, 위의 책, 78-80면은 「수수어3」으로 표기)에 나타난 “형(馨)”은 ‘전형(全馨)’을 의미하는가?
정지용은 1937년 2월 10일-17일 「수수어 2-1부터 2-4」를 『조선일보』에 발표한다. 이 중에 「수수어 2-1」과 「수수어 2-2」에 “형(馨)”이 등장한다.

밤 열한시를 넘어 돌아오게되니 집사람이 이르기를 積善町(이숭원 편, 『꾀꼬리와 국화』, 깊은샘, 2011, 51면은 “적선동”으로 오기) 馨이가 저녁 여섯시에 자기사관으로 부대 와달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고 한다. 저를 내가 아는터에 제가 부르는 까닭을 내 모를리 없다. 하도 서운하여 그렇다면 낮에 미리 電話로 기별을하여 주었더면 退勤길에 달리 새지않고 제한테로 갈것인데, 허나 夜深한뒤 단간방을 찾어가는수가 없다. (중략)

다음날 저녁에는 馨이가부르지않을지라도 자진하여 가랴고한것이 역시 달리 길이 열리어 시각을 놓지고 말았다. 집사람이 또 이르기를 馨이가 또 왔다갔다는 것이다. 고맙고나. (중략)
다음날 저녁 여섯시에 어김없이 대어갔더니 즐겁지 않으랴 셋이 고스란히 기다리고 있었고나. 두 내외와 一升甁이. 甁이 少許 덜리었기에 연고를 물었더니 그대로 두고 보며 기다리기란 과연 兩難한 일이더라고. 기껏하여 두홉쯤 줄었으니 天下에 무슨 名目으로 이를 治罪할 줄이 있으랴. 대추를 감춘 광에 쥐를 두고 責善(이숭원 편, 위의 책, 77면은 “적선”으로 오기)함이 옳을 지로다.
이윽고 馨의 愛人이 모르는듯 일어나가 칼이 도마에 나리는 소리가 기름불과 함께 조용조용스럽더라.
「愁誰語 (二)」(정지용, 『지용문학독본』, 박문출판사, 1948, 75-77면) 중에서

위에서 정지용의 「愁誰語 (二)」를 살펴보았다.
“馨”이가 정지용 집을 방문한다. 그리고 정지용도 “馨”이네 집을 방문한다. 정지용이 방문한 “馨”이네 집에는 “셋이 고스란히 기다리고 있”다. “두 내외와 一升甁이”라고 한다. 아마 두 내외는 “馨”의 내외일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에 나오는 “馨의 愛人”은 누구일까?
전형 시집 『새로 얻은 노래』의 연보를 참조하여 보면 1932년에 고소저(高小姐)와 결혼한다. 1932년 장남 문표(文杓)가 출생하고 1934년 차남 무표(武杓)가 태어난다. 이 작품은 정지용이 1937년에 발표한 산문이다. 그러니 신문에 발표하기 전 어느 쯤에서 쓰여졌을 것이다. 그러면 “아내”와 “애인”의 관계에 의문이 남는다. 여기서는 그냥 아내의 사랑스러운 표현쯤으로 “애인”을 생각하기로 한다. 이 부분도 여전히 숙제로 남겨둔다. “두 내외와 一升甁이”와 함께 말이다.

肝회와 開城찜이 나수어왔다. (중략)
陶然한 이후에 馨이는 山토끼같은 눈이 쪼그라지도록 웃으니 이 사람은 남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이야기 하는것이 일쑤다. (하략)
「愁誰語 (三)」(정지용, 위의 책, 78-80면) 중에서

정지용이 “馨”이를 「愁誰語 (三)」에서도 거론하고 있다. 이 “馨”이가 ‘전형’이라는 개연성에 무게를 실어야 한다면 그것을 뒷받침할만한 추가 자료가 발견되거나 증언 구술들이 있길 희망한다. (실제로 2018년 가을, 한명수와 필자의 통화에서 “전형의 아내가 개성사람이었는지 개성찜을 먹”었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전형의 집안 전순표(65) 향토사관장은 2018년 11월 14일 “전형의 부인은 아마 옥천 사람일 것”이라며 “개성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답변하였다.)
향후 정지용과 전형 작품의 상호보완적 관계나 전기적 영향관계 등에 대한 적확한 고증과 연구가 계속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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