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처녀작과 고향의 구심점, 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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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처녀작과 고향의 구심점, 옥천
  • 김묘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19.01.10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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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묘순 문학평론가

복잡한 산문적 상황에 내몰려 소설 「삼인」을 처녀작으로 발표하였던 시인 정지용은 고향 옥천을 신화적이며 원형적인 그리움의 공간으로 채색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농촌공동체가 가진 그리움과 고향을 떠나온 사람의 고달픔까지 담아냈다. 그러나 그 고향은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며 더 이상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고향을 대상으로 한다. 그의 고향 의식은 그리움을 안고 애끊는 고향상실로 굵은 방점을 찍는다.
불우하고 궁핍한 시절을 보냈던 정지용은 1919년 12월 『서광』 창간호에 자전적 이야기인 소설 「삼인」을 처녀작으로 발표한다. 세(조, 최, 이) 친구가 등장하는 「삼인」은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인 옥천역에 도착한다.

①“慶鎬야 나난 너의 男妹가 업스면 무산滋味로 사라잇겟니? 너의 아버지난 돌아보지도 안을뿐더러 집안에 게시지도 안이하시난구나, 이 다 ― 쓰러져 가난 거지움갓흔 집에 잇스시기가 실으셔서 그러시난지난 모로겟스나 쓰러져 가난 집에 굼쥬리고 입지 못ㅎ고 억지로 사라가난 내야 무슨 罪이란 말이냐? 慶鎬야 慶鎬야 나난 너의 男妹를 爲ㅎ야 이집을 직히고잇다 쓸쓸한 이世上에 붓허 잇난것이다 그도져도 인졔는 집터ㅅㄱ지 팔니엿다난 구나 그毒蛇갓흔 터主人이 집을 떼여내라고 星火갓치 조르난 구나”-「삼인」 중
②崔의집은 有數한 財産家로 모다 崔富者집 崔富者 집이라고 부른다 오날은 崔富者의 큰 아달 昌植의 生日이다 昌植은 三十 假量된 靑年으로 郡書記 勤務를ㅎ다말도 잘하고 法律도 잘안다하야 崔主事난 똑똑한 사람이라 고도하고 或은 <身言書判>이 다 ― 具備하다 稱讚듯난이다 午後 네시붓터난 昌植의 親舊들만 모이난 잔치를 연다 손님의 大部分은 同官 親舊들이다. -「삼인」 중

정지용의 자전적 역할로 등장하는 ‘조’는 ①처럼 옥천에 와서도 어머니의 푸념과 아버지의 부재와 맞닥뜨린다. 그러나 최군의 집은 ②처럼 젊은 형의 생일잔치를 기생을 불러서 할 정도로 여유 있고 부유하게 서술하고 있다.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정지용이 처녀작으로 왜 소설을 택했을까?
정지용의 교우관계 중 가장 넘나듦이 자유롭고 빈번하던 이태준의 영향, 홍수로 인한 고향집의 몰락, 부친의 둘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이복동생, 부친이 돌보지 않는 집안 살림을 어머니가 맡아 꾸려야하는 고달픈 삶의 모습들이 정지용의 앞을 가로 막았다. 또 휘문고보의 학내문제와 국내외의 불안한 정세가 정지용을 산문적 상황으로 내몰고 있었던 것이다. 즉 정지용이 시로써 문단에 입문하기에는 매우 복잡한 산문적 상황에 놓이게 되고 그 복잡함 속에서 그는 소설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정지용의 산문 「우통을 벗었구나」에 “진달래꽃이 피어 멀리서 보아도 타는듯 붉었”다는 ‘무스랑이 뒷산. “박달나무 팽이를 갖”고 싶던 정지용이 어머니를 조르고 목수 집을 찾아가고 아버지를 설득해 만들었다는 팽이로 얼음 언 미나리 논에서 박달팽이를 돌리는 듯하다.
그러나 그의 「장난감 없이 자란 어른」을 가만히 생각하면 “연을 날리기에는 돈이 많이 들어 못 날리”었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명치끝을 타고 오른다.
새해에는 한국현대문학의 발원자였던 정지용의 탄생지인 충북 옥천을 찾아볼 일이다.
정지용을 찾아 떠나는 기행은 정지용의 작품에 심취하는 길이고 그를 사랑하는 길이다.
정지용이 머물렀던 그의 고향 옥천.
그의 작품에 나타난 옥천이라는 공간으로 가는 길.
그곳에 있는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으로 가는 여행은 현대인의 고향상실감을 위로해준다. 그리고 고향이라는 구심점을 잃은 사람에게 영원한 고향으로 자리 잡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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