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에 내가 제일 깨끗하게 살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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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에 내가 제일 깨끗하게 살았노라“
  • 김묘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19.01.31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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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묘순 문학평론가

“일제시대에 내가 제일 깨끗하게 살았노라”(「새옷」, 『산문』, 동지사, 1949, 149면.) 정지용의 말이다. 그는 ‘일제강점기’를 ‘일제시대’라 하여 여기서는 그대로 표기하도록 한다.(한편 「새옷」은 『주간서울』( 1948. 11. 29.)에 최초 발표 후 『산문』에 수록)

노예도 노예 이전에 상전을 선택할 망할 자유를 가지는 수도 있다고, 일제시대에는 일본놈보다 더 지독한 조선놈이 있었다고 한다.

해방이 되고나서는, 채만식 소설 「미스터 방」의 방삼복처럼 민족적 감정이나 민족주의는 발견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해방도 자신의 배를 채워주어야 기쁜 것이었으니……. 하긴 지금도 이런 자들이 왕왕 발견된다.

해방이 갖는 의미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일제시대의 민족적 감정이나 민족주의를 향한 조선인들의 생각. 그것은 의미 없이 허공에 흩날리지는 않았을까? 정지용은 이러한 맥락에서 “제일 깨끗하게 살았”다고 하였을 것이다.

정지용이 싫어하는 옷 중 하나가 ‘모오닝 코오트’란다. 그는 일제시대에 결혼 주례를 한 두 차례 서고, 8·15 이후에 십여 차례 섰다고 한다. 그러나 주례를 설 때는 그가 싫어한다는 ‘모오닝 코오트’를 입었다. 꽃다운 남녀의 청춘을 위하여 주례를 서는 일이니 그럴 수밖에.

정지용은 ‘모오닝 코오트’를 빌려(대여) 입었다. 덕수궁에서 열리는 결혼식 주례에서 예의를 갖추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결혼식이 끝나고 호기가 발동하여 수원 (당시)읍내, 신랑 집을 방문하기로 한다. 그리하여 젊은 친구 이십여 명과 함께 버스를 타고 수원으로 간다.

수원으로 가는 도중 버스 안에서 사발막걸리를 참참이 먹는다. 영등포를 지난다는 명목으로 마시고, 시흥을 지난다는 구실로 마시고, 안양을 지금 통과 중이라고 사발막걸리를 마신다. 그리고 수원읍에 당도하여서는 신랑과 신부를 앉혀놓고 본격적으로 마신다.

막걸리를 마시는 사이 밤이 들었다. 신랑 집에서 마신 술은 정지용을 소위 말하는 이차로 이끌었다. 술집에 가서, 4-5인이 당시 4천여 원어치의 막걸리를 마셨다고 한다. 그런데 일행 중 누구의 주머니에도 4천원이 넘는 큰돈인 막걸리 값은 없었다.

이때 정지용은 결혼식 주례를 위해 빌려 입었던 ‘모오닝 코오트’를 막걸리값 대신 저당 잡힌다. 그리고 형제간처럼 여관 한 칸 방에서 잠을 잔다. 정지용의 당시 고생과 호기 그리고 낭만이 함께 그려지는 대목이다.

이튿날 서울로 돌아온 정지용은 “완전히 돈이 없”어 문장사 3층을 찾아 날이 저물기를 기다린다. 이 사정을 들은 K양은 “선생님 영화관 캄캄한 속에 숨으셨다가 어둡거든 합승택시로 가시면 좋을까 합니다.”라고 제안한다. 영화관에는 「Holy Matrimony-신성한 결혼」을 「속세를 떠나서」라고 번역하여 간판을 붙여 놓았다. 정지용은 “어떻게 저렇게 번역을 했을까?”라고 생각한다. 그의 전공이 영문학이니 당연히 의문을 가질 만하다.

영화관 앞에서 “몸이 코끼리 같은 사투리 쓰는 주정뱅이 놈”이 덤벼든다. “이 건국시에 노동자는 아무리 일을 하여도 먹고 살 수 없으니 여보 녕감 좀 어러케 하라오! 잔치는 무슨 잔치요?”라며.

또 주정뱅이 놈은 K양에게 “찌짜”를 붙는다. 이를 본 영화관 종업원은 주정뱅이를 보기 좋게 땅바닥에 쓰러뜨린다. 정지용은 슬쩍 빠져 영화관 캄캄한 구석으로 스며들어 창피를 면한다. 그리고 “아아 이것도 일종의 계급적 반항의식이라고 하는 것이로구려”라고 말한다.

정지용은 그 주정뱅이의 모습을 “정말 일제시대의 세루 국방복에 미군 장교화를 신고 머릿기름을 빤지르르 바른 어디로 보든지 노동자는 아니”라고 적는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대개 주정뱅이가 아니고 시인이나 소설가라면 “일제시대에 내가 제일 깨끗하게 살았노라”고 할 사람이 아닐까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깨끗하게 살았소?”하면 “일본놈과 조선놈들이 보기 싫어서 절간에 가서 살았노라”고 할 것 같단다.

“새옷을 입으면 여덟 아홉 살 때처럼 좋”고, “몸서리가 떨리도록 고독하고 가난하던 소년”이라는 구절을 작품 귀퉁이에 구겨 넣은 정지용의 산문 「새옷」(『산문』, 동지사, 1949, 143-149면.)을 일별하였다.

「새옷」에 등장하는 ‘모오닝 코오트’ 입은 정지용과 ‘세루 국방복’ 입은 주정뱅이 놈을 생각한다. 같은 시대에 대조적인 삶을 살다간 그들을 그려본다. 선택할 수 없는 역사였지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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