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현대미술 개척자 ‘하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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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현대미술 개척자 ‘하동철’
  • 도복희기자
  • 승인 2019.02.14 1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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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면 지수리 모산 출생
‘빛의 화가’…“빛은 현실”
▲ 빛의 작가 하동철

△ 옥천 출신 대표 작가 ‘하동철’의 생애
하동철 작가는 1942년 4월 2일 옥천군 안남면 지수리 모산에서 초등학교 교장이던 하춘호 선생과 염귀순 여사의 4남 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지수리 모산은 예로부터 산세 좋고 물 좋은 곳으로 명성을 얻었다. 모산은 뒤로는 산을, 앞으로는 남평제 저수지와 비옥한 평야를 품고 있는 마을이다. 유년 시절 하동철 작가는 이원면 지탄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초등학교 교장이던 부친을 따라 2학년 때 이원초등학교로, 3학년 때 안남초등학교로 전학하고, 그곳에서 졸업한다. 이런 과정에서 고향의 어머니와 떨어져 산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를 떠나 살면서 그리움과 어린 시절의 외로움이 그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미술가가 되고자 하는 꿈은 중·고등학교로 계속 이어진다. 대전중, 대전고등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는 한편 각종 미술실기대회에서 수상하는 등 두각을 나타낸다. 당시 미술교사였던 김철호 선생을 만난 것은 그에게 각별한 의미를 준다. 학생은 배움으로써 자란다는 교학상장의 표상이었던 김철호 미술교사의 영향을 받아 예술가로서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1961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 입학, 한국 추상회화의 거장이던 정창섭(1927~2011) 교수를 만나 추상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며 자신만의 독창적 작품세계를 탐구해간다. 미술대학 3·4학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국전)에서 연이은 입선과 특선을 수상, 다른 누구보다 촉망받는 미술가로서의 길을 가게 된다. 미술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대학원에 입학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다. 이후 서울예술고등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한다. 1974년 부친의 상여와 만장의 이미지를 담은 작품 ‘만가’로 국전에서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수상한다.

1964년, 1965년, 1970년, 1973년, 1975년 총 5회에 걸쳐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 특선 입상의 공로를 인정받아 1975년 만33세의 나이로 국전 추천작가가 된다. 1977년 미국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선정돼 미국 템플대학교 미술대학 판화과에 박사과정으로 유학한다. 1979년 귀국한 후 성신여자대학교 서양화과 교수로 임용, 재직하던 1983년 대학원에 판화과를 개설한다. 이는 한국 최초 판화 전문과정으로 이곳 출신 미술가들은 현재 한국 판화계의 핵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1985년 9월 그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으로 자리를 옮긴다. 1986년 한국작가로는 처음으로 국제 화단의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베니스비엔날레의 본 전시에 초대돼 7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1996년 프랑스 파리 드니스 르네 화랑에서 ‘한국작가 6인전’ 초대, 1997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된 ‘사랑의 나눔전’, 2002년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한민족의 빛과 색’ 등과 같은 다수의 개인전과 초대전에 참가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전개한다. 1990년~1991년 한국판화가협회 회장, 1997년 제16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 1999년 제9회 방글라데시 비엔날레 심사위원장, 2000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장, 2002년 중국 연변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하는 등 한국 미술의 발전과 후학 교육에 헌신한다. 2007년 8월 정년을 채 1년 앞둔 2006년 정년 퇴임 기념 전시회 준비를 위해 창작에 매진하던 중 갑작스런 위출혈로 64세의 불꽃 같은 생을 마감한다.
옥천 출신 대표적 작가로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제1회 추천작가로 꼽힌 한국화 박승무(1893~1980) 화백과 그 뒤를 이은 옥천 출신 대표적 미술가가 바로 하동철(1942~2006) 작가다.

△ 빛의 화가
“나는 항상 신비한 빛의 환상 속에 있다. 그 빛은 환상이라기보다 내게는 오히려 하나뿐인 현실이며, 나는 그로 인하여 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작가노트 중에서>
한국 현대 미술사에서 하동철은 ‘빛의 화가’로 불린다. 빛은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열쇠이기도 하며, 그를 통해 표현된 ‘빛’은 한국 근대 미술의 전통을 잇는 가교이자 한국적 현대 미술의 한 획을 그은 도전이기도 하다. 그는 25년 넘게 빛을 주제로 하는 작업을 펼쳤다. 그에게 빛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한다. 어린 시절 집으로 돌아오는 어머니를 기다리며 본 빛, 학질을 앓으면서 본 태양 빛은 그에게 단순한 물리현상으로서가 아니라 우주와 삶의 원리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창구이자 모티브였다. 빛을 표현함에 있어 하동철 작가는 비물질적 빛을 물리적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의 모순을 극복하는데 많은 궁리를 했다.

그가 작품에 도입한 비정형적 캔버스 형태와 정확한 통제와 우연적 요소의 결합은 비물질적 빛과 물질적 작품 표현의 간극을 메꾸는 그만의 독창적 조형이 된다. 그가 사용하는 캔버스의 배치는 독특하다. 네 개의 캔버스를 사방으로 배치하며 가운데를 비워두기도 한다. 마치 캔버스 뒤편으로부터 빛이 펼쳐지며 캔버스 밖으로 달려나가는 듯하다. 하동철 작가의 빛은 강렬한 색상의 대비와 선 울림, 독창적 화면의 조합을 통해 빛의 정신성과 철학적 의미를 시각적 방식으로 구현한다. 또한 흑과 백으로 모사되는 우리나라 탁본의 방식을 벗어나 색과 글자를 더함으로써 현대적 판화 미술로 변화시킨다. 이는 탁본을 흑백으로 간주하여 온 전통적인 고정관념을 벗어나는 파격이었으며 판화와 탁본, 회화의 영역을 가로지르는 현대 미술의 장르로 승격시킨다. 그 점에서 그의 탁본은 세련되면서도 전통적이다. 이러한 하동철의 탁본은 독창적이며 그가 평생 추구한 판화의 연장이자 전통과 빛의 철학적 사유의 또 다른 면이기도 하다.

▲ 집필자 강병직 교수

△ 집필 강병직 청주교대 교수
집필자 강병직 교수는 글의 서두에 “미술가 하동철은 필자를 가르친 대학과 대학원의 인사였다. 이 글을 쓰는 내내 참으로 죄송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배움의 과정에 있던 학창시절 그의 작품세계와 가르침의 의미를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르침에 있어 그는 교수라는 권위와 형식을 따지지 않았다. 제자들의 작품을 대할 때 늘 열려있었고, 열정적으로 토론하기를 좋아했다. 그런 까닭에 제자들은 한 명의 동료 작가로 대해주는 스승의 넓은 품을 좋아했다. 이 글을 쓰면서 한국 현대 미술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깊은 감명으로 다가왔다. 미술가 하동철은 한국 현대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옥천의 작은 마을을 넘어 한국 현대 미술사에 당당히 새겨진 인물임을 인정해야 한다. 학부 때의 기억과 유가족들에게 받은 자료를 통해 객관적이고 거시적 입장으로 기록하고자 했다. 하동철은 모더니즘을 추구한 현대 미술가이며 탁본을 판화로 끌어들여 현대 미술로 승화시킨 미학적 성취를 이룬 탁월한 작가였다”고 적고 있다.

집필자 강병직 교수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학사) 및 동 대학원(석사)을 졸업했다. 동경예술대학 대학원 및 동경대학교 대학원 연구생 수료하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박사)을 전공하고 현재 청주교육대학교 미술교육과 부교수로 재직중이다. ‘미술영재교육의 이론과 실제’, ‘아주 특별한 영재들의 놀이터’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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