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과 내면의 향기, 겸손의 추분(秋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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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과 내면의 향기, 겸손의 추분(秋分)
  • 곽봉호 옥천군의회 의원
  • 승인 2019.09.19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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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봉호 옥천군의회 의원

추분은 춘분과 마찬가지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이다. 추분이 지나면 점점 밤의 길이가 길어지는 데 비하여, 낮의 길이는 상대적으로 점점 짧아지기 때문에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마련이다. 아울러 춘분이 지나면 낮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기 때문에 밤의 길이는 상대적으로 점점 짧아진다. 그리고 천문학의 관점에서 추분은 태양이 북에서 남으로, 천구(天球)의 적도(赤道)와 황도(黃道)가 만나는 교차점을 지나는 9월 23일경을 말한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추분의 보름 동안을 닷새씩 3후로 나누어 계절의 특징을 열거하고 있다. 초후에는 우뢰가 없어지기 시작한다. 중후에는 벌레들이 동면할 자리를 준비한다, 말후에는 물이 마르기 시작한다고 했다. 이 말은 여름에 많이 내리던 비가 걷히고 미물인 벌레들도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여 겨우살이 채비를 시작하며, 서서히 건기로 접어드는 관계로 대기와 대지가 건조해지기 시작한다는 일깨움이리라.

추분 무렵이 되면 농부들은 다양한 농작물의 추수를 하거나 거둬들일 채비를 야무지게 해야 하며 오곡백과가 풍성한 시기이다. 붉어지는 고추를 비롯하여 하얗게 피어나는 목화송이를 서둘러 따야 양질의 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런가하면 이 계절은 산에 자생하는 자연산 버섯이 제철을 자랑하며, 가을걷이 채비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산나물을 위시하여 호박이나 박의 고지, 깻잎, 고구마 줄기 등 거둬 말려 묵나물로 건조시키는 적기이기도 하다. 물론 이 시기가 되면 벼농사의 막바지에 이르는 시기이기 때문에 논의 물대기와 떼기에 주의해야 소출이 늘어나고 쌀의 품질이 좋아지고 맛이 향상된다. 게다가 과수원의 사과나 배의 성숙과 당도를 높이기 위해 물의 공급을 조절하여 넘치거나 모자람 없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약초를 재배하는 경우라면 구기자나 오미자의 상태를 살펴 수확하는 일도 게을리 할 수 없다.

또한 축산을 하는 농가에서는 가축의 질병 예찰과 축사 소독 그리고 축사 내 보온 및 환기시설을 점검하고 월동 사료작물 파종과 구제역. 돼지콜레라. 조류인플루엔자 등 방역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또 추분에는 여름에 찢어지고 구멍난 방문을 다시 바르고 문풍지도 달면서 추분 날을 기나긴 겨울을 탈 없이 넘길 준비를 시작하는 날로 삼았다.

그리고 추분에 부는 바람을 보고 이듬해 농사를 점치는 풍속이 있는데 이날 건조한 바람이 불면 다음 해에 대풍이 든다고 하였으며 만약 춘분이 사일(社日) 앞에 있으면 쌀이 귀하고 뒤에 있으면 풍년이 든다고 생각하였다. 또 바람이 건방(乾方)이나 손방(巽方)에서 불어오면 다음 해에 큰 바람이 있고 감방(坎方)에서 불어오면 겨울이 몹시 춥다고 생각하였으며 또 작은 비가 내리면 길하고 날이 개면 흉년(凶年)이라고 믿었다.

우리 선조들은 죄를 지은 사람을 다스리는데도 철학적인 고뇌나 인간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많이 배려했던가 보다. 조선시대 춘분 무렵이 되면 사형수의 사형 집행이나 범죄자 구금을 유보했다가 추분이 지나면 재개했다고 전한다. 이에 대해 두 가지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으로 가름할 수 있다. 먼저 춘분을 지나 농번기에 이르면 만성적으로 일손이 모자라기 때문에 부족한 일손을 돕기 위해 사형 집행은 물론이고 잡범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잡아들이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또 다른 견해는 만물이 성장하고 성스러운 결실을 하는 계절에 사람의 생명을 빼앗거나 자유를 심하게 억압하는 행위는 자연의 섭리에 반함은 물론이려니와 인륜에 어긋난다는 관점을 바탕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추분의 들녘에 서면 벼가 익어가며 구수한 냄새가 나는데 그 냄새를 한자말로 ‘향(香)’이라고 합니다. ‘벼 화(禾)’ 자와 ‘날 일(日)’ 자가 합해진 글자이지요. 한여름 뜨거운 해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벼는 그 안에 진한 향기를 잉태합니다. 이처럼 사람도 내면에 치열한 내공을 쌓아갈 때 진한 향기가 진동하겠지요. 또 들판의 익어가는 수수와 조, 벼 들은 뜨거운 햇볕, 천둥과 큰비의 나날을 견뎌 저마다 겸손하게 고개를 숙입니다. 내공을 쌓은 사람이 머리가 무거워져 고개를 숙이는 것과 벼가 수많은 비바람의 세월을 견뎌 머리를 수그리는 것은 같은 이치가 아닐까요? 이렇게 추분은 중용과 내면의 향기와 겸손을 생각하게 하는 아름다운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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