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에게 하얀 도화지와 크레파스는 한동안 놀잇감이었다. 그런데 조금 성장한 어느 미술수업 시간에 소실점·원근법을 배우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설레는 맘으로 순백의 평면 위를 자유롭게 노닐다가 갑자기 학습하게 된 회화의 사실적 묘사 기법들은 부담스럽지만 신기했고, 그림에 대한 흥미를 유발(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겠지만)시키기에 충분했다. 처음으로 원근법을 사용해 눈에 보이는 3차원 공간을 2차원 평면 위에 사진의 구도처럼 그렸을 때, 가슴 벅찼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원근법과 소실점은 불과 600여 년 전, 15세기 초 르네상스 시기의 피렌체에서 발견되었다. 그런데 원근법과 소실점은 과연 발명이 아닌 발견인가 하는 부분과 최초로 발견한 사람 등에 대해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다. 다행히 원근법을 최초로 적용한 그림이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라는 것엔 이견이 없는 듯하다. 화가 마사초가 1428년, 피렌체에 있는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이 혼재된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에 그려 넣은 이 프레스코화는, 고딕 화풍이 남아있지만 원근법을 이용해 앞뒤의 공간을 제대로 묘사했다. 이 벽화는 9개의 공간으로 구성돼 있고 소실점이 여러 개로 분산되어 있다. 주요 소실점은 하느님의 머리에 있지만 관람객의 시선이 모이는 곳에 소실점이 합쳐지는 신비한 구도를 갖고 있다. 그런데 그 당시 어떻게 그런 수작을 그려냈는지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외에도 훌륭한 작품을 남기고 요절한 마사초가 원근법의 비밀을 배우고 싶어 르네상스 건축 양식의 창시자 브루넬레스키를 쫓아다녔다는 기록도 있다. 그렇다면 원근법을 수학적으로 계산해 체계화시킨―그것을 증명하려고 그린 작품들은 소실― 브루넬레스키가 최초의 발견자 아닐까? 그는 로마에 가서, 중세를 거치며 단절되었으나 원근법의 원리를 이해했던 그리스·로마 예술과 건축을 섭렵하며 기법을 배웠다. 그 후 피렌체로 돌아와선 어느 누구도 건축에 성공하지 못해 오랫동안 완공할 수 없었던 두오모 대성당의 돔을 완성했다. 그 돔은 경이로운 건축물로 지금도 연구대상이다. 그 이후에는 그런 건축물을 지을 수도 없었고, 20세기에 들어 초경량 소재가 발명된 후에야 겨우 건축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한편 또 다른 학자가 원근법을 발견한 사람으로 지목하는 화가 우첼로도 ‘사랑스러운 원근법’이라는 응용기하학에 몰두해, 구성적인 측면에 집중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원근법 발견 전의 화가들이 나름대로 공간감을 주고 원근이 드러난 그림을 그렸지만 어색했던 것처럼, 우첼로의 그림도 자연스럽지 못했다. 이러한 원근법이 계속 발전해 완성 단계에 이른, 즉 아주 정확한 원근법이 적용된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다. 그 벽화는 15세기 말(1495-1497) 밀라노의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에 그려졌다. 원근법이 최초로 적용된 그림에서 완벽히 적용된 그림이 나오기까지 70여년이 걸린 셈이다.
원근법은 미술, 건축뿐만 아니라 근대철학 등 아주 광범위한 영역에 영향을 주었다. 이성적 논리를 추구하는 세계관이 함유된 이 기법이, 신 중심의 중세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의 세계를 지향했던 르네상스인들에게 걸맞았기 때문이다. 이에 15세기 사람들은, 마치 우리가 3D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처럼 원근법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마사초의 신비로운 그림과 1453년 원근법의 원리를 담은 알베르티의 <회화론> 출판에 힘입어, 이 기법은 유럽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그 후 화가의 주관적이고 자유로운 표현이 중시되기 시작한 19세기 말부터 위세가 꺾였지만, 현재에도 원근법은 회화의 사실적 묘사 원리로서 기본 학습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반면 동양의 원근법은, 기하학적 이론에 바탕을 둔 서양의 원근법과 확연히 다르다. 먹의 농담을 통해―수묵산수화― 예술적으로 표현하거나, 삼원법(三遠法), 즉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의 세 가지 각도인 고원(高遠)·심원(深遠)·평원(平遠)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나타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