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어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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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디가?
  • 나숙희 수필가
  • 승인 2020.12.2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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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빵빵’ 차 클랙슨 소리가 크게 들렸다. 누가 저렇게 교양없이 누르는 걸까? 성격이 꽤나 급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석 위에 있는 거울을 보면서 눈썹은 잘 그려졌는지 보았다.

 
그리고 오늘 할 일은 무엇인가 하나하나 그리는 동안 내 시선은 차 전광판에 머물렀다. 차 기름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유심히 살펴보고 있을 때 ‘빵빵빵’ 급하다 급해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욕 대신에 클랙슨 소리로 대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서야 깜짝 놀라 신호등을 바라보니 빨간 신호등은 온데간데없고 파란 신호등으로 바뀌어 있었다. 미안한 마음으로 비상등을 켜면서 급하게 달려 나갔다. 뒤에 줄줄이 서있는 차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출근 시간이라 1분이 금 같은 시간이었을 텐데 조급한 마음에 얼마나 나를 원망했을까 반성을 많이 했다. 


인도에 사람들의 발걸음도 ‘총총총’ 바쁘게 걷고 있다. 활기찬 모습에 기분이 덩달아 신이 났다. 


내 차는 어느새 요양원 문 앞에 도착했다. 아기가 다 되어있는 엄마가 잘 주무셨는지 애달픈 마음으로 매일 같이 요양원 문을 두드린 지가 벌써 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문이 열리는 순간 힘겨웠던 날들을 그려낸 엄마의 주름진 얼굴이 보였다.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듯 초라한 눈빛이 내 얼굴을 보는 순간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도 아무 말 없이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다. 아무런 기쁨도 희망도 없는 모습이다.


나는 엄마에게 “잘 주무셨어요? 공주님” 하고 인사를 했다. ‘이제는 제가 엄마가 되어 드리겠어요’ 하는 심정으로 얼굴도 부비고 사랑으로 힘껏 안아 주었다. 
평생 기둥이 되어 줄 것만 같았던 나의 마중물이었던 엄마, 이젠 내가 엄마노릇을 하리라곤 꿈에도 상상 하지 못했다. 


어느 봄날, 엄마가 요양원에 들어가셨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내 가슴이 마구 부서졌다 충격에 아무 정신없이 그곳까지 차를 몰았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한동안은 그곳에 적응하지 못해서 매일 같이 “죽고 싶다” 라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했다. 그 말을 들을 때 마다 온 몸이 저리다 못해 늘 흠뻑 젖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변화된 환경에서 잘 적응해 나갈 수 있을까? 곰곰이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밤을 새워 머리를 짜내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매일같이 조금이라도 얼굴을 마주하며 함께 하는 것이 최고의 치료법이 라는 결론을 내렸다. 


몇 년 전 어느 날, 장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아침이었다. 밖의 모습은 어둡고 침침해서 저녁 해가 넘어간 듯 보였다. 여느 때처럼 요양원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나를 보는 순간부터 또 다시 죽고 싶다는 말을 하루 종일 반복할 기세였다. 나는 순간 아름다운 거짓말로 달래봐야겠다 생각하면서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오늘은 장마 비에 나무가 뽑힐 만큼 강한 바람이 불고 강물이 넘치고 있는데? 저와 함께 죽으러가요.” 창밖에는 험난한 빗줄기가 요양원을 집어 삼킬 듯 퍼붓고 있었다. 
거실에는 요양사 등 대여섯 명이 앉아서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오늘이 마지막 날 일 것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정성껏 화장을 해 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의 얼굴은 화사하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창백하게 변하고 점점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밝고 예쁜 옷을 선택해 입히는 순간 잎 새가 폭풍에 흔들리듯 부들부들 떠는 것이 내손에 느껴졌다. 엄마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어디에서 죽을 건데?” 하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대답대신 나지막한 목소리로 “엄마! 죽을 준비가 다 되었으니 어서 나가기만 하면 돼요” 하면서 재촉을 했다. 외출 하자는 말에 다른 때 같으면 “그랴” 하고 좋아서 얼른 일어났을 텐데 그날은 쇼파에 자석이라도 붙여 놓았는지 조금도 움직이질 않았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지나갔다. 엄마는 내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시다가 간절하면서도 떨리는 목소리로 “강물에 빠져 죽으면 춥잖아?” 하고 말하는 순간 거실에 계시던 선생님들과 말이 통하는 입소자들이 손뼉을 치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건물이 흔들릴 정도였다. 


그렇다. 나이가 많을수록 순진한 아이로 변한다는 말이 맞다. 엄마는 5살이 되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울었던 기억들이 지금도 가슴 언저리가 아프다. 
오직 자식만을 위해 오랜 시간들을 눈물과 한숨으로 지새웠을 내 사랑 엄마,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드린다.


오늘은 엄마가 좋아하는 호떡이라도 사드려야겠다. 엄마와 함께 자주 가던 금강유원지로 향했다. 달리는 차창밖에는 은빛 강물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 먼 산에 보이는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엄마모습 만큼이나 초라하게 보였다.  


운전하는 나를 보고 엄마는 “지금 어디가?” 하고 묻는다. “엄마! 맛있는 호떡 먹으러가요” 1분이 지나기도 전에 또, 또, 또 “지금 어디가?” “맛있는 호떡 먹으러가요” 벌써 20번 넘게 묻는 말에도 나는 귀찮지 않았다. 천번 만번 이라도 “맛있는 호떡 먹으러 가요” 하면서 갈 것이다. 이 시간도 또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기에….


먼 훗날 나의 미래를 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시리고 아프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니 하늘이 슬퍼 보인다. 엄마를 생각하며 써내려간 나의 자작시가 생각이 난다. 
바람에/실려 오는 그윽한 목소리/언제나 듣고 싶다/장 닭이 울 때 까지/하얀 밤을 보내며/ 스웨터를 짜시던 어머니, 
졸시 낡은 스웨터 일 부분이다. 어느새 짭쪼름한 물줄기가 목줄까지 내려오고 있다. 이제 엄마에게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함께 보내는 오붓한 시간 뿐이다. 


“엄마 찹쌀호떡 맛있지?” 지금 엄마와 먹고 있는 호떡 맛은, 젊은 엄마와 어린 내가 살았던 방 한 칸이 집 한 채였던 초가집으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다 헤어진 처마 밑에 쪼그려 앉아 쏟아지는 장마 비가 언제 그치려나?


도란도란 이야기하던 시간들, 엄마와 나 행복했던 그곳에서 오래도록 머물러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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