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을 담는 붓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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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을 담는 붓끝
  • 김수연기자
  • 승인 2021.04.01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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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노인복지관 고급서예반
청산노인복지관 고급서예반 어르신들이 각자 글을 쓰는데 집중하고 있다.
청산노인복지관 고급서예반 어르신들이 각자 글을 쓰는데 집중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 청산면에 위치한 청산노인복지관 고급서예교실에는 긴장감이 가득한 침묵과 화선지 위를 스치는 붓 소리만이 가득하다. 들이쉬고 내쉬는 숨소리마저 들리는 고요한 공간엔 간간히 “밑 부분을 조금 더 굵게 쓰세요, 조금 더 흘려야 해요”라며 수강생들을 지도하는 송전 정기옥(77) 강사의 목소리만이 들려올 뿐이다.


수업이 이뤄지는 청산노인복지관은 어르신들의 문화를 위한 공간이 적은 청산에서 톡톡히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 특히 서예수업은 어르신들의 참여율이 어찌나 좋은지 결석도 특별한 사정을 제외하면 거의 없을뿐더러 지각은 커녕 다들 수업 시작 전에 미리 나와 연적에 물을 채워놓고 벼루에 먹물을 부어 농도를 맞춘다. 


9시에 미리 도착해 글을 쓰고 계시는 어르신도 다수. 이렇듯 일찍 오시는 어르신들을 위해 정 강사도 수업 시작 30분 전에 도착한다. 한글자를 쓸 때 마다 온 정신을 집중해 교본 한두장만 써도 금세 한시간이 지나가 버린다. ‘나이와 열정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정 강사는 “서예를 시작한지 벌써 50년이 됐다”며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서예와 한국화를 배운 것이다”고 했다. 
적게는 수년 전부터 많게는 십년 이상 전부터 서예를 시작한 수강생들이 참여하는 수업인만큼 교본에 적힌 한자를 자세히 풀어 주거나 정 강사가 직접 시범을 보이진 않는다. 수강생들 각자가 본인의 시간과 페이스를 유지한 채 교본을 한글자씩 따라 써 내려가고 지도자는 그저 뒤에서 유심히 보다 삐침의 세기, 글자의 굵기 등 세세하지만 중요한 것들 위주로 개선점을 알려주는 것이 그들만의 수업 방식이다. 개개인이 글을 읽고 뜻을 음미하고 종이에 옮기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자 서예의 경우 각이 곧은 느낌의 해서체로 시작해 점점 흘림과 삐침을 넣어가며 행서, 행초서 순으로 단계가 넘어가며 한글 서예의 경우 고딕체로 시작해 궁서체, 흘림, 진흘림 순으로 넘어간다. 


본래 본인이 더 잘하는 문자와 서체를 더 많이 쓰게 돼 한글서예 따로 한문서예 따로 지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 강사는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두 문자를 모두 연구한 까닭에 한글과 한문을 배우는 수강생들을 나누지 않고도 수업이 가능하다.


서예를 시작한지 10년이 넘었고 현재는 청산노인복지관에서 서예초급반을 맡아 가르치고 있는 권복성(87) 강사 또한 서예고급반에서 연습을 한다. 그는 “마음이 안정돼야 글씨가 나온다”며 “붓글씨를 쓰기 위해선 계속해서 섬세하게 손 끝을 움직여야 하고 집중해서 책과 글자를 봐야하기 때문에 집중력 향상에도 좋다”고 했다.

 

또 다른 수강생 A씨는 “한문책을 필사하다보면 옛날 성인과 학자들이 남긴 고서를 읽고 충의예효를 배울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며 “아마 가는 날까지 배워도 다 못배울 것 같다”고 했다. 이어 “학생들이 서예를 통해 이런 내용들을 접한다면 조금 더 지혜롭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학생들에게도 적극 추천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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