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 사시던 집에 이제 제가 사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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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사시던 집에 이제 제가 사는거죠”
  • 김수연기자
  • 승인 2021.04.08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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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읍 임헌용 씨
진아트미술교습소는 널찍한 여유공간을 통해 아이들이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인테리어 했다.
진아트미술교습소는 널찍한 여유공간을 통해 아이들이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인테리어 했다.

 

엄마 혹은 어머니.

누군가는 이 단어를 보기만 해도 두 눈가가 붉어진다.

“돌아가시면 소용없으니 후회 말고 살아계실 때 잘해라”라는 말이 관용어처럼 퍼져 있지만 어머니께서 살아계실 때 최선을 다한 아들에게도 항상 가슴 한켠엔 그리움과 후회가 남아 있었다.

옥천이 고향인 임헌용(70) 대표는 대전에서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해왔다.

서로 다른 시공법과 스타일 때문에 보통 한옥과 양옥을 구분 지어 자신 있는 분야만 시공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임 대표는 특유의 성실함과 일에 대한 열정으로 두 분야를 모두 섭렵해 고객들로부터 끊임없는 칭찬과 신뢰를 얻었다.

그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임 대표의 어머니께서 물려주신 손기술 덕분이다.

성실함과 열정은 손을 사용하는 일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과 재주를 보조해줄 순 있어도 대신할 순 없다.

그의 어머니는 과거에 서예, 손글씨 등으로 옥천에서 이름을 날렸다.

당시 옥천군수까지 와서 보고 갔을 정도인 그 손기술을 임 대표가 그대로 물려받았던 것.

그는 손재주를 물려주신 것과는 별개로 평생을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신 어머니께 항상 감사한 마음과 죄송한 마음을 함께 가지고 있었고 어머니의 희생에 대한 보답으로 자신의 주특기인 건축·인테리어를 살려 구읍에 집을 지어 어머니께 드렸다.

행여 미끄러지실까 화장실 바닥엔 오돌토돌한 타일을 깔았고 찬바람 들어와 어머니 몸이 시릴세라 꼼꼼히 미장했다.

몇 년 후 임 대표의 어머니께서 작고하신 후에 그는 ‘어머니께서 사시던 집에 이젠 내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지난 11월부터 집을 다시 리모델링 하고 있다.

약 5개월 동안 직접 구들장도 들어내고 서까래 등 한옥을 대표하는 굵직한 기둥들은 남긴 채 내부 공사에 열중하고 있다.

벽이 조금 틀어져 남는 공간은 그만의 노하우를 담아 수납공간으로 변신시켰고 문과 창문을 직접 디자인했다.

“옛날 집을 최대한 허물지 않고 현대식으로 고칠 부분은 확실히 고치는게 목표다”라고 말하는 임 대표.

옥천에서 집을 짓기 전에 그는 ‘아무래도 시골’이라는 생각에 자재공급과 관련해 조금은 걱정했지만 이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그는 “대전에서 오랜 기간 인테리어 사무실을 운영해왔지만 오히려 자재 수급 같은 것은 옥천이 더 편한 것 같다”며 “고속도로, 국도, 폐 고속도로 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니 대전까지 나가는 데 15분이면 충분한 것 같다”고 했다.

평소 생활 속에서 일상을 포착해 글감으로 전환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 글감을 바탕으로 글 쓰는 것을 즐기는 임 대표는 아예 공사 현장에 그네를 만들어 혼자 있고 싶을 때면 그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곤 한다.

그가 이렇게 마음 놓고 사색에 잠길 수 있는 이유는 창밖으로 보이는 구읍의 고즈넉한 풍경 덕분이다.

“구읍은 정말 손에 꼽게 아름다운 곳이다”라고 하는 임 대표. 그는 “정지용 시인이 ‘향수’를 썼을 때 그리던 풍경이 이런 것이겠구나 생각하곤 한다”며 “직접 구읍을 마주하니 정지용 시인이 왜 ‘꿈엔들 잊힐리야’라고 부르짖었는지 알 것 같다”고 했다.

임 대표가 구읍에 반한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바로 주민들 간에 넘쳐나는 정 덕분이다.

조금이라도 먹을 것이 생기면 나눠주는 사람들과 아예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이웃이 찾아오길 기다리는 집까지.

그는 “도시에선 느끼기 어려운 시골의 순박한 정과 사람 사는 냄새가 느껴진다”고 했다.

이제는 누구보다 구읍을 사랑하고 대전의 지인들에게 구읍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역설하는 ‘구읍전도사’가 된 임 대표.

그는 “구읍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할 때 가장 빛나는 곳이다”며 “구읍의 발전을 위해선 청년, 타지 사람들이 계속 들어와 지역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되 구읍만이 가지고 있는 전통을 잃어버려선 안 된다”고 했다.

임 대표는 현재 두 가지 계획을 가지고 있다.

평소 요리에 관심이 많아 지금 짓고 있는 공간이 완성되면 직접 담은 동동주, 전통 막걸리 등과 파전, 부추전 등 다양한 전을 이웃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주막을 만드는 것을 고려 중이다.

다른 하나는 도롯가의 벽을 허물어 주민들에게 무료로 주차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향수길 주변으로 주차 공간이 부족해 사람들끼리 언쟁이 오가기도 하고 좁은 골목에 차가 세워져 있다 보니 안전문제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담을 허물고 무료 주차공간으로 개방하는 것에 대해 자문하고 있다”며 “모쪼록 일이 잘 마무리돼 구읍에 이바지하고 싶다”고 했다.

이어 “향수길은 절대 넓은 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가끔 굉장히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차를 보곤 한다”며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어 어린이들도 많이 다니는 길이니 조금만 교통문제에 경각심을 가지고 천천히 지나갔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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