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기록유산 ‘조선왕조의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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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기록유산 ‘조선왕조의궤’
  • 오현구기자
  • 승인 2021.04.2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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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의궤 반차도(朝鮮王朝儀軌 班次圖)
조선왕조의궤 반차도(朝鮮王朝儀軌 班次圖)

 

조선 시대 기록 중 그림으로 남긴 기록문화유산이 있다. 바로 ‘조선왕조의궤’(이하 ‘의궤’)다.

‘의궤’는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돼 이미 그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조선 시대 기록문화다.

조선왕조는 왕실의 의식 절차와 업적에 관한 기록을 후세에 남기고자 전례 없는 노력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국가 중요 행사와 의식이 변화한 과정을 독창적 방식으로 기록하여 다양한 국가행사를 그림으로 그렸다.

‘의궤’는 조선 시대 통치 철학 및 운영체계를 알게 하는 대단히 의미 있는 기록물이다.

이 책에 기록된 주요 행사는 왕실 혼인을 비롯 왕과 왕세자 책봉식, 왕실 장례, 제사, 궁중 잔치, 활쏘기, 태(胎)의 봉안, 국왕 행차, 궁궐 건축, 친농(親農)⋅친잠(親蠶) 행사, 사신 영접 등 국가나 왕실 행사 전반에 관한 것들이 있다. 특히 행사의 가장 중요한 행렬은 반차도(班次圖)를 통해 표현했다.

‘의궤’는 왕의 열람을 위해 제작한 어람용과 여러 곳에 나눠 보관하기 위한 분산용으로 구분 제작했다. 어람용 의궤는 규장각에 보관하고 분산용은 의정부, 춘추관, 예조 등 관련 부서와 태백산, 적상산, 오대산, 강화 정족산 등의 사고로 보냈다.

그중 강화 정족산 사고에 보관된 ‘의궤’는 정족산 사고가 외규장각이라 불리었던 이유로 ‘외규장각 의궤’라고 불렸다.

이 책은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가 약탈했다. 그 후 1세기가 다 돼가는 동안 프랑스 국립도서관 폐지 창고에 방치돼 있었다. 이 책을 우리나라로 다시 가져올 수 있게 된 데는 박병선 박사의 공이 컸다.

박 박사가 ‘의궤’를 발견하게 된 것은 우연였다. “사서가 한국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책이 있다고 해 열람 허가증을 들고 가니 책을 들고 나왔다”고 했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의궤’ 297권의 내용을 해석하는 작업을 병행했다.

‘조선왕조의궤’를 출간하기 위해 십여 년 월급과 세간살이까지 내다 판 그녀의 노력 끝에 1992년 책이 출간됐다. 더불어 ‘의궤’의 존재를 우리나라에 알린 1979년부터 사망하기까지 30년 넘게 책 반환을 위한 싸움을 이어왔다.

마침내 145년 후인 2011년 고국으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는 대부분 국왕의 열람을 위해 제작한 어람용(御覽用)이란 점과 국내외에 한 점밖에 없는 유일본(唯一本)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의궤 연구 및 활용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는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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