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엔들 잊힐리야
상태바
꿈엔들 잊힐리야
  • 강형일기자
  • 승인 2021.06.24 10: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손미선 도예가
손미선 도예가가 작품에 붓칠을 하고 있다.
손미선 도예가가 작품에 붓칠을 하고 있다.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자연의 품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은 행운아다.

철없던 시절, 때로는 도시 아이들의 은근히 비웃는 듯한 태도와 공연한 위축감이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해도 한 해 두 해 거듭될수록 그 귀한 기억들이 점점 더 소중해져 간다.

영동군 영동읍 임계리는 손미선(50) 도예가의 고향이다. 소백산 줄기인 삼봉산 아래, 영동천이 흐르는 7부 능선의 산골에서 한 시간 넘어 걸리는 학교를 오가는 길 위에서 그녀의 감성은 자랐다.

과일은 달고 바람은 더없이 맑아서 흙을 어루만지는 지금의 그녀를 빚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
말타고
땅따먹고
마루 닦고
뱀도 만나고
소나기도 맞고
땅짚고 헤엄치고
고무줄놀이하고
구슬치고
썰매타고
목욕하고
하루가 꼴딱
(전시회 도록 중에서)

그녀가 오랜 전업주부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도예가가 된 계기는 아이들을 키우며 10여 년간 참여한 ‘동화읽는 어른모임’이었다. 사실 동화는 정작 어린이보다 어른에게 더욱 필요한 이야기, 동화와 그림책들을 통해 잊고 지냈던 어린 날의 기억과 그 소중한 의미들을 되새기고 끄집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발휘하지 못했던 ‘끼’가 차츰 기지개를 켰고 점토, 서양화, 요리, 바리스타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해 나갔다.

2014년부터 안내면 월외리의 청자 명인 양금석 선생으로부터 본격적인 도자기 수업을 받았다. 

청자의 신비함과 도자기의 흙냄새에 빠져들며 일주일에 세 번 공방 가는 날, 한번 갈 때마다 6시간씩 흙과 도자의 세계에 점점 익숙해졌다. 배움이 깊어가며 자신만의 공방이 필요했고 함께 공유하고 싶은 공간을 갖고 싶었다.

흙을 만질수록 비로소 마음의 고향을 다시 찾은 것처럼 편했고 몰입할수록 잡념이 사라졌다. 그러나 전업 예술작가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방과 후 교육도 하고 마을 학교 강사로도 적극적으로 뛰었다. 그런 한편으로 공모전에도 출품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인천 국제미술 전람회’에서 연거푸 4회 특선의 영광을 안았고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충북 공예품 대전’에서 입선하는 기쁨도 누렸다.

그녀의 공방 이름은 ‘꿈꾸는 모모’다. 모두가 짐작할 수 있듯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1973년)에서 따온 이름이다.

회색 도시에서 시간에 쫓기며 사는 어른들, 그들의 모든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는 모모라는 이름의 소녀. 사람들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주기까지의 모모의 여정을 따라가는 이 작품은 우리의 유한한 삶을 척박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새삼 깨닫게 만든다.

‘느리게 갈수록 더욱 빠른 거야’라는 역설적 진리를 그녀는 깨우쳤는가 보다. 언젠가는 깨져 흙으로 돌아갈 도예를 만지고 주무르고 형상화하면서 자연스레 깨달은 것인가, 시간은 삶이며 삶은 마음 속에 깃들여 있는 것. 각박한 현실 속에서 철학적 사고는 더욱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꿈꾸는 모모 도예’는 오늘도 쉼없이 시간을 빚는다.

첫 번째 개인전, 사랑하는 옥천에서

국민 모두가 사랑하는 시인 정지용의 아름다운 서정, 비록 그 시어들을 모두 따라잡지는 못하지만 고향의 흙냄새가 묻어 나오는 정지용 선생의 혼이 담긴 도예작품 여러 종류를 빚었다. 충북 공예품 대전에서도 그런 그의 솜씨를 인정해 주었고 한 발짝 더 디뎌 정지용 선생을 활용한 오르골 도자까지 만들어 냈다. 아이들이 성장했으며 작가 자신에게도 고향 임계리 못지않은 소중한 곳으로 자리매김한 옥천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연다. 7월 2일부터 8일까지 옥천전통문화체험관 전시실에서 열릴 예정이다.

손미선 도예가는 말한다. “예술가의 길이 모두 그렇지만 도예가 역시 끝없는 자기계발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샘솟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회와 여건의 뒷받침이 없다면 그런 의욕과 성장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특히 지역에서 활동하는 도예가들의 대부분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고군분투하며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지역의 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동 작업장, 또는 공유 공간이 무척 아쉽다. 아울러 각급 문화재단에서 지원되는 많지 않은 지원금 선정과 배분의 기준도 좀 더 심도 있게 다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