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당(愚二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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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당(愚二堂)
  • 강형일기자
  • 승인 2021.07.08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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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두 사람이 사는 집
으름 꽃차 에이드
으름 꽃차 에이드

한반도 지형을 품에 안고 있는 안남면, 독락정으로 향하는 왼쪽 들길 말고 오른쪽으로 향하면 깔끔하게 가꾼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너른 장터와 면사무소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마치 제주도의 어느 해변에나 있음 직한 바다 빛 벽의 아담한 한옥 카페 한 채, 그림처럼 서 있다. 어리석은 두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자처하는 겸손한 집 ‘우이당(愚二堂)’이다.

아내의 가게

열려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은발의 소녀 이광희 씨가 꽃꽂이처럼 앉아 있다.

“서울에서 귀촌, 군북면 소정리에서 보리밥집을 하며 2년여 살다가 여기 안남에 2019년도에 정착했어요. 저는 전통 된장과 꽃차를 공부하고 신랑은 인사동에서 전각 작가 생활을 했습니다. 봄부터 지역에서 자생하는 꽃을 채취하며 꽃차를 만듭니다. 헌 집을 사 수리해서 찻집을 먼저 열었고 전각 공방도 곧 갖출 예정입니다. 이곳 아름다운 안남에서 조용하고 욕심없이 시골 생활을 하며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늙어가고 싶습니다”

그리 넓지 않지만 청결하고 조화로운 실내를 둘러보니 자연을 사랑하는 이 씨의 섬세한 마음씨와 예술적 취향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청하기도 전에 맑은 유리잔에 담아온 상큼한 냉차, 독특한 색이 궁금해 물어보니 여름철 대표 음료로 내놓는 으름 꽃차라고 한다. 으름 꽃도 귀하거늘 꽃차라니! 차림표에 있는 여러 색다른 꽃차 중에서 ‘화양연화’라는 이름이 눈길을 끌었다. 花樣年華(인생에서 가장 화려하고 행복한 활짝 핀 꽃 같은 시간을 뜻하는 말)라니…. 탁월한 작명이다. 지금, 이 순간, 한 모금의 꽃차가 품고 있는 아련한 향과 표현할 길 없는 달콤함을 머금은 이 순간이 바로 그때다. 깨끗한 야생에서 얻은 보물들로 만드는 여러 꽃차가 있지만 약선차는 생강나무와 목련, 산죽잎을 함께 끓인 약이 되는 음료다. 여름철에는 산죽잎 대신 연잎을 넣어 은근하게 우러나는 푸른 빛은 살리고 산뜻함을 더한다고 한다.

봄에는 으름 꽃 음료, 아카시아 꽃 음료를 추천한다. 여름이 좀 지나면 맨드라미와 금계국으로 만든 음료도 추천할 만하다.

파스타, 올리브 기름이 듬뿍 들어간 올리오 스파게티, 담백하고 고소한 두 종류의 피자. 단순하지만 훌륭한 건강식을 함께 제공한다. 귀촌 후 배우고 익힌 솜씨로 전통 된장도 소량 만들어 원하는 지인들에게 약간의 재료비를 받고 판매하고 있다. 아직도 배울 게 천지다 라고 말하지만 이미 많은 것을 이루어서 하고 있다. 

남편의 공방

생각의 일치로 함께 귀촌 생활을 시작한 부부는 행복할 수 밖에 없다. 거울처럼 바라보며 서로 다른 일을 하면서도 같은 곳을 바라보는 마음은 분명 평화롭고 아늑할 것이다.

부군은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오랫동안 ‘돌사랑(舍廊)’이라는 이름의 공방을 운영하며 작업해온 전각 작가 전정구(62) 씨다. 안채에 계신다는 부군도 만나보고 싶었지만 작품활동에 방해될까 청하지 않았다.

전각은 글자나 그림을 나무나 돌, 금속 등에 새기는 것을 일컫는 것으로 그 가운데 전서체가 가장 조화롭고 아름다운 효과를 낸다는 의미에서 명칭이 유래했다.

5세기 무렵 한국과 중국, 일본 등에서 시작돼 낙관 등 실용적인 쓰임새로 사용되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예술을 천시하던 풍토 때문에 전각 예술가들에 대한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근세에 와서야 비로소 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전 작가는 24세 때부터 10여 년 간 독학으로 전각을 배운 뒤 판화와 묵화 등의 기법을 스스로 터득하면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쳐왔다.

특히 보수 성향의 전통예술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색다른 시도로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날로 쇠락해져 가며 옛 정취와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인사동에서 벗어나 과감히 시골행을 감행한 전각의 달인, 풍요로운 자연을 소재로 삼은 새롭고 독특한 작품들이 기대된다. 뒤꼍을 보니 마당 한 자락에 공방을 지으려고 준비 중이었다.

옥천살이는요

"안남은 특별한 곳이죠. 조용하고 공기 맑고 산에 둘러싸여 있는 게 참 좋아요. 산도 험하지 않아요. 삐죽삐죽한 게 아니고 둥글둥글 온화하죠. 가까이에 금강도 구비져 흐르고요. 서울 살았을 적에 막연하게 나중에 경기도권에 전원주택 하나 마련해 살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여기저기 둘러봐도 안남만큼 저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곳이 없어요. 종일 집에만 있어도 답답하지가 않아요.“

조용하고 푸근하고 한가롭다. 그런 여유가 오랜 도시 생활의 때를 씻어주고 안정된 정서로 마음까지 밝혀준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렇게 좋은 안남면의 곳곳에 대한 적극적이고 세심한 홍보가 좀 부족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현재 거주하고 있는 (본인을 포함한) 주민들도 그리 넓지 않은 지역 내 과수 농가가 있다가 어느 날 사라지는 것도 몰라서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찾아온 외지인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줄 수 없단다. ‘배바우 마을’이라고 부르며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한 소식지도 만들어내고 있지만 정작 주민 모두의 동정이나 마을 소식과는 거리가 있는 점이 안타까운 것이다. 또 하나 바라는 것은 한반도 지형이라고 부르며 ‘옥천 9경’에 포함되어 많은 외지인과 관광객이 찾는 둔주봉에 마땅한 쉼터 하나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 진정한 마을 주민이 된 그녀의 눈에 보이는 작지만 필요한 지적이다. 그러나 안남면과 옥천군에 대한 그녀의 애정은 나날이 깊어지고 있음을 편안한 표정과 상냥한 태도에서 알 수 있다.

우이당카페 전경
우이당카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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