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와 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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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와 路
  • 이종구 수필가
  • 승인 2021.07.15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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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지난 달 22일 청년재단과 공동으로 청년 취업 준비생들이 현직 선배에게 취업의 길을 묻는 ‘한국산업인력공단 현직자와 함께하는 온라인 직무 토크콘서트’를 개최했다. 그만큼 우리 현실은 청년들에게 취업의 길이 중요한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정당들은 청년들의 민심을 얻고자 청년 취업 문제를 정책 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보이지 않는 취업의 길은 방법이리라. 눈에 보이는 길 - 사람이 걷고 차가 달리는 길이지만 어떤 의미를 부여하면 왠지 가치 있어 보인다. 잘 조성된 숲이나 생태원 등에는 ‘연인의 길’, ‘효행의 길’, ‘사랑의 길,’ ‘천상의 길’ 등 나름대로 이름을 붙이고 전국 각지의 명산이나 관광지 또한 의미있는 이름을 붙여 걷는 이들의 마음을 아름답게 한다.

길은 문학에서, 드라마에서, 대중가요에서 주제나 소재로 많이 등장한다. 그만큼 우리네 삶의 대부분이 길과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우리말은 그냥 길이지만 한자는 의미가 좀 다르다. 道는 이치, 근원, 기능, 방법, 사상, 인의(仁義), 덕행(德行), 기예, 정령(政令), 행정(行程) 뜻으로 路보다는 상위의 개념이 들어 있다. 路는 거쳐 간다. 겪는 일의 뜻으로 좀 작은 하위의 개념이다.

길은 우리 삶에서 고달픔과 희망의 대립적 의미로 자주 쓰여 왔다. ‘인생길 고단하다, 고생길이 환하다, 먹고 살길 막막하다’ 등 그러고 보면 걷는다는 것은 힘든 과정인가보다. 路는 발(足)이 따로따로(各) 가는 길로 가는 모습, 개개인이 가는 모습과 같다. 그렇지만 또 다른 의미로 ‘성공의 길로, 내 갈 길 간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데…’ 등 희망을 제시하기도 한다. 道는 辶(착; 쉬엄쉬엄 가는)과 首(수; 머리, 먼저)가 합쳤으니 생각을 먼저하고 다음 천천히 행동하라는 뜻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노자는 道라는 이름으로 그의 사상을 펼쳤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하루에 얼마나 많은 길을 오갈까? 오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물을 보고 듣고 부딪힐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즐거움과 슬픔, 시원함과 괴로움을 느낄까? 걷는 길이 路일까? 道일까? 한 번쯤 되짚어 볼 일이다.

학교 가는 학생들은 배움의 길이기에 수련의 과정이고 직장인의 출근길은 살기 위한 인생길이며 연인을 만나러 가는 젊은이는 환희의 길일 게다. 매일 집을 나서는 길을 고생길 인생길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연인을 만나러 가는 환희의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발걸음이 가볍지 않을까?

같은 길이지만 路보다는 道를 걷는다고 생각하면 좀 더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한 것은 아닐까? 노자는 그의 도덕경에서 ‘道冲而用之 惑不盈 淵兮 似萬物之宗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湛兮 似或存 吾否知誰 之子 象帝之先. 도는 빈 그릇 같고 심연처럼 깊고 모든 것의 기원이다. 날카로움은 무디게 하고 얽히면 풀고 빛을 부드럽게 하고 티끌과 하나가 된다. 깊고 고요하다. 누구의 자식인지는 모르나 하느님 보다 먼저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노자의 깊은 뜻은 알 수 없지만 단순히 문자적 해석만으로도 우리의 삶의 과정을 고생길, 힘든 길이라 하지 말고 좋은 의미를 부여하여 긍정적이고 가치있는 삶의 길로 생각하며 살아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길이라는 평범한, 자연적인 현상의 공간을 너무도 생각 외의 것으로 무가치하게 밟으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었는지 되짚어 볼 일이다. 옛날의 길은 그저 사람들이 지나가고, 지나가고 해서 생기는 자연적인 길이고, 그러다 보니 소통하는 길이다. 높으면 돌아가고 힘들어도 갈 곳이 그곳밖에 없다면 산을 넘어가는 고갯길이 생겼다. 그래서 쉬엄쉬엄 길을 가며 자연을 보고 느끼고 순응하며 살아왔다. 비바람을 피해 가라고 돕는 이가 나타났으니 주막이었다. 비록 값을 주어도 인정이 나누어지고 삶의 애환을 나누는 길이 되었다. 쉬었다 가고, 묵었다 가고, 그래서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과학 문명이 발달하면서 빨리, 많이 가야 하는 일이 생기고 그래서 들을 메우고 산허리를 깎고 뚫어 큰길을 만들었다. 쉼이 없다. 자연을 바라보거나 자신을 되돌아보거나 같이 걷는 이와 나누고 소통하는 일이 사라졌다. 남보다 자기만 먼저 가면 되고 빨리 가면 된다. 사고가 나고… 그러다 싸움이 난다. 인정이 메말라 간다고 한다. 어쩌면 ‘묻지마 사건들’도 현대의 큰길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닐는지?

현 시국도 백신 접종으로 조금씩 가라앉는 듯하다. 더워지는 여름, 우리 삶을 즐거운 길, 가족이 사랑으로 뭉치는 길, 이웃과 소통하는 길, 나누고 베푸는 길로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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