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이요! 고막 터져, 귀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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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이요! 고막 터져, 귀 막아!
  • 강형일기자
  • 승인 2021.07.22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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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전통 튀밥 집
뻥튀기 작업 준비중인 모습
뻥튀기 작업 준비중인 모습

압력이 걸려 있는 용기에 쌀 또는 곡물을 넣고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밀폐시켜 가열하면 용기 안의 압력이 올라간다. 적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압력계를 확인하고 뚜껑을 갑자기 열면 압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종류에 따라 내용물이 몇 배에서 수십 배까지 부풀게 된다. 이때 용기의 뚜껑을 열면 ‘뻥’ 하며 큰 소리가 나 뻥튀기라고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쌀을 이용한 ‘튀밥’. 별 거 아닌 듯하지만 어쨌든 이러한 과학적 원리에 의해 쌀알은 다공질(多孔質 작은 구멍이 많이 있는 물질)이 되고 녹말은 덱스트린으로 변하여 그대로 먹어도 소화가 잘되는 영양 간식이 되는 것이다. 보리쌀, 율무, 현미, 검정콩, 쥐눈이콩 등 그냥 먹기도 좋고 우유나 좋아하는 음료에 불려 먹어도 좋아서 기호 또는 시대적 유행에 따라 그 품목도 다양해졌다. 역시나 단단한 껍질과 조직의 옥수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압력을 받아야 하므로 시간도 오래 걸리는 편이다.

튀길 때 뻥튀기 아저씨가 “뻥이요!”라고 외치자마자(호루라기를 불기도 한다.) 들려오는 특유의 ‘뻥-’하는 굉음은 그야말로 긴장감 넘치고 재미있는 볼거리였다. 곡식류의 단단한 껍질이 일종의 틀 역할을 하며 이것이 터지면서 나오는 소리인 것. 때문에 어느 정도 단단한 조직을 갖춘 건 뻥튀기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말린 생선이나 떡 같은 것도 가능하다. 실제로 말려 썰어놓은 가래떡 뻥튀기는 자주 보이는 품목이고 쥐포를 뻥튀기처럼 만든 안주 과자 또한 최근에 자주 팔리는 품목이다.

추우면 춥다고 더우면 덥다고 잘 씻지 않아 땟국물이 쪼록쪼록한 아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를 반짝이며 기계 주위에 몰려들 때면 뻥튀기 아저씨는 그을음이 묻어 시커멓지만 익숙한 손길로 옥수수 강냉이를 한주먹씩 아이들에게 쥐여주며 “엄마한테 가서 옥수수 튀겨 달라고 해라”하고 은근히 말한다. 거기에 더해 “옥수수에다가 땔감 조금 가지고 오면 공짜로 튀겨줄게”라고 달콤한 꼬임으로 아이들을 자극한다.

과자 살 돈은 없고 마땅한 간식거리도 없던 시절, 침 고이는 달콤한 맛과 구수한 냄새, 입안에서 바스락 부서지는 옥수수 강냉이의 맛을 아는 아이들은 저마다 집으로 달려가서 엄마를 보채기 시작한다. 물론 형편에 따라 또는 엄마의 아량에 따라 저마다의 성과는 다르다.

어떤 아이는 커다란 함지박, 다른 어떤 아이는 작은 바가지에 옥수수(사정이 나으면 보리와 쌀이 담기고)를 담아 이고 지고 낑낑대면서도 신나게 달려왔다. 소득이 없이 빈손인 아이들도 잠시 시무룩하다가 이내 친구를 따라와 ‘설마, 조금 나눠 주겠지’하고 군침을 삼키는 것이다. 모두 지나간 삽화, 지금은 다 크거나 늙어가는 그 날의 아이들이 정작 아이들 대신 몇몇 모여 앉아 있다.

옥천읍내에도 튀밥집이 남아 있다. 장날이 되면 개천가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는 분도 계시고 그냥 한자리에서 찾아오는 단골들을 맞이하는 가게도 있다. 5일마다 열리는 장날이 되면 모처럼 뻥튀기 기계는 신이 난다. 

순박한 사람들, 평생 남들에게 손해 한번 입히지 않고 순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유일하게 즐거워하며 ‘뻥’튀기는 시간, 자본이 판을 치는 물질 만능의 시대에 여기저기 욕심을 부풀리는 행태에 흔하게 가져다 붙이는 온갖 ‘뻥튀기’

그러나 대부분의 민초들이 모처럼 양껏 부풀려 ‘손이 가요, 손이 가’ 자꾸만 손 내밀 수 있는 그리 비싸지 않은 기호품, 뻥튀기의 날들이 부디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좋겠다. 

머지않은 어느 날 유리구슬보다 반짝이는 눈망울의 아이들이 빙 둘러앉아 반짝거리다가 바닷가 사금파리 모래알처럼 순식간에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는 ‘뻥이요!’ 의 시간이 다시 돌아오는 그 날을 그려본다. 

뻥튀기 기계
뻥튀기 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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