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가구 42명이 살아가는 옥천군 이원면 현남리(이장 김원호, 72)는 주민 대부분이 복숭아와 포도 농사를 주 생업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한 두 가구씩 줄어 드는걸 보면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들이 시나브로 줄어들고 있다는 증거다.
올해로 4년 차 현남리 이장을 지내고 있는 김원호 씨.
김 이장은 젊은 시절 줄곧 직장생활을 했다. 서울에서 상과계열 대학을 졸업한 그는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온 국민들의 입사 희망 ‘0’순위였던 한일은행 본점에 입사했다. 그리고 자그마치 32년을 근무했다. 보기 드문 정통 금융인 출신 이장이다.
그런 김 이장이 이곳 현남리에 보금자리를 튼 것은 1998년 이맘때. 퇴직 후 남은 여생 맘 편히 살고 싶다는 김 이장의 말에 아내 역시 “그게 좋겠다”며 아내의 고향인 옥천읍 서정리로 향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내가 “마침 현남리에 빈집이 하나 났으니 거기서 사는게 어떻겠냐”는 말에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하자고 동의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집으로 살림도구를 옮겼다.
외지인 인정 않는 것 현남리 문제만은 아닐 것
“처음엔 마음 고생이 무척 많았습니다. 도대체 저희 가족들을 마을 주민으로 인정해 주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라는 김 이장은 “이러한 현상은 비단 현남리에만 국한된건 아닐것입니다. 그런데 14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러한 현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라는 사실입니다”라고 했다. 실제로 일부 주민들은 자신들도 투표에 참여해 공정하게 김 이장을 이장으로 뽑아 놓고도 이장이라고 부르지도 않는걸 보면 원주민과 외지인 간 벽이 얼마나 높은지 실감한다고 했다. 더욱이 외지인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데 원주민이라는 사람들이 그러한 행동을 하는걸 보면 그들의 속내가 몹시도 궁금할 따름이다. 마을의 속내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들이기에 앞장서서 도와줘도 도와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심통을 부릴땐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만다.
김 이장은 이장이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마을 제방 확포장사업이다. 당시만 해도 비포장도로에 승용차 한 대도 다니기 힘들 정도로 비좁았던 제방도로를 군으로부터 협조를 받아 무려 300미터 넘는 길이를 마무리했다. 당연히 주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역시 많이 배운 사람이 이장을 맡으니까 달라도 뭐가 다르네”하는 찬사가 이어졌다.
이후로 김 이장은 마을 내 농로수리시설을 비롯한 마을회관 집기 교체, 방송시설 교체, 운동기구와 마을자랑비를 군부지로 옮기는 등 크고 작은 일들을 수없이 처리해 냈다.
외지인 배척보다는 함께할 가족으로 생각해야
“외지인들이 마을에 이사를 오면 무조건 안아야 합니다. 그러한 이유로는 그들 역시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주민들이니까요. 더욱이 그들 가운데 누군가는 원주민들이 풀지 못할 숙제를 풀어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는게 진정한 삶이 아닐까요”
이제 김 이장이 하고픈 일이 하나 있다. 군유지를 매입해 마을주민들의 경제적 수익을 올려주기 위해 창업터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만 마무리 지으면 마을 내에 급한 불은 다 껐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