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 송시열 탄생 414주년 숭모제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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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 송시열 탄생 414주년 숭모제 열려
  • 김동진기자
  • 승인 2021.10.28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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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모제를 지내기 위해 준비된 우암 송시열 선생의 영정과 영당의 모습
숭모제를 지내기 위해 준비된 우암 송시열 선생의 영정과 영당의 모습

지난 22일 오전 11시, 우암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탄생 414주년을 기리는 숭모제가 옥천군 이원면 용방리 구룡마을에서 열렸다. 

우암 선생은 구룡리의 외갓집에서 사옹원 주부를 지낸 은진 송씨 송갑조와 곽자방의 딸인 선산 곽씨 부인의 아들로 1607년(선조 40) 음력 11월 12일 태어났다. 

우암은 27세 때 사마시에 장원급제하여 봉림대군(효종)의 사부를 지냈고 효종의 즉위 후 북벌정책에 깊이 관여했으며 동국 18현 중 한 명으로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정치가였다.

우암의 알려진 태몽은 어머니인 곽 씨 부인이 밝은 달과 같은 구슬을 삼키는 태몽을 얻어 그를 잉태했다고 한다. 또 아버지 송갑조도 선생이 나기 전날 밤 마침 종가에 제사를 모시러 청산 땅에 머물고 있었는데 한밤중에 홀연히 공자가 여러 제자를 거느리고 나타나서 그중 한 제자를 가리키며 “이 아이를 그대에게 보내니 잘 가르치시오”라고 말한 뒤 사라지는 꿈을 꿨다고 전한다.

이날 행사는 코로나 19였지만 은진 송씨의 후손들과 지역 유림 등 30여 명이 참석했으며 마을 주민들 1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암의 영정 앞에서 탄생 414주년 제를 지냈다. 이 숭모제는 우암 송시열 용문영당계에서 진행하던 것을 400주년부터 옥천군에서 주관하여 제를 지내기 시작하면서 숭모제가 됐다.

우암 선생의 탄생을 알리는 유허비가 정조 2년에 이곳에 세워져 생가터임을 확인해 주고 있다. 유허비에는 ‘숭정후삼술이월일(崇'楨後三戌二月日)’이라고 적혀 있으며 1979년 충청북도 기념물 45호로 지정됐다.

이 숭모제는 옥천군과 옥천문화원이 우암이 태어난 날을 전후해 매년 숭모제를 거행해 왔다.

하지만 구룡마을은 현재 35호 정도가 살고 있으며 대부분이 노인층이다. 예전과 달리 이 마을에는 젊은 세대가 없어 앞으로 우암 선생의 탄생지에서 열리는 숭모제 행사라는 의미에서 아쉬움이 많다.

이날 우암 숭모제를 지켜본 김기호(74) 구룡리 이장은 “젊은 사람이 없어 앞으로는 주관하는 군과 문화원에서 책임을 지고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처음 시작할 때는 마을에서 식사준비라든지 모든 행사에 대한 준비를 했는데 옥천문화원에서 주관한 후 마을에서 준비하는 것은 없다. 동네 사람들이 협조하고 참여해야 관심을 가지는데 코로나 영향인지 작년과 금년은 협조가 잘 안되는 애로가 있었다”며 “우암 송시열 용문영당계라고 있었다. 송시열 선생의 태어난 날에 영당에 영정 사진을 걸어놓고 절하며 그날 계를 했다. 옥천군에서 지낸 후부터 숭모제가 됐다. 탄신 400주년이 되던 해부터 군에서 숭모제를 지내기 시작했다”라고 했다.

이 마을이 고향인 양재학(75) 구룡리 영농회장은 “어린시절부터 동네에 큰 이름난 분이 있어서 좋았다. 옛날에는 젊은 사람들이 30명쯤 이 행사에 참여했는데 지금의 구룡리는 빈집이 많아 35호가 거주한다. 귀농인들이 들어오고 동네가 활기차졌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마을주민 박태순(69, 여)씨도 “이 마을로 45년 전에 시집을 왔다. 남편이 마을 이장을 지냈다. 옛날에는 제를 겨울에 지내 아주 추워서 군수님 등 모두가 고생을 했는데 시기를 당겨 지금은 포근한 날씨에 진행돼 다행이다. 제를 지내는 건 좋은데 마을 집을 기와로 바꾸라 해서 지원없이 자비로 부담해 바꿨다. 지금은 동네에 노인들뿐이라 이젠 행사를 챙겨줄 사람도 없다”고 했다.

우암 송시열 선생의 탄생 414주년을 기리는 숭모제가 옥천군 이원면 용방리 구룡마을에서 거행되고 있다.
우암 송시열 선생의 탄생 414주년을 기리는 숭모제가 옥천군 이원면 용방리 구룡마을에서 거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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