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부터 갈대는 운명을 변호하고 있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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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부터 갈대는 운명을 변호하고 있었다(1)
  • 김용현 법학박사, 시인
  • 승인 2021.12.23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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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개교 50주년 기념 수필집 발행을 위한 글 중 일부로써 인간 김용현의 어려웠던 시절, ‘국가인재 Data Base’에 등록된 내용, 그동안 삶의 글이다. 대전지방법원 부여등기소장 재직 시 교통사고 등 여러 가지로 어려웠을 때 음으로 양으로 걱정해 주시고 도와주신 분들에게 깊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바친다.

절망의 늪에서

신문팔이를 하다가 군대에 갔으며 제대는 했으나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절망 그 자체였다.
밤을 지새우면서 고민을 하다가 날이 새자 나 자신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부엌에 가서 커다란 냉면 대접에 수돗물을 넘치도록 가득 떠왔다. 스테인리스 젓가락 하나도 가져왔다. 그런 다음 이를 바닥에 놓고 앉아 대접에 가득한 맹물을 젓가락으로 찍어 먹기 시작했다. 내가 이 물을 젓가락 하나로 끝까지 다 찍어 먹을 수 있는가를 시험해 보자는 이유였다.

이는 시간이 걸리는지라 시작한 지 한 시간 정도가 흘렀을 때 아침을 먹으라고 방에 들어온 큰형수님이 이를 보고는 “도련님. 뭐 하는 거예요?” 하고 물었다. 그때 내 의도를 알고 계시던 어머님이 형수님에게 가만 놔두라고 하신다. 그러자 형수님은 “아침 드세요”하고는 밖으로 나가셨다.

점심을 드시러 오신 큰형님에게 형수님은 “대련님이 미쳤어요. 아침부터 식사도 안하고 저러고 있어요” 하셨다. 이 말을 들은 큰형님은 어머님과 함께 쓰는 방에 들어오셔서 내가 하는 꼴을 물끄러미 보시더니만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밖으로 나가서 형수님더러 “그냥 가만 놔두라”고 하신 다음 점심을 드시고 다시 직장으로 가셨다. 큰형님도 내 뜻을 이해하셨으리라.

이렇게 시도된 의지실험은 석양 무렵에야 끝났다. 오후 중간쯤부터는 입술이 젓가락에 스쳐 닳아 피가 젓가락에 묻어났지만 그 피와 함께 물을 계속 찍어 먹었다. 퇴근하신 큰형님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그래 할 수 있을 것 같냐?” 하시면서 여러 말씀 안 하시고 필요한 책을 사라며 돈을 주셨다. 

이제 하고자 하는 마음과 의지의 선택 문제다. 이는 자의냐 타의냐 와도 관계될 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다 보면 그냥 노느냐 아니면 뭔가를 해야 하느냐 헷갈릴 때가 많은데 이럴 때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무조건 하는 게 좋다. 하면 뭔가 얻는 것이 있지만 안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란 없다. 즉 하느냐 마느냐 망설이다 결론이 나지 않으면 바른 것이 무엇이냐, 자기나 모두에게 이익되는 것이 있는가 등으로 판단한 뒤 하는 쪽으로 결정하고 실행하면 거의 맞는 것 같다.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차이는 항용있는 이런 난관들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 어려움에 부딪혀도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을 짜내고 해결하려고 부단하게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지만 어렵다고 그냥 포기하거나 주저 앉아버리면 절대로 얻는 것이란 없을 뿐만 아니라 성공도 바랄 수 없다.

방송통신대 문 두드리다

개구리가 연꽃잎에 앉아있는 것은왕눈이 개구리가 그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연꽃 이파리에 앉아있는 것은 좀 더 멀리 뛰고 더욱 높이 뛰기 위해서란다. 

가진 것이라고는 그저 해 보겠다는 의지 하나였는데 시험에 합격하여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직장을 갖게 됨으로써 우선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일편단심 품어왔던 이 배움의 의지를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미래 교육의 선도대학’ ‘평생교육’의 이념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이하 방송대)를 찾았다. 나이와도 관계없고 학비마저 저렴한 학교, 평생교육의 이념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산실이자 텃밭을 찾은 것이다. 더구나 특근을 밥 먹듯이 해야 하는 바쁘고 톱니바퀴처럼 꽉 짜인 여유없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매일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원격교육’ 방송대를 다니기로 했다.

방송대 졸업 후 더 높은 학문 탐구에 대한 발판과 동기부여는 야간으로 성균관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를, 직장과 가까운 대전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로 인해 직장에서는 맡은 업무를 더욱 전문적·선진적으로 실현·실천하게 됨으로써 빠른 승진을 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대전고등법원 사무국장 때 권위의 상징인 법원의 높은 담장을 법원사상 처음으로 털어 없앰으로써 시민과의 벽을 허물어 다른 법원에서 벤치마킹을 올 정도로 획기적인 열린 아이디어로 업무를 수행했던 것도 방송대에서 공부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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